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의 길로


어느 날 거지처럼 다 떨어진 옷을 입고 길을 가고 있었다. 가는 길에 마침 마을에서 가장 심술궂고 못된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어디가? 이리와 봐.” 그 사람은 다짜고짜 그를 끌고 가더니 길가에 있는 나무에다 새끼줄로 꽁꽁 묶어 놓았다. “꼼짝 말고 이렇게 있어!” 이런 말 한마디 하고는 자기 갈 길로 가버렸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불같이 급한 성격이었다. 이웃집 닭이 자기 집 마당에 들어오면 얼마나 급하게 쫓았는지 닭이 날갯죽지가 빠질 정도로 혼을 냈다. 그러던 그가 예수님을 믿고 변화된 후 세상 사람들에게 바보 취급을 받아도 그저 예예하였다. 본래 불같은 성격인데 이런 일을 당하고도 그저 순한 양이 되었으니 얼마나 철저히 자기를 부인하고 자아를 깨뜨리고자 몸부림쳤겠는가? 나무에 묶어 놓고 간 사나이는 다른 곳에서 자기 일을 보면서 아침에 한 일을 깜박 잊었다가 오후에 그리로 지나가게 되었는데, 그때까지 나무에 묶인 채 잠자코 있었다.

“저런, 왜 풀고 가지 않고 여태까지 이렇게 있었소?” 사나이가 미안해 묻는 말에 “매는 것도 법이니, 푸는 법이 또한 있어야 가지요.”라고 말하면서 아무런 원망도 하지 않았다.

기독교를 핍박하던 박 씨 문중의 어떤 사람이 마을 네거리에서 그를 들어 비석 위에 올려놓고 농으로 “여기서 꼼짝 마!”라고 했더니 온종일 그대로 있었다. 이 자식, 저 자식 하여도 그저 예예할 뿐이었다. 저녁 무렵이 되어 “이젠 내려가도 괜찮을까요?” 하며 묻고서 내려왔다. 박 씨는 그때 자기의 소행을 몹시 부끄러워하며 훗날 예수님을 영접하고 신앙을 갖게 되었다.

어느 날 한 마을을 지나가는데 마을 개구쟁이들이 길을 막고 서서 지나가지 못하게 하고 팔을 비틀고 괴롭게 하였다. 아이들은 그에게 “문둥이, 비렁뱅이, 너는 내 아들이다.”라며 놀려댔다. 그래도 그는 묵묵히 지나갔다. 이 공은 스스로 반성하기를 “사자의 입도 막으신 하나님께서 어린아이들의 입 하나 못 막아내서 내게 이런 애매한 말을 듣게 하시는 것인가? 아이들이 나를 문둥이라고 욕하는 것은 몸은 비록 문둥이가 아닐지라도 내 속에 문둥병이 있는 것을 하나님께서 알려 주심이 아니겠는가? 아이들의 입을 통해서 비렁뱅이라고 하는 것은 비록 내가 세상 사람에게는 비렁뱅이가 아니라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야 빌어먹으니 옳은 말이다.”하면서 자신을 철저히 낮추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5-8).

자기 마음에 행여 교만이 일어날까 봐 길을 다닐 때에는 거의 고개를 숙이고 다녔다. 항상 겸손을 실천했고 자기를 높이는 것을 몹시 싫어했다. 옷이나 태도, 심지어는 꿈에서까지도 교만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옷도 남보다 좋은 것을 입으면 그 옷이 마음에 교만을 일으켜 어느 새 남을 낮게 보고 멸시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음식을 먹을 때에도 상을 차려 먹지 않고 맨 땅에 그냥 놓고 먹었다. 혹시 누가 밥상을 차려와도 마음이 높아진다고 싫어하고, 자기는 죄인이라면서 맨 땅에 그냥 놓고 먹었다. 어디를 가려면 먼저 스스로 자기 마음을 살펴보아 어떤 동기에서 가고 싶어 하는가 반성해보고, 자기 생각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성령님의 뜻이라고 느껴져야만 비로소 일어섰다. 같은 마을의 어느 집에 찾아 갈 때에도 그랬고, 어디서 유숙하게 되는 경우에도 꼭 성령님의 뜻을 물었다. 어느 집에 들어가기 전에는 우선 대문에서 발을 멈추고 자기 마음을 일단 반성해보았으며, 마음에 지금 찾아가는 사람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들어가지 않고 그 길로 발길을 돌려 되돌아갔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13:1-3).

이 말씀처럼 사랑이 없이 누구를 찾아간다면 상대편에게도 자기에게도 아무런 유익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성령님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였다.

