최근 들어 지진이나 대형 산불, 가뭄, 폭설, 홍수 등 이상기후현상과 자연재해가 잦아지고 있다.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라’고 하신 주의 말씀과 재림, 임박한 환난을 기억한다. 이러한 때에 사순절을 보내며, 무너진 경건생활을 세우고 새롭게 변화하는 계기로 삼아보자

 

눈물의 사순절

지난 2 6일 새벽,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덮친 대지진으로 사망자만 46천 명이 넘고, 무너진 집이 105천 채가 넘었다. 우리나라도 지진에 예외가 아니다. 최근에는 그동안 휴화산이었던 백두산에도 이상조짐이 보인다고 한다.

이번 지진으로 아직도 100만이 넘는 사람들이 임시대피소에 있으며, 가족 중에 사상자가 났거나 집이 무너진 사람들은 큰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비보를 들은 수많은 나라들이 긴급구조에 동참하고 슬픔에 동참하는 분위기다. 말그대로 지금은 웃을 때가 아닌 근신하며 눈물을 흘릴 때이다

성경에는 눈물에 관한 대목이 종종 나온다. 다윗은 14년을 사울 왕에게 쫓겨 다니며 마온·십·엔게디 황무지를 전전하면서, 자신의 가련한 처지를 주님께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나이다’(42:3)라고 호소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멸망하는 조국과 폐허가 된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내 눈에 눈물이 시내처럼 흐르니 눈물이 마르지 않는다’(3:48)라고 고백했다

 

지금 한국교회는 코로나 후유증에서 완전히 헤어 나오지 못한 상태이다. 전에는 사순절이 매우 중요한 교회절기로 기독교 언론마다 강조하고 교회에서도 경건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애를 썼지만, 지금은 상당히 느슨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그만큼 사순절의 의미가 퇴색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사순절에는 우리가 영광의 주님을 뵈옵기 전에 먼저 고난받으신 주님과 함께하는 눈물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본다

북방선교를 하셨던 이삭 목사님이 1986년 처음으로 소련을 방문했을 당시만 해도 성도들이 공개적으로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목사님은 모스크바에서 좀 떨어진 어느 지하교회의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다. 200여명의 성도들이 예배가 시작되기도 전인데 울기 시작했다. 마침 성찬식도 있어 주님의 떡을 나누는데 성찬위원이었던 장로님들도 손을 떨면서 울었다. 2시간 가까운 설교가 이어졌지만, 단 한사람도 몸가짐이 흐트러지지 않았고, 특히 축도할 때는 가장 많이 울었다. 예배가 끝난 후 목사님은 통역하는 사람에게 오늘이 무슨 날인데 이렇게 눈물의 예배를 드렸냐고 물었다

“우리는 항상 오늘의 이 예배가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배를 드리다가 KGB나 수사기관에 발견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머나먼 시베리아 유배지로 끌려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이 예배가 마지막 예배임을 염두에 두기 때문에 안타깝고도 벅찬 감격의 예배가 됩니다. 우리에게는 다음에 또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보장이 없기에 울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시 이삭 목사님은 ‘왜 한국교회는 저들처럼 감격적인 예배를 드리지 못할까’ 생각하며 탄식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 안이하게 배부른 신앙생활을 해왔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지난 코로나사태와 함께 교회가 사회로부터 적폐의 대상이 되어, 손가락질당하는 뼈아픈 고초도 겪게 하신 것이리라.  

한국교회의 참상은 최근 드라마나 영화의 빌런(악당)들이 개신교인이 자주 등장하는 모습으로 표출되고 있다. 그만큼 교회를 바라보는 세상의 인식이 곱지 않다는 반증일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런 현상을 두고 우리가 먼저 반성해야 한다고 하고, 혹자는 안티세력들의 악의적인 공격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밝은 빛 가운데 반성해보면, 그간 교회가 순수하게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한 탓이라 자성하지 않을 수가 없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유대인들의 핍박과 로마제국의 압제를 피해 정든 고향을 떠나 정처없이 떠돌거나, 햇볕이라곤 조금도 들지 않는 카타콤 지하에서 생활하며 예배를 드렸다는 펙트는 아득한 옛 전설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눈물의 방

이번 사순절에는 그간 교회가 잃어버린 눈물의 예배와 애통의 기도를 되찾았으면 좋겠다. 차제에 주님께서 우리의 애통하는 눈물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시는지 새삼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캐서린 백스터의 책 「정말 천국은 있습니다」의 35쪽에 보면 ‘눈물의 방’이 나온다. 천국에 입신한 그녀를 안내하던 천사가 성도들의 눈물을 담아 보관하는 방으로 데려가, 그 의미를 설명해주었다. 마침 출구에서 한 천사가 눈물이 든 조그만 금대접 하나를 들고 들어오면서 말했다. “방금 지구상에서 가져온 눈물의 대접입니다.” 담당 천사가 금대접과 쪽지를 건네받고는 그 이름에 해당하는 병을 찾아 눈물을 담았다

안내하던 천사가 그 방의 테이블에 진열된 책을 뽑아, 눈물의 병을 하나 열고 한 방울 떨어뜨리자 글씨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눈물의 사연이 매우 아름다운 글씨체가 되어 한 방울씩 떨어질 때마다 나타났다. “가장 온전한 기도는 우리 영혼의 깊은 곳에서 우러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눈물을 동반하여 심령을 울리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때 백스터는 다윗의 고백인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 하였나이까.(56:8) 하는 말씀이 생각났다고 했다. 우리 주님은 성도들의 눈물을 매우 귀하게 여기시고 은혜를 베푸신다고 믿는다. 사순절에 드리는 눈물은 죄를 회개하는 눈물, 자신의 영적인 비참함에 애통하는 눈물, 내 평생 십자가인 저 원수가 울지 않으니 대신 울어주는 중보의 눈물, 그리고 사랑과 감사의 눈물 등. 눈물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실 때 예루살렘의 여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들을 위하여 울라.”고 하셨다. 지금은 우리가 눈물을 흘릴 때이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안디옥교회가 있었던 곳으로 알려진 튀르키예의 안타키아도 이번 지진을 피하지 못했다고 한다. 폭격을 맞은 듯 주저앉은 교회의 건물 창에는 ‘AGAPE’라는 글씨가 보였다. 무너진 잔해 위에 흩어진 교인들이 모여 서로 손을 잡고 예배를 드리는 모습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처처에 기근과 지진과 난리의 소문이 자주 들리는 이때 하나님의 회복과 부흥을 소망하면서, 교회가 다시 새롭게 사순절의 의미를 되찾을 수 있기를 기도한다.

 

이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