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원하시는 기적의 삶

 

헌팅턴이라는 희귀병으로 뇌병변 1등급을 받은 남편은 발병 전까지는 성실하고, 온유하며, 명석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능력이 감퇴되어 스스로 할 수 있는 활동은 거의 없습니다. 하루 종일 소파에 앉아서 자다 깨다 합니다. 손을 사용하는 기능이 저하되어 식사는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만 할 수 있습니다.

날마다 반복되는 일과 중에 남편이 하루에도 수없이 먹을 것을 찾으며 줄 때까지 심하게 고집을 부리거나, 용변의 실수가 잦을 때는 때때로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힘을 달라고 매달리면 그 화가 어느새 사라지고 다시 사랑할 힘이 생깁니다.

미움과 분노를 삭이고 사랑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적은 엄청난 것, 큰 것,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 내면의 변화야 말로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그것은 자신을 버리고 타인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인내의 기적, 현세가 아닌 내세에 받을 상을 바라보고 걸어갈 수 있는 용기의 기적, 멸망하는 이들에게는 어리석게 보이는 십자가를 받아들일 수 있는 희생의 기적입니다. 예수님은 저에게 날마다 이런 기적 가운데 살아가도록 부르시고 이끌어 가십니다. 지금 유일한 소망이요 위안은 인내와 희생과 용기의 모범이 되신 사랑의 예수님을 바라보며 함께 걷고 있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능력의 길 예수』에서 댄 바우만은 1997년 이란에 단기 선교를 갔다가 출국 관정에서 간첩죄의 누명을 쓰고 이란 감옥에 갇혀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으면서 체험한 하나님을 간증하고 있습니다. 댄 바우만은 주님이 그때 자신에게 폭언과 고문을 가했던 간수들을 사랑하라고 하셨지만 도무지 순종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댄, 내가 이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에게 물어보렴.” 처음에는 “알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했지만 결국 기도 중에 ‘주님, 이 사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하고 물었습니다.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마음에 자신을 심문하던 간수에 대한 사랑과 긍휼함이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어느 날 감방에 있는데 바깥에서 간수들이 나누는 대화가 들렸습니다. 그들은 페르시아어로 말했지만 이미 페르시아어를 공부하였기에 대화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도대체 기독교인들은 자기들을 잡아 죽일 것을 알면서도 왜 이곳에 오는 것일까? 그리고 왜 자기를 죽일 수도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축복기도를 하는 걸까?” 댄 바우만이 감방에서 기도할 때, 도청장치를 통하여 다 듣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한 간수가 말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인들이 무엇을 믿고 있는지 알아.” 그 간수는 오래 전에 들은 복음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댄 바우만은 놀랐습니다. 며칠 동안 그들의 대화를 엿듣는 중에 그들 중 세 명이 스스로 예수님을 영접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9주 뒤에 재판이 열렸고, 댄 바우만은 무혐의로 풀려났습니다. 판사가 그를 포옹하기까지 했습니다. 자신을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사랑으로 기도하게 하신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우리에게는 사랑과 긍휼의 속성이 없습니다. 그것은 오직 예수님에게서 옵니다. 5년 전 보았던 예수님의 모습은 채찍으로 얼마나 많이 맞았는지 등은 빈틈없이 갈라져 있었고 가시관 쓰신 이마에는 피가 검붉게 엉겨 붙어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은 우리에게 헌혈 정도의 수준으로 주신 것이 아니라 사용하고 또 사용해도 마르지 않는 샘으로 피 한 방울 물 한 방울까지 다 쏟아주셨습니다. 우리 대신 죽어주신 사랑 때문에 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디언 속담에 친구는 “상대방의 고통을 등에 지고 가는 사람”이라고 했듯이 예수님은 우리의 짐을, 우리의 고통을 친히 지고 가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너도 가서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남편이 겪는 육신의 질고를 대신해 줄 수 없기에 다만 옆에서 손 잡아주고 사랑으로 돌볼 수 있도록 간구합니다.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신 예수님처럼 그렇게 우리를 비워 예수님의 빛을 비추며 사는 삶이 바로 주님이 원하시는 기적의 삶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박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