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 또 다른 생명을 낳고

8월의 무더위 속에서 3박 4일의 일정으로 영성학교의 ‘청소년영성캠프’가 시작되었다. 수련회가 시작되기 전에는 매번 여러 생각이 교차한다. 두근거리는 심장과 호기심이 마음속에 가득하다. 어떤 아이들이 같은 조가 될까? 아이들에게 끝까지 인내하면서 사랑으로 잘 대해줄 수 있을까? 아이들과 눈을 맞추며, 웃음을 잃지 않는 겸손한 교사가 될 수 있을까? 고민과 떨림이 반복되면, 어김없이 피할 수 없는 시간이 다가온다.

낯선 얼굴들이 같은 조가 되면 우선 마음이 경직된다.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 어떻게 친해져야 하는지 진땀이 난다. 이번엔 유난히 처음 보는 얼굴들이 우리 조에 많다. 아이들은 마치 설익은 감자 같아서 계속 찔러봐야 한다. 마음이 열려 있는지 닫혀 있는지, 지금 상태가 불안한지, 아니면 귀찮은지, 힘든지, 행복한지 도통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말을 하는 울퉁불퉁한 사춘기의 청소년들. 먼저 다정하게 이름을 부르며 친한 척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진짜 친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름을 부르고 계속 관심을 가지다보면 무표정한 아이들의 얼굴이 점점 변하면서, 마음의 빗장을 조금씩 열고 순수한 눈빛으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특히 처음 온 아이들과 겉도는 아이가 다른 조에 비해서 비교적 많았던 우리 조를 보면서 기도가 절로 나왔다. “주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하지요? 은혜를 베풀어주세요.” 평소에는 소심하고 예민한 나도 아이들을 만나면 어느새 잘 웃고 소탈하며 긍정적인 사람이 되어 있다. 아이들이 나를 그렇게 만든다. 아무리 세상이 악하고 험하다고 해도 아이들은 순수하다. 아무리 말 안 듣고 무신경한 아이일지라도 그들도 주님이 지극히 사랑하시는 한 영혼이기에 결코 포기할 수 없다. 내 안에 계신 주님께서 그들을 향한 작은 희망을 품게 하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아이들을 무척 사랑하셨다. 어른의 잣대에서 보면 아이들은 귀찮은 존재, 아직 성숙하지 못한 존재들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이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뭔가 선을 긋고 자신의 틀을 만드는 위선적인 어른들보다 날뛰는 망아지 같지만 순수한 아이들이 더 나을 때가 있다. 우리 조가 비록 수련회 때 얻은 점수는 뒤에서 두 번째였지만, 함께 웃을 수 있었고 소통할 수 있었다. 아직 시작이지만, 한 발 한 발 천천히 아이들과 발 맞춰 걸어가고 싶다.

마지막 날,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되었을 때 마치 감옥을 나가는 사람들처럼 너무 행복해 했다. 특별히 마음이 쓰였던 삼총사 녀석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내게 인사를 건네는데, 서운한 마음까지 든다. ‘요 녀석들, 너희는 한 번 왔다 가면 그만이지.’ 하면서 이제 조금 알 것 같고 친해지려고 하는데 이별이니 마음 한구석이 아려온다. 집으로 돌아가 세상에서, 가정에서, 학교에서 치열하게 싸워나갈 이들을 생각하니 또 가슴이 아팠다.

헬렌 켈러의 옆에는 항상 설리번 선생님이 있었다. 삼중고를 겪고 있는 장애인이었지만, 명석한 사람도 들어가기 어렵다는 하버드대를 졸업하는 쾌거를 이뤘다. 설리번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이룰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세상적인 성공보다 영적으로, 인격적으로 더 많은 영향을 미쳤던 설리번 선생님. 암흑 속을 헤매던 헬렌에게 꿈과 용기를 심어주고, 하나님 안에서 당당히 펼쳐갈 수 있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한 알의 밀이 전적인 희생과 사랑으로 땅에 떨어져 또 다른 아름다운 생명의 열매를 맺은 것이다.

지금 이 시대에 우리 청소년들에게도 이런 선생님이 절실하다. 가야 할 바를 알지 못하고 방황하는 청소년들을 위해 눈물의 기도와 헌신적인 사랑을 베풀 수 있는 교사로, 아이들을 위해 드려지는 희생의 제물로 주님께 태워지고 싶다. 혼란스러운 이 세대에서 바른 영적인 가치관과 목표를 심어주고, 하나님 안에서 꿈을 펼칠 수 있는 용기를 불어 넣어주는 밀알이 되고 싶다. 이것이 아이들이 성장해서 또 다른 생명들을 낳는 밑거름이 될 것이므로. 내가 밀알이 되면 또 다른 밀알이 태어나는 이치를 아이들을 통해 배운다. 그런 역사가 많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기도드린다.

허윤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