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정을 죽여 버렸다

손에 쟁기를 잡은 자가 뒤를 돌아보는 것이 합당치 않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은 그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했다. 인정 관계에 얽매이지 말라는 것이다. 오늘날 주님의 교회를 메고 나가는 사역자는 자신이 이 소의 운명인 것을 각오하여야 한다.

다음은 이성봉 목사(1900-1965)의 간증이다.

『나의 모친이 별세했다는 비보를 듣고 여러 해 만에 고향에 갔으나 곧 만주교회에 약속한 집회 일자가 임박하여 겨우 하룻밤을 집에서 쉬고 그 이튿날 새벽에 떠나게 되었다. 시끄러운 집안 일이 내가 와야 정리되리라고 집에서 기다렸으나 불과 몇 시간 만에 떠나게 되니 참 딱한 사정이 많았다.

그러나 주님의 군사는 사사로운 일에 매이지 않는다는 말에 위협을 받아서 캄캄한 길을 더듬으면서 집을 떠났다. 그날 이른 아침으로 평양에 당도하여 남의 집에서 공부하는 어린 딸들을 찾아갔다.

마침 어린 두 딸은 저희들끼리 배급 쌀로 죽을 끓여 놓고 찬바람이 휘휘 도는 냉방에 앉아서 서로 떠먹고 있었다. 여러 날 만에 아비를 만난 어린아이들은 퍽이나 반가워하는데 죽을 떠먹을 때마다 어려운 사정을 애원하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아비 된 나로서는 마음이 비길 데 없이 심히 아팠다. 만주 집회를 연기한다고 전보를 치고 며칠간 아이들을 돌아보아야 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일어났다.

그러나 나는 인정을 죽여 버렸다. 새끼 낳은 소를 생각했다. 아버지는 만주교회에 집회 약속을 했으니 불가불 가야 되겠다 하고, 차마 일어서지 못할 사정을 이기고 벌떡 일어섰다. 차 시간에 도착하려고 바쁜 걸음을 재촉하다가 돌아보니 아이들이 아비를 전송한다고 추운 겨울날에도 불구하고 따라 나왔다. 뒤축이 다 떨어진 운동화를 끌고 양말은 여기저기 구멍이 나서 붉은 살이 나오고, 따뜻한 털모자 하나 쓰지 못하고 떨어진 수건으로 귀를 싸매고 따라온 모습을 볼 때, ‘에라 돌아서자 만주 일자는 좀 연기하기로 하자’하는 생각이 또 들었다. 하지만 또 하나님의 법궤를 멘 새끼 뗀 소가 번개같이 떠올라 다시 결심하고 기차에 올랐다.

기차가 떠날 때까지 가라고 하여도 들어가지 않고 떠나는 아비를 전송하려고 떨고 서 있는 어린 딸들을 보니 자연히 눈물이 흘러 나왔다. 기적 소리가 들리자 오리발같이 언 두 손을 들어서 흔들어 주었다. 나는 멀리 멀리 그들이 그늘 속에서 슬며시 사라져 가는 것을 보면서 평양역을 기어이 떠났다. 기적 소리가 사라지고 그들의 섰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는 벌써 기차가 대동벌을 지나고 있었다. 그러나 내 가슴 속에는 붉은 두 손길이 아직도 흔들고 따라왔다.

이때의 심경은 전에 없던 가족애로 치우쳐서 얼마 동안은 억제하기 어려웠다. “아! 너는 주의 멍에를 메고 가는 소가 아니냐? 뒤를 생각지 말고 앞만 향하여 걸어가라.” 나는 이 음성에 다시 용기를 얻어 목적지로 향했다.』

혹 혈육에 대한 애정에 매여 주님의 일을 등한시하고 있지는 않는가? 혹은 주저주저하며 머뭇거리고 있지는 않은가?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또 다른 사람이 가로되 주여 내가 주를 좇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케 허락하소서.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눅9:60-62).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 서기 위해서는 순간순간 혈육에 대한 애정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 비록 가슴에 피멍이 드는 고통이 따를지라도 벧세메스로 올라갔던 암소처럼 묵묵히 이 길을 걸어가야 한다.

이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