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무너져 내리는 곳에 버티고 서 있는 한 사람

b5ceb7b9b9da.jpg성벽을 쌓고 내가 그 성을 멸망시키지 못하도록 성이 무너진 곳에 버티고 서서 나를 막을 의로운 사람을 찾았으나 그런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내가 분노를 그 위에 쏟고”(22:30).

기울어 넘어가는 도성을 품에 끌어안고 몸부림칠 의인 하나를 찾으시는 하나님의 안타까움이시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5:1). 제대로 된 한 사람, 도시의 장래를 책임지려는 한 사람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모집 광고다.

그러나 총체적인 부패만이 보인다. “이 땅에 기괴하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그 결국에는 너희가 어찌 하려느냐”(5:30,31). 세계는 결국 선장 없이 표류하다가 암초에 걸린 파선 직전의 배가 되었다.

모세가 나타나야 한다. 바위를 깨트려 물을 뽑아내고 바다 한복판에 물벽을 만들어 마른 땅을 걷듯 인도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눈물겹도록 체험한 이스라엘 백성들. 그런데도 열 번이나 하나님을 거역하고 또 원망하고. 드디어 진노의 하나님이 칼을 드시자 모세는 넙죽 엎드려 다음과 같이 읍소한다. “안 됩니다. 이 백성의 패역함을 용서하소서. 진노를 거두지 않으시려면 차라리 내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주소서. 저들과 같이 죽겠습니다”(32:30-32). 모세의 애절한 기도에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셨다. 대폭 물갈이를 했으나 기어이 그 백성이 가나안 땅까지 인도되는 보장을 받고서야 눈을 감은 모세 같은 책임감 있는 사람이 성마다 수문장처럼 서 있어야 한다.

골리앗을 쓰러뜨려 이스라엘의 위기를 극복한 소년 다윗, 유대 민족 구원을 위해서는 죽으면 죽으리라던 에스더, 빗나간 사울을 위해 밤새워 울며 기도한 선지자 사무엘,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막아보려고 여섯 번이나 허리 굽혀 애걸한 아브라함, 동족의 구원을 위해서는 큰 근심과 그치지 않는 고통을 품고 살았던 바울, 파괴되기 직전 요압을 설득시켜 어미 같은 성읍 아벨성을 구출한 지혜로운 한 여인(삼하20:22), 아람의 무서운 공격을 수 없이 차단시켜 이스라엘의 국방과 병거가 된 엘리사.

우리 도시는 누가 지킬 것인가? 이 나라 위에 쏟아지는 재앙을 누가 막을 것인가? 이 세계를 뒤덮은 더러운 악령과는 누가 감히 싸울 것인가? 하나님이 창조한 아름다운 땅을 마구 파괴시키는 포악한 영을 누가 결박시킬 것인가?

진정 십자가 군병이라면 자기 성읍이나 선교지 혹은 조국을 기도의 그물로 덮어 씌워야 한다.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하는 권세를 사용하라! 기도의 동아줄로 그 도시를 포위하라! 동서남북을 바라보며 그 땅을 두 발로 밟아가면서 세계는 하나님의 도성이라고 선포하라! 이제부터 탈환작전에 들어가자! 할렐루야!

이동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