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종이어야 한다

b5e9b2c97.jpg내가 가끔 걸리는 병이 있다. 많은 헌신과 희생을 요구하는 일을 했다고 여겨지면 찾아오는 섭섭병이다. ‘이만큼 수고했으니 이 정도는 인정받겠지.’라는 마음을 갖고 있다가 원하는 대접을 받지 못하면 어김없이 찾아온다. 주님께 온전히 헌신하겠다는 결심은 온데간데없어지고 그저 되돌려 받지 못한 것만 떠오르는 아주 무서운 병이다. 영적인 면역력이 약해지면 어김없이 섭섭하고 서운한 감정의 파편들이 마음에 침투해 며칠씩 헤집어 놓고 간다. 이번에도 꽤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인 일이 끝난 후, 병이 도지려 했다. 그런데 기도하는 가운데 명한대로 행했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17:9)라는 말씀이 내면에 울려 퍼졌다.

춘천에 있는 두드림 아카데미는 열댓 명의 탈북 남자 청년들이 기숙하며 교육받는 대안학교다. 이 학교의 교장선생님은 서울 법대를 나오시고 은행 지점장으로 근무하시다가 은퇴하신 후, 사재를 털어 이 학교를 설립하셨다. 고난의 행군으로 불리는 북한의 대기근 시기에 북한에서 근무하시게 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굶주림에 고통하는 동포들을 본 것이 계기가 되어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탈북청년들의 아버지가 되셨다. 푸근한 인상을 지니신 교장선생님과의 짧은 만남 속에서 나는 주님의 종으로 부름받은 자가 마땅히 가져야 할 섬김과 희생의 자세가 무엇인지 느끼게 되었다.

학생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건강하고 생기가 넘쳐흘렀다. 어느 누가 봐도 북한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만큼 세련미도 넘쳐났다. 그런데 놀랍게도 대부분 부모가 없고 북한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탈북한 학생들이었다. 어떤 학생들은 5,6세에 꽃제비가 되어 초등학교 교육도 받지 못하고 중국으로 넘어가기도 하였다. 학교를 돕고 계신 선교사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대부분의 학생들이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하나같이 보기에 형편없는 안타까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곳에 와서 교장선생님의 아낌없는 지원과 사랑을 받으며 놀랍게 변화되고 있는 것이었다.

날마다 2시간이 넘는 거리를 출퇴근하고 밤새워 교육계획서를 작성해서 후원을 얻으러 다니시느라 바짝 야위셨으면서도 아이들에게는 최고의 것으로만 먹이고 입히고 교육하려 노력하고 계시다. 이 아이들이 공부하는 것뿐 아니라 취직하고 결혼하는 것까지 내가 책임져야 할 것으로 생각하고 계시다는 말씀에서 아이들에게는 진짜 부모요 하나님께는 참 종이심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사역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런 끝없는 섬김과 희생의 삶이 지치지 않으시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하신다.

오늘 스승의 날이라고 메시지 하나가 왔습니다. 참 감사했지요. 많은 아이들을 도와주었지만 이런 경우는 아주 드문 경우입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주면 받을 것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주는 것으로 저는 만족합니다. 그것이 주는 자의 마땅한 자세고요. 이 일을 하며 제 이름을 날리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만약 알려야 한다면 내가 죽은 뒤 후대에 누군가가 할 일이지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할 일은 아닌 것입니다. 나는 끝까지 숨어서 이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성직자보다 더 철저하게 살아야 한다고 늘 다짐합니다.”

사랑과 희생에 관한 수많은 설교를 들어보았지만 진실한 삶이 깊게 묻어나는 이런 내용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한 평신도의 고백 앞에서, 함께 앉은 목사님도, 전도사님도, 선교사님도 그리고 수도자도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종지그릇만한 내 그릇과는 비교할 수 없이 큰 교장 선생님의 넓고 깊은 그릇에 사랑과 인격과 지혜의 샘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이현필 선생님도 말씀하셨다. “사랑은 주려는 것입니다. 받으려는 것은 미움입니다. 각자가 사랑 없다는 탓을 하나 자기가 주려는 사람이 없어서 걱정하는 것이 아니고 받을 사랑이 없다는 말들뿐입니다. 사랑은 줄 때는 만족하고 받을 때는 씁니다.”

사랑은 주려는 것이다. 희생은 대가가 없는 것이다. 섬김은 종의 자리에 있을 때만 가능한 것이다. 대가를 바라는 희생, 대가를 받아버린 희생은 이미 그 가치를 잃어버린 것이다. 사례를 바라는 순간 이미 종의 자격을 박탈당한 것이다. 사람에게 보이려는 선행은 그 자체로 이미 상을 받은 것과 다름없다고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반복해서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명한대로 행했다고 종에게 사례하는 주인은 없다. 명한대로 행했다고 사례를 바라는 종은 더더욱 없다. 종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면, 끝까지 종이어야 한다. 종노릇 많이 했다고, 종노릇 잘했다고 일한 대가를 바란다면 종 자리 내놓아야 한다. 종의 자리를 내놓는 것은 다시 천하고 쓸모없는 비참한 죄인의 인생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다. 그저 불러주신 것으로 만족하며, 주고 또 줄 수 있음에 기뻐하며,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희생하며 섬기어야 한다.

박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