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사람이 아름다워져 가는 사람

“여보세요. 빨리 와보세요. 사람이 죽었어요. 여기 아바 공동체 사람 같아요.” 갑작스러운 비보에 화들짝 놀라며 그만 숟가락을 떨어뜨렸다. 식사를 하던 공동체 가족들도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순간 마음속에서 ‘철희구나! 결국…’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가슴 한 편이 내려앉는 듯하였다. 저녁 5시에 종을 쳐도 웬일인지 철희가 오지 않았다. 공동체 생활인지라 계속 기다릴 수 없어서 먼저 식사를 하던 중이었는데, 뜻밖의 비보에 모두다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철희는 중증 간질 환자여서 웬만하면 혼자 다니지 못하게 했는데, 잠깐 사이에 개울가로 내려갔던 것이었다. 놀란 가슴을 끌어안고, 허겁지급 공동체 식구들과 개울가로 뛰어 달려갔다. 벌써 어느 누군가가 철수의 몸을 건져내어 올려놓은 뒤였다. 몸을 흔들어 보고, 가슴에 귀를 대보고 맥박을 짚어보았지만 아무런 미동도 움직임도 전혀 없었다.

그때 옆에 계신 장로님께서 “허리에 손을 넣어보세요. 다 내려와 땅과 닿았으면 운명한 거예요.” 철희의 허리는 이미 땅에 닿아 있었고 숨은 완전히 멈춘 상태였다. 입속에는 씹다 만 복숭아가 그대로 가득 담겨 있었다. 당시 사람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었지만, 발목밖에 차지 않는 얕은 개울가임에도 불구하고 간질로 인해 쓰러진 철희를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이다. 8월 15일 광복절이기도 한 주일날, 철희는 33세의 나이로 안타깝게도 생을 마쳤다.

철희는 지병에도 불구하고 빈병들을 주어모아 그것을 바꿔 헌금을 하곤 하였던 참 순박하고 신실한 청년이었다. 그동안 나와 철희는 매일 아침 새벽기도 후 절벽산 꼭대기로 네 개 또는 다섯 계단씩 나무로 길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산봉우리에 기도터를 닦는 것이었는데, 그날은 그 계단을 다 완성한 날이었다. 그 꼭대기에서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를 철희와 함께 합창을 했었다. 그런데 바로 그날 빛이 다시 밝아온 광복절 날, 예수님께서 세상을 떠나신 그 나이에 마지막 계단을 완성시켜놓고 그 길을 밟고 철희는 그렇게 하늘나라로 올라간 것이었다.

소식을 들으시고 바로 달려오신 이웃 교회 안목사님의 도움으로 염을 마치고 입관을 한 후, 아바 공동체 앞마당에서 철희의 하늘나라 환송 예배를 드렸다. 집례는 당시 화천시내의 한 교회에서 시무하시고 계셨던 철희를 아는 목사님께서 인도해 주셨는데, 그 자리에서 그분은 오랜세월 묻어두었던 이야기를 속죄하듯이 풀어내시었다.

“제가 화천 시내로 가기 전 이 동네 작은 시골 교회에 있었고, 철희는 저희 교회에 나오곤 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통일교와 연루된 동네 사람의 무고로 철희는 유치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분명 그에게는 잘못이 없었지만 어그러진 얼굴의 외모와 심한 간질로 인하여 사람들은 그를 홀대하였고, 홀로 산골짜기의 무너진 기도원을 열심히 지키던 그를 내보내면, 기도원 터와 관련된 이익을 취할 수 있었던 사람들에 의하여 철희는 그만 안타까운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때 경찰서에서 동네 사람들과 저를 불러놓고 증인심사를 하였습니다. 그때 저는 비겁하였습니다. 동네에 하나밖에 없는 교회의 시골 목사로서 동네사람들의 비위를 거스를 수 없어 용기 있게 철희를 변호하지 못하고 침묵하였습니다. 혈혈단신이었던 철희는 한 사람의 변호도 받지 못한 채 그렇게 며칠을 고생하였고 결국은 풀려나왔습니다. 늦었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저의 비겁함을 하나님과 여러분 앞에서 속죄하는 마음으로 고백합니다.”

또 한분의 귀한 분이 오랜 세월의 시공을 가로질러 철희의 장례식에 참석하였다. 이때를 위한 하나님의 인도함이셨을까. 일주일전 철희는 골짜기 입구에 있는 생수기도원에서 수십년 만에 고아원시절 보모이셨던 권사님을 만났었다. 그분은 장례식을 마친 후 철희의 지난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외롭게 고아로 살아온 철희의 장례식에 참석케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어린 시절 고아원의 어머니셨든 분을 우연히 이 동네에서 만나게 해주신 것이었다.

그간에 철희로부터 직접 들었던 내용과 그 보모님께서 들려주셨던 이야기들의 토대로 철희의 삶을 재구성 해보려한다.

철희는 부모님에 대한 기억도 없이 춘천의 ‘애민원’이라는 고아원에서 자라왔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명석하여 학교에서도 우수한 학생으로 반장도 하며, 5학년인데도 고아원의 동생들을 잘 돌보아주면서 매일 연탄불도 직접 갈아 넣곤 하였었다. 그때마다 또는 어떠한 일을 할 때마다 “내 진정 사모하는 주 예수 내 친구 이 땅위에 비길 것이 없어라”는 찬송이 입을 떠나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렇게 밝고 성실하고 외모도 준수한 철희를 보고 어느 군인 장교 부부가 입양하여서 중학교 때까지 좋은 환경과 집안에서 잘 자랐다. 그러다가 중학교 2학년 후반기부터 간질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중학교 3학년 1학기가 넘어서면서부터는 학업을 계속하기 어려울 정도로 악화가 되었는데, 안타까워하신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중학교를 졸업하였다. 그 후 다시 고아원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약을 먹은 후 간질이 많이 호전되어 화학약품을 취급하는 공장에 취직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이 일하던 공장의 형이 황산과 물을 잘못 섞어 그만 철희의 얼굴 앞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그로 인해 철희의 얼굴과 앞가슴과 양 팔은 심한 화상을 입고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퇴원 후 심하게 화상을 입은 철희의 얼굴은 흉측하게 변해있었다. 더욱이 간질증상이 함께 나타날 때는 차마 보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철희는 그 가운데서도 낙심하지 않고 “겉 사람은 후패하나 속은 날로 새롭도다”라는 말씀을 의지하며 힘든 노동을 하면서도 춘천의 우두교회에 다니면서 신앙생활에 전념하였던 신실한 청년이었다.

비록 짧은 삶을 살다갔지만, 그의 그윽한 삶의 향기는 많은 이들의 가슴에 잔잔한 감동으로 남아 회한의 눈물을 흘리게 하였다. 그의 마지막 장례식을 치루면서 겉 사람이 아닌 속사람이 아름다워야 한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어쩜 겉모습만으로 판단하고 무시하는 우리들의 더럽고 추악한 속내를 꾸짖는 듯 하여 고개가 숙여진다. 겉 사람은 비록 후패하나 속사람을 아름답게 가꾸어 갔던 철희의 삶을 우리 주님은 흐뭇하게 바라보셨으리라 믿는다.

이윤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