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희의 노래

c1d6b4d4b5bfc7e03.jpg최근 지인으로부터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청년시절에 다녔던 ○○교회의 한 장로님께서 여러 가지 고통 속에 절망으로 인하여 15층에서 투신을 하셨다는 것이었다. 기업의 절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기도 하고, 교회에서 어려움을 겪거나 곤란을 겪는 이들을 감싸며 일자리를 마련해주고 귀감이 되었던 장로님이었기에 안타까움이 더하였다. 얼마나 고통스러우셨으면, 마음 한편이 아려왔다. 그러면서도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16:6)는 말씀이 뇌리를 스쳤다.

마귀는 곧잘 절망이라는 강력한 무기로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한다. 하지만 절망은 하나님의 은총을 발견하는 또 다른 기회이기도 하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다”(14:22). 사도 바울의 말씀은 언제나 강한 영혼의 울림이 있다. 이는 말이 아닌 진정한 능력, 그의 삶의 전반에 수많은 고난의 흔적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곤고, 핍박, 기근, 적신, 위험, 칼 등 종일 주님을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 양 같이 여김을 받았던 숱한 쓰라림과 고난들이 그를 영적 거인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에게도 심한 마음고생으로 살 소망까지 끊어진 적이 있었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고후 1:8).

비단 사도 바울 뿐만이 아니다. 욥도 그랬다. 계속 불어 닥치는 환난으로 인하여 내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라고 하나님께 원망하였다. 요나도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다고, 두 번이나 하나님께 호소하였다. 그 용감한 엘리야도 로뎀 나무 아래에서 절망하며 죽기를 기도하였다. “, 야훼여, 이제 다 끝났습니다. 저의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 선조들보다 나을 것 없는 못난 놈입니다.”

누구나 인생을 살아가면서 극한 절망가운데 부딪혀 죽음의 골짜기를 지나는 것 같은 고통 가운데 거할 때가 있다.

몇 주 전부터 오른쪽 귀가 먹먹하고 이명 현상이 나타났다. 어린 시절 약한 귀로 인하여 마취를 하지 않은 채 간단한 수술을 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런 탓인지 육체가 많이 피곤하면 가끔 귀가 윙윙거렸다. 얼마 전에도 신문 발송을 하기 위해 노끈으로 신문을 묶는데, 자꾸만 귀가 먹먹해져 신경이 예민해졌다. 여러 자원봉사자들이 와 계셨기에 불편함을 내색할 수도 없어서 식은땀을 남몰래 흘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옆에서 함께 신문을 묶고 계시던 한 형제가 전도사님, 요즘 찬양을 하다보면 악보들이 춤을 추면서 저에게 윙크도 하고, 웃고 있는 것 같아요.”라면서 말을 건네셨다. 불현 듯 카빙 베토벤의 영화 속에 나오는 대사가 떠올랐다.

공기의 떨림은 인간의 영혼에게 이야기하는 하나님의 숨결이야. 음악은 신의 언어야. 우리 음악가들은 인간들 중 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지. 우린 신의 목소리를 들어. 신의 입술을 읽고, 우린 신의 자식들을 태어나게 하지. 신을 찬양하는 자식들. 그게 음악가야. 그렇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니야. 모두들 내가 침묵 속에 사는 줄 알아. 내 머릿속엔 소리로 가득 차 있어. 절대 멈추지 않아. 하나님은 내 머리 속에 음악을 가득 차게 하고서는 날 귀머거리로 만드셨어.”

하나님은 인간 누구에게나 극한 절망의 기회를 주시며 그 속에서 아름다운 보석, 환희를 체감하는 영혼의 경지에 도달하는 선물을 주신다. 고독, 고통, 고생의 시련과 환란을 이겨내어야만 영혼의 소리가 비로소 들리게 되는 것이다.

