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아이의 상태가 점점 악화되는 것 같군요.” 진찰실 문을 닫고 나오는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우려했던 상황이었는데 의사선생님의 말을 듣자 무릎이 후들거려 한참을 대기실 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

헌팅턴 희귀병을 앓고 있는 윤중이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호흡이 불안정한 상태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작년 11월경 진단서를 끊어 산소발생기를 비치해 놓으면서 “하나님 아버지, 이 호흡기를 사용하지 않게 해주세요.”라며 간절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아직 한 번도 호흡기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호흡이 고르지 못해 날마다 마음이 바짝바짝 타들어갔습니다.

아이를 뉘어서 재우면 더 힘들어 하기에 밤새 앉고 자는 날이 많습니다. 아이를 품에 안고, “예수님 너무 무섭습니다. 아이가 잘못될까봐 너무 무서워요. 윤중이 좀 살려주세요. 죽은 청년을 보고 살려주신 것이 아니라 그 어머니 나인 성 과부를 불쌍히 보시고 살려주셨잖아요. 저를 불쌍히 보시고 아이를 살려주세요.”

흐느껴 우는 연약한 제 모습이 제 스스로도 딱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제 마음을 스쳐갔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1:17). ‘그래, 예수님이 내가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지. 세상을 이기셨다고 말씀하셨지. 담대하라고 말씀하셨지.’

숨도 쉬기 힘들만큼 두려움이 몰려올 때 그 두려움을 몰아낼 수 있는 것은 말씀밖에 없음을 깨닫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물위로 걸어서 예수님께로 가다가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진 것처럼 저도 말씀을 붙잡고 살다가도 아이의 작은 숨소리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파도가 일렁일 때면 마음이 너무 불안해서 잠도 제대로 못 잘 때가 많습니다.

근래에는 생각지도 않은 분이 문자를 보내주시거나 전화를 하십니다. “집사님, 하나님께서 집사님 기도를 시키시네요. 많이 힘들죠. 집사님 가정을 위해 기도하고 있으니 힘내세요.” 주일에 교회에서 뵙는 분들마다 “집사님, 얼굴이 많이 상했네요. 얼마나 힘드세요? 부족하지만 기도하고 있어요.” “집사님, 우리 집에 링거액이 있는데 갖다드릴 테니 맞으세요. 집사님이 건강해야 환자를 돌보지요.”

꺼져가는 등불마냥 남편과 아들의 병색이 짙어갈 때마다 몸도 마음도 지쳐 한없이 무너져 내리는 절망감이 휘감을 때도 많지만, 많은 분들의 사랑을 통해 위로와 깊은 감동을 받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분들의 중보기도와 도우심이 없었다면 감당하지 못하고 일찌감치 도망갔을 것입니다.

11시 예배를 드린 후 식사하는 자리에서 집사님 한 분이 저에게 다가와 말씀을 하셨습니다. “집사님,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계속 집사님 댁에서 일주일간 기도하라는 마음을 주시는데 가도 될까요?” “물론이죠.” “그럼 두세 분에게 말씀드려서 함께 가겠습니다.” 그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도 지친 심신에 새 힘이 주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 하시느니라”(롬8:26).

하나님이 미리 예비하신 은혜와 사랑으로 시작된 기도회는 하루 이틀 지날수록 더 뜨거워지며 영혼과 육신이 치료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주께서 항상 지키시기로 약속한 말씀 변치 않네.”

찬송을 부르며 감격해서 울었습니다. 고통 가운데서 우리의 영혼을 단련하시어 구원의 완성을 이루어 가실 뿐 아니라, 위로받고 위로하는 자로서 축복의 통로로 이루어 가심에 감격해서 울었습니다. 고통과 아픔을 고스란히 안은 채 십자가의 길을 함께 걸었던 어머니 마리아의 아픔도 함께 전해져왔습니다.

이 길은 결코 혼자 걷는 길이 아님을 보게 됩니다. 주님과 함께 가는 이 길이기에 다시 일어서렵니다. 괴로운 골짜기로 바람이 불어올지라도 약속의 말씀을 다시 붙들고 험산준령을 넘어가렵니다. 고난도 은혜라는 것을 또다시 깨닫습니다. 밤마다 가슴 졸이며 눈물 흘렸던 많은 아픔과 두려움의 시간들이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과정임을 알기에 이 고난이 바로 하나님의 엄청난 사랑이요, 특별히 선택된 은혜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박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