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증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은혜로 기적적으로 아들이 태어난 후 가장으로서 경제적 책임이 좀더 무거워졌음에도 불구하고 공동체를 시작하기 위해 사임을 하고 도시를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계속 밀려왔다. 분명 여러 가지로 훨씬 어려움들이 몰려올 텐데도 하루 빨리 떠나고 싶었다.

그러다가 예수원을 방문하게 되었고 토레이 신부님과 면담을 하던 중 요한복음 7장의 성경말씀과 더불어 권면을 받게 되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을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고 하셨듯이, 먼저 형제님께 임한 공동체의 열망과 비전이 자신의 생각인지 참으로 하나님의 뜻인지를 무엇보다 기도하며 말씀을 통해 확증을 받으십시오.”

그후 작정기도를 하며 주님께 확신을 구하였다. 때로는 꿈을 통해 때로는 선배나 동료들과 대화를 통해 어느 정도 하나님의 뜻임을 확증해 나가고 있을 때 일주일 동안 큰 몸살을 앓았다. 몸을 거의 추슬러갈 때 아래층에 사는 오복이가 자신이 다니는 성당에서 고난주간 금요일 영화 상영을 하는데 우리 내외에게 함께 가자고 하였다. 오복이는 우리 가족이 세 들어 살던 이층집의 주인집 딸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이라는 어린 나이에 비해 성숙한 가톨릭 신자였다. 특히 그날은 고난주간의 성금요일이었다. 아내와 함께 성당에 갔는데, 영화 제목은 “성 프란치스꼬와 클라라’였다. 그 영화의 장면 하나하나가 하나님의 메시지로 강하게 내게 다가왔다.

무너진 중세교회를 다시 회복케 하기 위한 형제 순회 공동체의 모습, 황금빛 성당이 아닌 무너진 다미아노 성전의 피와 눈물을 흘리시는 예수님의 모습, 하나하나 돌을 옮기며 쌓아 성전을 짓고 다시 세워가는 프랜시스의 모습 등.

처음 신학교에서 소명을 받았던 그 부르심이 또다시 일어나며 가슴이 뜨거워졌다.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했다. 나같이 보잘 것 없고 나약한 사람이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이 땅의 성공이 아닌 오로지 하나님의 나라와 거룩을 추구하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 공동체의 회복을 통한 교회 갱신을 할 수 있을는지.

그렇게 사인을 받았지만 토레이 신부님의 말씀대로 말씀의 확증 도장을 받고 싶어졌다. “하나님, 저는 너무 연약하고 의지도 약하고 변덕도 심합니다. 진정 제가 공동체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성경 말씀으로 결재 도장을 찍어주십시오. 아니면 언제 변하여 도망갈는지 모릅니다.” 날마다 안양 호계동 뒷산 정상에 올라 작정기도를 하였다. 그러던 40일 마지막 날, 그날은 막 제대한 막내동생과 함께 산에 올랐다.

함께 기도를 간절히 한 후, 내려오던 중 산 중턱쯤 왔을 때 우연히 고개를 돌려 길가 숲속을 돌아보았는데 큰 관주 성경책이 펼쳐져 있었다. 잠시 멈추어 보는데 사람이 쉽게 들어가기가 만만치 않은 찔레넝쿨 아래에 쌓인 낙엽더미 위에 빨간색과 진한 군청색 표지의 관주 성경책이 펼쳐져 있는 것이었다. 순간 전율을 느끼며 넝쿨 속으로 들어가 성경책을 들고 나왔다.

혹 아까 펼쳐져 있던 곳이 하나님의 결재 도장 구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미 성경책을 닫아 손으로 쥐고 있었다. 같은 곳을 펼치고 싶어 이러저리 뒤적였지만 같은 곳을 찾기가 그리 쉽지 않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낙엽 하나가 떨어져 있어서 책갈피 노릇을 해주고 있었다. “아하! 성질 급한 나를 위하여 주님께서 낙엽으로 책갈피를 미리 해놓으셨구나.” 하며 그곳을 읽기 시작했다. 동생과 함께 기도한 후 두 절씩 교대로 읽고 잠시 묵상 한 후 서로 나눔을 가졌다.

본문은 느헤미야 6장과 7장이었다. 다 읽고 묵상한 후 매우 감격하고 놀라워했다. 그 부분은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 포로 후 예배 공동체로 회복되는 내용이었다. 느헤미야가 대적자 산발랏과 도비야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하나님께서 성 문짝을 달아주시며 각 지파대로 민족이 다시 공동체를 이루어 하나님을 예배하는 내용이었다. 확실한 결재 도장임을 느낄 수가 있었다.

하나님께서 변덕 심하고 연약한 나를 위하여 참으로 기적같이 숲속에 펼쳐진 성경책으로 응답해주셨음을 믿게 되었다. 아마 누군가 산기도 왔다가 그냥 두고 가셨을 수도 있으리라 생각되었지만, 사람이 쉽게 들어가기 어려운 찔레 가시 넝쿨 속에 펼쳐진 성경책은 마치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해주신 여호와이레처럼 느껴졌다.

지금도 그 성경책을 간직하며 힘들고 버거울 때면 펼쳐보곤 하지만, 그때부터 지금까지 내게 주신 공동체 사역에 대해 흔들린 적은 없었다. 비록 어려움들과 난관이 순간순간 많았지만,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1:6)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나아가고 있다.

이윤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