“처음에는 성령님의 감동이 오는 것인데 이는 누구나 쉽게 받는다. 성령님의 감동은 항상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냥 지나가기 쉽다. 그 다음에는 성령을 받는 것인데 이는 회개하여야 한다. 사람이 햇빛을 받으려면 방에서 뛰쳐나오는 것과 같이 자기에게 달렸다. 회개하고 안 하고에 따라 성령님은 들어갔다 나왔다 한다. 그 다음에는 성령 충만을 받는 일인데 이것은 성령님을 완전하게 받는 것이다. 완전하게 받으면 그때는 다시 떠나지 않는다. 이것은 그릇에 물이 가득 담기면 넘쳐흐르는 것 같은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방과 같다. 마음이 거룩한 성전이 되면 성령님이 들어와 계신다. 그러므로 자기를 항상 깨끗이 준비해야 한다. 사실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시면 어두운 행실을 하려고 해도 못하는 법이다. 성령님이 더러움에서 나를 지켜주시는 것이다. 우리가 정과 욕심을 순간순간 십자가에 못 박아야 성령님을 받기 때문에 성령님을 받기 위하여 자기도 애를 써야 한다.”

그러면서 신자가 건전한 믿음생활을 하려면 ‘신비’, ‘경험’, ‘지혜’, ‘지식’의 네 가지를 겸비해야 된다고 하였다.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며

그는 사람을 차별 대우하지 않았다. 거지가 구걸하건, 반가운 귀빈이 오건 집 식구들이 먹는 것과 똑같이 대접하였다. 어떤 때 부인이 화를 내면서 거지를 박대하는 눈치면 아내를 타이르면서 거지도 우리에게 찾아오는 손님이니 똑같이 대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주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신 성경 말씀 그대로 실천하려고 했다.

거지가 구걸하러 와서는 평소에 먹는 대로 주니까 너무 형편없는 음식이라며 안 먹고 가는 이도 있었다. 때로 거지에게, “당신은 혹시 마을 잔칫집에 가서 한 끼라도 잘 먹을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만, 이놈은 우리 주님의 은혜를 알고 난 후부터는 지금까지 좋은 음식이라곤 입에 넣어본 일이 없습니다.”라고 했다.

어느 날 병중에 있을 때, 미국인 노나복 선교사가 지나가다가 소식을 듣고 귤 몇 개를 드리고 간 일이 있었다. 회복된 후 몇 개의 계란을 가지고 선교사를 찾아가서 문병 왔을 때에 잘 대접하지 못한 일을 사과했다. 그는 하나님의 종을 존대할 줄 알았고, 목사를 험담하는 사람이 있으면 책망했다.

한번은 사람들이 어느 목사를 험담하는 소리를 듣다가 “무슨 소리를 그렇게 하시오. 그래도 목사님이라면 교인들을 앞에 놓고 가르치는 분이신데 그럴 수 있겠소. 그만 두시오.”라고 했다. 그래도 듣지 않고 계속 험담하자, “여보시오, 그만 두라면 그만 두지 왜 그러시오. 그런 말은 남의 험담이란 말이오. 남의 허물을 덮어 주어야지,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하지 않았소.” 하고 말렸다.

남들의 칭찬이나 악평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비평에 따라 태도를 달리한 적도 없었고, 언제나 여전히 한 길을 갔다. 자기의 명예나 호평 따위는 꿈에도 기대하지 않았다. 다만 자기의 생활 태도를 성경에 비춰보아 맞느냐 안 맞느냐를 반성할 뿐이었다. 남이 자기를 칭찬하는 일이나 존대하는 일은 절대로 싫어하고, 그런 것은 마귀 대접이라 여겼다. 칭찬이라는 것은 약자가 받으면 교만이 생기는 법이요, 덕이 장성한 사람이 받을 때는 도리어 괴로울 뿐이라고 하면서, 그러기에 칭찬은 무익한 것이라고 말했다. 명예 따위는 털끝만큼도 구하지 않았다. 오직 진리만을 추구하고 진리대로 살려고만 애를 썼다. 눈 한 번 뜨는 것, 발 하나 옮겨 놓는 것까지도 진리가 아니면 하지 않았다.

늘 지혜롭게, 솔직하게, 양심대로 살라고 가르쳤다. 그는 솔직했고, 남도 솔직한 것을 좋아했다. 솔직하지 않을 땐 책망했다. 무엇이나 사실대로 해야지, 사람이 일부러 꾸며 만든 것은 오래 가지 못하는 법이라고 절대로 금했다. 자기를 아는 사람은 스스로를 낮추며 사람의 칭찬을 즐기지 않는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오로지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았다. 자랑은 교만이 되기 쉽고, 교만은 쉽사리 많은 적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겸손은 온전한 처세를 위하여 빼놓을 수 없는 덕목이다. 겸손은 지혜로운 자의 몫이며 믿음의 사람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이기도 하다.

 

이세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