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회의 눈물

낮에 장례식 예배를 인도하고 돌아왔다. 요즘은 자주 장례예배를 드리는 것 같다. 세상 떠날 때가 가까워 오는 사람은 자기의 일생을 정직하게 반성하고 솔직하고 심각한 회개를 하지 않을 수 없음을 생각하게 된다.

주님께서 언제 부를지 모를 인생, 요즘은 “늙은 수도자는 빨리 죽어야 돼.” 라는 말을 자주한다. 해놓고 나면 왜 내가 쓸데없이 이런 말을 하지 곧 후회를 한다. 사람들의 시선에서 “아니, 왜 저런 소릴 하지. 주책이네.” 하는 것 같다. 죽으려면 조용히 죽지 웬 청승을 떨고 그래 정말, 내가 봐도 괜히 주책을 부렸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수실에 들어와 무릎을 꿇고 주님을 바라보았다. “주님, 이 주책바가지를 용서해 주세요.”

주님이 지금 이 순간 나를 부르신다면 무슨 낯으로 주님을 뵐까 생각하니 아찔하다. 무엇하나 제대로 이루어 놓은 것도 없고 신앙의 진보도 없고 덕을 많이 쌓아 놓은 것도 없는데.

죽는다고 생각하니 용서 구할 분들이 생각난다. 먼저 부모님께 잘못한 것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못난 아들을 위해 허리가 휘어 걷기도 힘든 몸을 가지고 80이 넘게 애태우며 기도하시던 부모님. 한 번 모시지도 못하고 괴롭게만 한 죄. 불효막심하고 잘못했던 죄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싶다. 암 투병 중에 계신 작은 어머니를 구원받게 하려다가 작은 형님 내외분의 반대에 부딪쳐 미루고 있다가 구원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가셨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하지 못한 죄인이다.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 불에 떨어졌다면 지금쯤 얼마나 원망할는지. 중학교 1학년 때, 아무 잘못도 없는 남동생을 때렸던 죄. 그동안 몇 번이나 회개하고 회개했지만 그래도 마음에 걸려 또 회개한다. 동기간들에게 너무나 무심하고 무정했던 인간. 어려운 처지에 있는 걸 알면서도 찾아뵙지 못하고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참으로 무심했던 것.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눈물짓게 했던가. 친구니까, 형이니까, 오빠니까 혹시나 위로받고 싶었을 텐데 수도자라고 매정하게 끊어버린 무정함은, 인정도 눈물도 없는 정떨어진 냉혹한 인간 자체였다.

또한 목회를 한다고 하면서 얼마나 많은 성도들을 울면서 떠나가게 했던가. 어리석은 죄인인 나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실족하고 또 얼마나 많이 지옥에 갔을까? 신학교 강의를 성의 없이 빛 가운데 하지 못하여 얼마나 많은 신학생들이 실망하여 신학교를 떠났던가. 게으르고 악한 수도회 원장이 되어 회칙과 성무일과, 철저한 삶을 살지 못하고 외식하며 이기주의로 사는 모습을 보고, “저런 사람과 함께 수도생활 하기 싫다.”고 떠나간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또한 나의 욕심과 이기적인 모습 때문에 공동체를 욕하며 떠나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생각하게 된다.

“주님, 이 죄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실망을 하고 상처를 받았습니다. 이 죄인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가련한 자입니다. 이 죄인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 죄인은 어머니 태중에서부터 죄인이었습니다. 이 죄인을 빚을 때부터 죄로 빚었던 자입니다. 부디 용서하여 주옵소서.”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나 고등학교 때 서울로 올라와 막노동판 일꾼으로 세상을 비관하고 극도의 절망 속에 살았다. 내 주변은 온통 절망뿐이었다. 버림받은 인간으로 살다가 24살에 폐결핵까지 걸려 자살하려다가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버림받은 인간으로 24년 살다가 교회를 다니니 ‘선생님’으로 불러주었다. 은혜를 받고 신학생이 되자 ‘전도사님’으로 부르고 졸업하고 경상도 상주에 목회 발령을 받고 목사안수를 받자, 아버지 어머니뻘 되는 장로님, 권사님들이 “목사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하면서 주의 종으로 섬겨주니까 진짜 목사나 된 것처럼 어느 때부턴가 대접받고 인정받기를 좋아하였다. 내 생각대로 따르지 않으면 싫어하고 잘 따르는 사람들을 좋아하고, 아주 교만으로 이기적인 인간이 되었다.

이름도 없이 박씨라고 불리며 노예처럼 일하고 돈 몇 푼 받다가 목사가 되어 ‘님’ 자를 좋아하다 보니 주제를 망각하고 교만해졌다. 이제 반백이 되어 조금 철들고 보니 그렇게 좋던 ‘님’자가 별게 아닌 생각이 든다. 불행한 환경과 매정한 사람에게 시달리면서 삶을 비관하고 사람 경계하는 습관만 길러져 성격이 원만하지 못해 가시가 많은 사람이 된 것 같다. 이런 못난 성격 때문에 교회에서, 신학교에서, 수도원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어려움을 준 장본인이기도 하다.

“하나님, 이 교만하고 포악하고 음란하고 거짓되고 질투하고 나태한 이 죄인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참으로 죄악의 씨요, 위선자요, 무심하고 무정한 자입니다. 짐승만도 못한 죄인이요, 기생충과 같은 죄인입니다. 오! 이 죄가 뼈 속 깊이 사무쳐 있습니다. 내 생활이 온통 죄로 습관 되고 죄로 범벅이 되어 있습니다. 말과 생각 손, 발, 숨결 하나하나가 다 죄뿐입니다.”

내 정신에서는 역겨운 위선의 냄새가 발산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훌륭한 수도자나 된 듯 성자나 된 듯 맨발로 다니며 자만의 역겨운 냄새를 풍기고 있다. 숨 쉴 때마다 미련하고 어리석은 악취가 나고, 걸음걸음이 정욕의 냄새로 진동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인들처럼 해보려 꾸미고 가꾸며 허례와 위선에 빠져 살았던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도 든다.

“하나님, 깨끗한 마음을 새로 지어주시고 꿋꿋한 뜻을 새로 세워주소서. 당신 앞에서 나를 쫓아내지 마시고 당신의 거룩한 뜻을 거두지 마소서”(시51:10-11).

“하나님 내 제물은 찢어진 마음 찢어지고 터진 마음을 당신께서 얕보지 아니하시니 어지신 마음으로 시온을 돌보시어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쌓게 하소서”(시51:17-18).

주님 앞에 진심으로 참회하며 용서를 구한다. 모두가 다시 한 번 주님 안에서, 진리 안에서 화목하기를 원한다. 나 때문에 실족한 심령들이 새롭게 회복되기를 바라고, 상처받고 섭섭한 마음 가진 분들에게 하나님의 큰 은혜가 베풀어지기를 바란다. 불쌍한 죄인인 나에게 베푸실 자비가 있으시다면 내 몫을 그분들에게 부어주시기를 간절히 바랄뿐이다.

박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