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리 호숫가에서

대체 어디서부터 이 마음을 표현해야 할까. 아무 것도 한 것 없이 받은 큰 은혜이기에 송구함뿐인데, 어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공동체의 모두가 참여하고 기도한 예루살렘 사경회에 강사로 참여케 된 것, 유대인 없는 유대인을 위한 사경회의 실망 중 한 랍비 부인이 와서 큰 은혜를 받고, 랍비들에게도 들릴 말씀이라 한 것, 무명한 작은 자들을 사용해 유명하다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다음 사경회를 준비하라 하신 것. 이런 것들을 우리가 어떻게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게다가 내겐 눈물이 철철 흐른 은혜가 하나 더 있다. 수년 전 글을 쓰기 위해 왔을 때, 갈릴리 호숫가의 벅찬 감격 속에, 주께서 다시 기회를 주신다면 이곳에서 온종일을 주님과 함께 있고 싶다고 고백했었다. 바로 그 일이 이뤄진 것이다.

본부장의 허락을 받고 팀으로부터 이탈하여 갈릴리에 남게 되었다. 오병이어교회 앞의 호숫가(사유지)로 가는 것이 개인에게는 금지되어 있어 당황했지만, 주님의 자비가 관리 수녀님에게 임하여 단체에게만 허락된 문이 열리었다. 아예 열쇠를 주시며 기도하기 매우 좋은 호젓한 곳을 알려주셨다. 정말 그곳은 아무도 없었다. 호수 가까이 다가서면서부터 눈물은 출렁이는 파도처럼 흘러내렸다. 파도소리와 물새소리만 들리는 조용한 시간을 오전 내내 가지며 주님과 함께 행복했다.

오후엔 그 옆 베드로 수위권교회(떡과 고기를 구워주셨다는 곳)의 호숫가를 거닐고 묵상할 수 있는 은총을 주님은 또 부어주셨다. 정말 맘껏 주님과 함께 있었다. 사모하고 사모하던 일이다. 전적인 주님의 긍휼하심이다. 순례자들은 잠시 왔다 급히 사진들을 찍고, 조약돌을 줍고 총총 사라져간다. 10여분만이라도 주님과 교제하며 기도하는 분들은 볼 수가 없다. 다들 바쁜 일정 때문이리라. 그런데 내겐 이 웬 은혜인가!

기러기 한마리가 자신의 얼굴보다 큰 물고기를 물고 내려와 앉아, 정성껏 씻더니 애써 머리를 흔들며 삼켜 버린다. 주님의 자비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하시다. 공중을 나는 새들을 보라, 들에 핀 백합화를 보라 하시던 주님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한 그룹의 감격에 겨운 찬양 소리가 파도에 실려 온다. 그 날처럼.

이곳에선 예수님의 향기가 난다.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하시던 그 음성이 들린다. 배신의 죄책감으로 죽고 싶었던 베드로에게 사랑을 물으시던 주님의 겸손과 긍휼을 느낀다. 부끄러운 죄인을 받아주시는 주님의 용서와 사랑보다 더 위대한 것은 없다. 그것이 주님의 전부이시다. 그러기에 감히 나는 또 기도했다. 저의 좁은 마음을 용서해 주세요, 저의 작은 사랑을 좀 넓혀주세요. 이기심을 넘어서, 자아를 넘어서 훨훨 날아오르게 해 주세요, 주님!

늦은 오후, 팀과 다시 합류하며 반가운 마음이 가득하다. 주님의 빛과 진리를, 그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무리들. 기적의 장소이던 고난의 장소이던, 베드로 요한처럼 주님을 사랑하여 따르길 원하는 무리들. 나는 이 순박한 단체를 사랑한다. 때로 서로 긁히는 일이 있을지라도, 때로 부끄러운 일을 일으켜도 주님이 사랑하는, 나 같은 작은 자도 용납하는 이 공동체를, 우리 교회를 나는 진심으로 사랑한다.

주님, 또 다시 기회를 주신다면, 주께서 금식하셨던 광야에서 종일을 금식하며 별을 보며 새벽을 맞게 해 주세요. 모두를 모시고 올 수 있게 해 주세요.

박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