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우연히 “아낙”(Anak)이라는 한국어로 번안한 필리핀 노래를 들었다.

“…사랑하는 아들아, 넌 지금 망설이고 있구나. 무엇을 무슨 말을 해야 할지를 말이야. 넌 너무도 외로운 거야. 아들아, 넌 지금 후회의 눈물을 흘리고 있구나. 우리가 너의 외로움을 덜어 주련다. 네가 가야 하는 곳이 어디이든지 우리는 항상 문을 열고 너를 기다리고 있단다.” 

아낙은 필리핀 타갈로그어로 “아들”, “자식”이라는 뜻인데, 자식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을 노래한 것이다. 1970년 무렵, 이 노래가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으로 히트 쳤다. 나도 한때 이 노래를 카세트 녹음기로 밤낮으로 들은 적이 있었다. 집을 뛰쳐나와 방황하며 가장 힘들 때 이 노래를 들으면서 많은 후회의 눈물을 흘렸었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하루하루 사는 게 너무 힘들고, 안개가 낀 듯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는 듯하여 고등학교에 다니다가 도시로 가서 돈을 벌어야겠다 마음을 먹었다. 그림을 공부하고 싶어서였다. 그 생각이 머리에 박히자 결국 부모님 몰래 서울로 상경을 하였다. 돈도 벌고 공부도 할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섬유공장에서 야근을 밥 먹듯이 하다 보니 몸이 점점 쇠약해져 갔다. 일은 일대로 하고 공장 사장님은 월급도 제때 주지 않았다. 공장 동료들이 짐승 우리 같은 기숙사에서 밤마다 술 먹고 싸우는 통에 하고 싶은 공부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결국 몸이 망가질 대로 망가져 일도 못 하고, 돈도 없이 며칠을 굶는 날에는 고향 부모님 생각이 나 후회의 눈물을 연신 흘렸다. 그때 ‘아낙’ 노래를 듣는데, ‘집으로 가라’는 소리가 마음에 들려왔다. 그래서 고향 집 문 앞에까지 갔지만, 차마 집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동네 앞산에 올라가 해가 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밤이 되어서야 집으로 터덜터덜 내려갔다. 대문 밖에서 몇 번이나 서성이다가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아 머뭇거리는데, 아버지가 마당에 보리타작 후에 검불을 태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순간 들킬세라 대문 뒤로 얼른 숨었는데, 아버지가 어떻게 아셨는지 “왜, 안 들어오고 그러냐. 빨리 들어 오라”고 온화하게 말씀하셨다. “아버지!”하고 울먹이며 엉거주춤한 자세로 대문에 기대 있는데, “빨리 들어와 밥 먹어라. 아이고 이놈아! 얼굴이 이게 뭐냐?”라며 재촉하셨다. 그러자 부엌에서 일하시던 어머니가 헐레벌떡 나오셔서 “아이고 이놈 자슥아, 니 아부지가 너 때문에 얼마나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 가신 줄 아느냐. 잠도 제대로 못 주무시고, 밤마다 네가 오는가 해서 대문 밖에서 저렇게 날마다 기다리셨어.” 

나의 고단한 눈물을 주름진 손으로 닦아주시며 행여나 잘못된 길로 갈까 봐 노심초사하셨던 아버지.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초라한 행색으로 돌아와도 사랑으로 품어주시고 끝까지 기다려 주셨던 아버지. 비록 그 아버지는 하늘로 돌아가셨지만, 살아생전 마지막으로 내게 당부하셨던 말씀은 내 가슴에 깊이 박혀 있다. “기죽지 말고 어깨 펴고 남자답게 믿음에 굳게 서서 강하고 담대하게 살아라”(고전16:13). 

다윗 왕은 죽을 날이 임박하자 아들 솔로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매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왕상2:1~3). 

