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나귀

감람산 벳바게 맞은편 어느 작은 마을. 따사로운 봄 햇살처럼 두 남자가 얼굴을 붉히며 수줍은 듯 다가온다. 잠깐 망설이더니 이 나귀들을 주가 쓰시겠다 하십니다.” 한다. 그들의 행동이 조금은 무례한 듯 당황스럽다. 하지만 오래 전부터 주님을 위해 내 전부를 드리겠습니다.” 늘 기도하며 소원하던 바로 그 일인가 싶어서 잠시 고민하다 그러시죠.” 고개를 끄덕이며 나귀들을 가져가도 좋다는 허락의 표시를 한다. 전부라고도 할 수 있는 나귀들을 끌고 가는 두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가난한 농부는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솟아오른다.

주님은 어린 나귀가 필요하셨지만 어미 나귀가 없으면 낯선 사람들을 따라가지 않을 어린 나귀의 습성을 잘 아시고, 두 마리 다 끌고 오라고 하신 것이다. 아직 어리고 고집 세고 연약한 나귀지만 주님은 그런 어린 나귀를 쓰시겠다고 한다. 위풍당당하고 멋진 흰말을 타시면 더욱 근사하실 텐데.

이미 어린 나귀의 체질을 다 아시고 부르셨기에 성숙한 어미인 척 할 필요도 없고, 근사한 말처럼 걸음걸이를 흉내 낼 필요도 없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어리숙한 표정으로 사람들이 환호하는 소리에 나보고 저러는가 싶어서 우쭐대기도 한다. 아직은 사람을 태우는 것이 부담스럽고 불편하여 몸을 이리 저리 틀어보기도 한다. 그래도 만왕의 왕 되신 예수님을 모실 수 있는 영광을 주신 것이 감사해 씩씩하게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다.

예루살렘 성안에 모여 있는 이 많은 사람들은 그 옛날 선조들이 이집트에서의 마지막 밤 유월절을 지내고 출애굽 하였던 추억을 되새기며, 오늘의 이 명절을 기회로 삼아 예수님을 환호하는 가운데 해방과 자유를 꿈꾸는 모양이다. 정말 이분이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해방시켜 주실 분이신가?

사람들이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며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라며 예수님을 찬양한다. 예루살렘의 사람들은 로마로부터 해방되길 원하는 간절한 소망 가운데 주님을 환호하고 있지만, 인류는 아주 오래 전부터 죄로부터 해방되기를 갈망하여 왔다. 인생은 죄 때문에 늘 마음고생이 심하다. 수도 없이 고난을 겪어야만 하고, 슬프고 서러운 일도 당하게 된다. 죄로 인해 묶여 자유가 없는 우리의 영혼에 참 자유와 해방을 주실 분은 오직 예수님 밖에 없건만, 사람들은 현재 눈에 보이는 묶임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달라고 아우성 치고 있다. 예수님은 나는 너희가 원하는 그런 왕이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작고 나 같은 어린 나귀를 택하신 모양이다.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21:5).

나의 삶을 생각해 보면 참 감사하기만 하다. 정말 주님께 부름 받은 행복한 작은 나귀가 바로 나다. 삶의 짐이 너무나 커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할 때면, 예수님은 나의 무거운 짐까지 대신 져 주신다. 예수님은 나와 함께 이 광야 길을 같이 가자고 하신다. 주님이 가셨던 그 길은, 세상이 원하는 길이 아닌 바로 좁은 길, 십자가의 길, 죽음의 길이다. 그래서 어렵지만 기쁘다. 세상은 등에 만왕의 왕을 태운 나귀라고 우쭐거리며 살라고 한다. 하지만 그들의 요구를 만족시켜 주지 않기에 곧 세상으로부터 외면을 당해야만 한다. 그래도 나는 이 길, 십자가의 길을 주님처럼 가길 원한다. 주님이 나를 선택했기에 나는 따라 가려고 한다. 아직은 연약한 다리라 넘어지고 비틀거릴 때도 있지만,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시기에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묵묵히 나아가려고 한다. 세상에 묶여 있던 어린 나귀와 같은 나를 부르셔서 써 주시는 것만으로도 늘 감사한 일이다.

이용도 목사님은 고백하셨다. “, 주여! 크고 훌륭한 준마(駿馬)를 내어 놓으시고, 연약한 이 나귀새끼를 어용(御用)키 위하여 불러 타 주시었으니, 왕을 태운 나귀새끼의 영광이 얼마나 하오리까. 주님은 불편하시지만은, 그러나 주님은 당신의 편리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고, 오직 무용한 이 나귀새끼에게 영광을 입히시기 위함인 것을 나는 알고 있나이다. 입혀주신 영광! 이것이 곧 나를 영원케 하였습니다. 사랑해 주신 그것만으로, 나는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나를 불러서 사용해 주시는 것만으로 감격스러운데, 가끔은 왜 불렀는지 불평이 나올 때도 있다. 하지만 주님의 섭리와 계획에 작은 나귀로 서 있는 것이 감사하기만 하다. 설레는 기쁨이며 은혜다. 나의 환경, 가정, 교회, 이웃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하시고 그분들의 작은 나귀가 되어 주님을 전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섬기는 일은 주님이 나에게 주신 사명이다. 자녀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양육하고, 동역자 남편을 겸손히 섬기는 일도 나에게 주신 나귀로서의 사명이다. 교회를 위해 헌신하고 이웃을 전도하는 일도 나귀로서의 사명이다. 너무나 많은 일을 작은 나의 등에 지워주신 주님의 은혜에 오늘도 감사하고 영광을 올려드린다. 무거운 짐이 아닌 넉넉히 감당케 하실 등짐을 지고 가는 작은 나귀, 나는 오늘도 주님을 믿고 의지하며 행복한 십자가의 길을 힘차게 달려간다.

이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