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은 더러운 음란의 영과 전쟁을 선포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하루가 멀다 하고 성에 관한 폭력적인 기사들이 넘쳐나는 요즈음, 마귀는 인간을 타락시키려는 최종병기로 음란을 선택했다.

‘도가니’의 고발

지난 9월 22일 개봉한 영화 ‘도가니’는 광주 ‘인화학교’라는 장애인 학교에서 벌어졌던 어린이 성추행·성폭행 사건의 실제를 다루어 충격을 주었다. 관객들은 거대 악이 이기는 과정을 ‘분노의 도가니’가 되어 지켜봐야 했다. 영화를 봤던 관객은 누구나 분노와 그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영화 ‘도가니’를 본 관객들은 이토록 끔찍한 아동 성폭행이 일어났다는 사실조차 몰랐다는 것, 알았더라도 무심히 지나쳤다는 것에 대한 집단적 죄책감과 분노에 떨어야 했다.

도가니 현상은 정치권을 자극하여 ‘도가니 방지법’을 만들어 ‘시설’이라 불리는 사회복지법안의 비리 척결에 의욕을 보이고 있다. 또한 6년을 끌어도 해결하지 못했던 ‘인화학교’ 사건을 영화가 개봉 된 지 불과 7일 만에, 경찰은 전담팀을 구성하여 재수사가 시작되었다. 인화학교의 어두움이 영화를 통해 드러나면서 밝혀진 사실 가운데 통탄할 일은 도가니의 실제 가해자가 바로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었다. 그것도 교회의 직분자였다.

성폭행이 이뤄졌던 학교의 교장실 벽에 십자가와 성구 액자가 걸려있고, 가해자의 양복에 금색 십자가 배지가 보였던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가해자가 구속됐을 때 그 교회의 성도들은 그를 옹호하는 성경 구절이 담긴 피켓을 들고 찬송을 불렀다. 법정 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말하기도 부끄러운 장면들이 너무도 많았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이 영화를 본 세인들이 교회를 향해 뭐라 말할지는 뻔하다.

음란은 거룩해야 할 교회라고 예외가 아니다. 목자가 양을 겁탈하고 성도들 간에도 불의한 성관계가 은밀히 자행되고 있는 현실이다. 주님은 일찍이 케냐의 데이빗 오워 선지자를 통해 교회의 음란문제를 책망하신 바 있다.

잇따른 성폭력 사건으로 인해 ‘분노의 도가니’가 되어 들끓고 있는 대한민국은, 영화 ‘도가니’뿐만 아니라, 고려대 의대생 성추행 사건, 건국대 사건, 동료 여학생 집단 성폭행 등 구석구석에서 음란의 더러운 악취가 코를 찌르고 있다. 특히 인터넷에는 음행과 불법 교제를 부추기는 사이트가 판을 치고 있다.

마귀의 은밀한 유혹

죄인들에게 뿌리박힌 일곱 가지 죄성 중의 하나인 음란은 마치 마약이나 담배, 술에 중독되는 것과 같이 한번 파고들면 깊이 빠지게 되어 벗어나기 어렵다. 성도들의 마음과 행실이 음란성으로 더렵혀지지 않고 음란의 세력을 이기기 위해서는 무조건 피하는 게 상책이다. 남녀 간에는 은밀히 만나거나 어울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주님만을 사랑하는 마음이 늘 충만하기를 힘써야만 음란 마귀의 유혹을 이길 수가 있다.

우리가 순간순간 음란성이나 남녀 간의 애정과 성욕의 지배를 받아 더러워진 생각, 감정, 의지, 말, 행동 등 지극히 작은 것까지도 잘 성찰하면서 철저히 참회생활을 해야만 영적으로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식욕과 수면욕 등을 절제하는 생활을 철저하게 실천하면서 남녀 간의 애정과 성욕이 자극되지 않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께 드려진 나실인이자, 이스라엘 백성들을 블레셋으로부터 구원하는 하나님의 사사였던 삼손은 한때 나귀의 턱뼈로 블레셋인 1000명을 죽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블레셋 여자 데릴라에게 푹 빠지게 되자, 자신의 힘의 원천인 머리카락의 비밀을 누설하고 만다. 결국 블레셋 족속들에게 체포되어, 두 눈이 뽑힌 채 노예로 전락하여 연자 맷돌을 돌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음란에 넘어지지 않을 장사가 없다. 마귀는 종종 음란을 가지고 목회자와 성도들을 넘어뜨린다. 성경은 음란성의 지배를 받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말씀을 많이 하고 있다.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고전6:18).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히13:4).

음란은 아차 하는 순간에 성도들을 넘어뜨리고 파멸시키는 무서운 적이다. 특히 남자는 눈으로 보면서 자극받아 음란에 잘 넘어지는 약한 존재다. 마귀는 목회자들과 성도들을 어떻게 음란으로 넘어뜨릴지 잘 알고 있다. 연약한 우리는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해야 할 것이다.

음란을 회개하라

일찍이 성 분도 라브르 요셉은 “여자가 내 몸에 손을 대면 그 부위를 칼로 도려내겠다”는 각오로 철저히 남녀 간의 애정과 음란을 경계하였다. 철저히 기도하며 경계하지 않으면 아차 하는 순간에 넘어지기 쉬운 게 음란이다.

사무엘하 13장을 보면 다윗의 아들 암논이 음욕의 불길 때문에 침상에 누워 병든 척 하다가 간호하러 왔던 누이 다말을 강간한 내용이 나온다. 이 사건으로 인해 다윗의 집안은 압살롬이 암논을 죽이는 살인사건이 일어났고, 나중에는 압살롬이 다윗을 반역하다가 결국 죽게 되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일단락된다. 이 모든 것이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한 음란에서 비롯되었다.

음란한 마음은 처음 나타날 때 물리치지 못하면 점점 깊어지고 강하게 되어 나중에는 큰 죄악과 불행의 씨앗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님께서 음욕을 품기만 하여도 간음하였다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면서 무엇보다도 마음을 지키는 생활을 철저히 해야겠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 앞에 지극히 작은 죄도 철저히 조명하며 더러운 마음과 행실을 끊임없이 회개해야 한다. 우리의 몸은 거룩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고, 하나님께 드릴 거룩한 산 제물이며(롬12:1), 성령님이 거하시는 전이기 때문에(고전6:19) 음행으로 몸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

교회라고 그리스도인이라고 음란의 안전지대에 있는 것이 아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이 있다. 나는 작은 음란을 허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연약한 육신을 가진 우리가 이 음란한 세대에서 살아갈 방법은 무엇인가? 날마다 자기를 성찰하는 가운데 지극히 작은 유혹이라도 크게 여기고 철저히 회개해야만 한다. 주님의 순결을 열렬히 사모할 때 더럽고 추한 음란의 싹은 처음부터 잘라버릴 수가 있다. “주님, 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서 하나님의 순결한 자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붙들어주옵소서!”

이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