흔히 베토벤이 말년에 귀가 멀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과 달리 귓병은 너무나도 일찍 닥쳐왔다. 그가 음악가로서 한창 꽃을 피울 시기인 26세 때부터 귀에 이상을 느꼈다. 용하다는 요법은 모두 써보았지만 의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기라 귓병은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악화되기만 했다. 밤낮으로 윙윙대는 엄청난 소음에 시달려야 했다고 하니, 그야말로 평생을 생지옥 속에서 살면서도 음악을 창작하기 위해 처절한 투쟁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중에는 막대기의 한쪽 끝을 입에 물고 다른 쪽 끝은 피아노 속에 넣어서 울림을 느끼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하고, 나팔처럼 큰 보청기를 사용하기도 했지만 큰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

1802년 여름, 빈의 근교인 하일리겐슈타트로 요양을 갔을 때는 깊은 실의와 절망에 빠져 유서를 쓰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의 짐작과는 달리 자살을 시도하기 위한 나약한 유서는 아니었다. 오히려 베토벤은 유서를 써 놓은 후 더욱 적극적으로 창작에 몰두했다고 한다. 놀랍게도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걸작들은 대부분 그가 심각한 귓병에 시달리거나 청력을 완전히 잃은 이후에 창작된 것들이다. 여기 하일리겐슈타트 유서의 일부를 옮겨본다.

이 비참하고 안타까운 삶을 지탱하고 있는 불안정한 육체는 아주 조그만 변화에도 나를 최선의 상태에서 최악의 상태로 몰아붙이고 있다. 인내, 내가 인생의 안내자로 삼아야 할 것은 인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했다. 참으려는 나의 결심이 오래 지속되기를 바랄 뿐이다. 운명의 모진 여신이 마침내 심장의 박동을 멈추게 해 기뻐하는 그 순간까지, 내 상태가 호전되든지 악화되든지간에 나는 삶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 28세의 나이에 어쩔 수 없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힘든 일이다. 이는 다른 사람의 경우보다 예술가에게 있어서는 더하다. ‘하나님이시여! 당신께서는 나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계시니 이 모든 것을 아실 테지요. 마음속에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선행에 대한 바람으로 가득 차 있음을 말입니다.’

, 나에 대한 사람들의 행동이 얼마나 옳지 못했는지를 나의 이러한 상황들을 이해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불행한 사람들은 자기와 똑같이 불행했던 한 인간이 온갖 장애에도 불구하고 가치 있는 예술가와 인간의 대열에 끼기 위하여 전력을 다한 것을 보고, 거기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게 될 것이다.”

베토벤은 자신의 좌우명 고난을 헤치고 환희로!’처럼 극한 절망 속에서도 묵묵히 고난을 감내하며 싸워 이겨 내었다. “환희여, 아름다운 신들의 찬란함이여. 낙원의 여인들이여. 우리 모두 황홀감에 취해 빛이 가득한 성소로 돌아가자.” 베토벤의 생애 마지막 작품인 9번 교향곡 합창에 나오는 환희의 송가이다. 이 곡을 작곡할 당시 베토벤은 귀가 완전히 들리지 않아 단절된 음향 세계에서 무한 고통과 싸워야 했고, 육체적으로는 건강 악화와 궁핍한 가정 경제로 인하여 그의 생활은 말이 아니었다. 그런 환경에서 그는 자신의 절망과 고통을 환희의 송가로 탈바꿈시켰다.

마음이 갈기갈기 찢기고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더라도, 홀로 외로운 싸움을 하며 고통가운데 눈물을 흘릴지라도 결코 이 길을 멈추지 말자.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사랑하는 제자들마저도 모두 떠나고, 하나님 아버지에게조차도 버림받으시고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신 채 홀로 해골 골짜기에서 피눈물을 흘려야만 하셨던 예수님. 그 안에 참된 위로와 소망이 있다. “나 비록 음산한 죽음의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내 곁에 주님 계시오니 무서울 것 없어라. 막대기와 지팡이로 인도하시니 걱정할 것 없어라”(23:4). 고통과 절망을 딛고 십자가 언덕을 오르자. 그날에는 환희의 송가를 부르며 빛이 가득한 성소로 들어가리라

이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