죽음을 앞둔 다윗이 솔로몬에게 마지막으로 이른 유언 같은 말이다. 인생에서 겪을 수 있는 모두 희로애락을 다 경험한 아버지가 자신이 없는 새로운 시대를 걸어갈 사명을 맡은 아들에게 절절하게 고백하며 권면하는 것이다.

먼저,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행하는 것이 대장부가 지켜야 할 길이기도 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세상 모든 사람이 지켜야 할 길임을 말한다. 그리고 이어 “여호와께서 내 일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만일 네 자손들이 그들의 길을 삼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진실히 내 앞에서 행하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신 말씀을 확실히 이루게 하시리라”(왕상2:4)고 확신하며 말한다. 아버지 다윗에게 약속하신 것 같은 왕의 계승의 축복과 은혜가 자손 대대로 이어질 것을 말하는 것이다.

아버지 다윗의 한마디 한마디는 경험적이어서 더 힘이 있다. 솔로몬을 향한 혈육간의애정에 의한 욕망이 담긴 충고나 권면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다.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대장부로서 갖춰야 할 사명 앞에 강하고 담대할 때 이루어지는 큰 기쁨을 소유하길 바라는 깊은 마음이 있다. 그 길이 설령 고난이 다가오는 길일지라도 올곧게 갈 것을 당부하는 용기와 힘이 느껴진다. 

사도 바울은 처형 되기 전 마지막 유언을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로 남겼다. “그대는 항상 자신을 돌아보며, 고난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쓰며, 하나님의 종으로서 해야 할 일을 꿋꿋이 하십시오. 나는 이미 하나님께 내 삶을 바쳤고, 이제는 이 땅을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웠고, 내가 달려가야 할 길도 끝냈으며, 믿음도 지켰습니다.”(딤후4:5-7).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는 죽기 전에 느보산에서 이스라엘 12지파에게 고별 설교를 하였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신33:29). 

믿음의 아버지들은 자녀들에게 올바른 길을 제시한다. 비록 그 길이 멸시당하고 고통받는 길일지라도 아버지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원의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믿음의 아버지들은 굳게 당부한다. 고난은 하나님과 더 친밀해질 수 있는 지름길이다. 고난에 무릎 꿇지 않고, 고통을 잘 견디어 내고, 버티어 낼 때 영적 힘도 길러진다. 고난 앞에 두려워 떨지 말고 강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전진하자. 앞으로 온 세상에 전무후무한 거친 대환난의 바람이 불어 닥칠 것이다. 

우리도 다윗 왕의 말처럼 언젠가는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 죽음의 길로 나아간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죽음 앞에 두려워 떠는 자들이 아니다. 건강을 잃어도, 돈을 잃어도, 배반당하고 수치를 당할지라도, 크고 작은 고난이 닥쳐와도, 가족을 잃는 큰 상실감을 겪을지라도 꿋꿋하게 용사와 같이 달려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이 땅에서 맡겨진 사명을 감당키 위해 홀로 고전하며 숱한 피를 흘릴지라도 우리는 행복한 사람이다. 하늘 아버지의 위로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모든 외로움과 아픔을 덜어줄 이는 언제나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 하늘 아버지다.

마틴 루터는, “아이가 잘할 때 주기 위해 회초리 옆에 사과를 두라”고 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녀인 우리를 지속적인 광야 연단과 훈련으로 나아가게 하시기도 하고 때론 넘치는 축복과 은혜 가운데 거하게도 하심은 다 아버지 뜻 안에서 이루어지는 은총이다. 모든 순경과 역경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연약하여 자주 쓰러질지라도, 좁고 협착한 광야 길에 눈물로 지새우는 밤이 많을지라도 하나님 앞에 가서 울자. 더는 망설이지 말고 꿋꿋하게 대장부와 같이 십자가의 길로 달려 나가자. 하나님 아버지께서 친히 우리의 방패와 칼이 되어주신다. 선한 싸움을 다 마치고 주님 앞에서 서는 날, 하늘의 문을 활짝 열어 놓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꼭 안아주시리라.

 

 

박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