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한 사람을
작년 우리나라 총 출산율이 1명에도 못 미쳐 초저출산 국가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교육부는 2030년 449만 명으로 예측한 초, 중, 고교생 숫자(현재 559만 명)를 대폭 낮추기로 하고, 교사수도 지금보다 3~4만 명 정도 줄어들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부모님들의 안타까운 시선 속에서도 아이를 키우면서 희생해야 할 시간, 물질, 에너지를 자신의 행복을 위해 쓰겠다는 단호한 결정 하에 아이를 낳지 않거나 불임, 직장, 경제적 여건, 건강 등의 이유로 출산을 미루는 부부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줄고 교회학교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교회가 고령화 되고 문을 닫는 이유는 교육부서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일학생이 단 한명 밖에 없더라도 우리 마음대로 주일학교를 문 닫을 권한은 없습니다. 전도 동력의 상실, 문화 접촉점 상실, 동기부여 상실과 같은 문제와 맞물려 매 10년마다 30%씩 주일학교 숫자가 급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노력이 있었지만 접근성이 탁월하지 않아 큰 열매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괜찮은 대안 프로그램들은 재정이 넉넉한 교회, 헌신된 교사와 젊은 교사가 많은 중대형 교회만의 전유물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한계와 벽 앞에서도 주님은 한 영혼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기독교 교육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삶으로 직접 실천하면서 본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자신이 만난 하나님을 소개하고 자신이 닮아가고 있는 예수님의 향기를 발할 때 아이들이 변화되어 전도도 가능하고 부흥도 가능합니다. 공부로 세상 것으로 꽉 차 있는 아이들의 마음을 프로그램과 선물, 간식이 붙잡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뜨겁게 만난 아이들은 결코 주님을 떠나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심령에 복음을 심고 끊임없이 기도를 심어야 합니다.      
킴벌은 보스턴에 있는 한 작은 교회 ‘마운트버농 회중교회’의 주일학교 교사였습니다. 1858년 어느 날 구두방에서 일하는 자기반 학생을 직접 방문하여 성경을 가르치고 함께 기도하는 중에, 결국 그를 예수님께로 인도했습니다. 그 가난한 학생의 이름이 바로 후일 세계적인 전도자가 되어 미국을 감동시킨 무디(D.L.Moody)였습니다. 이렇게 회심한 후에 전도자가 된 무디는 21년 후 런던을 방문하여 큰 전도 집회를 열었고, 거기에 참석했던 메이어(F.Meyer)가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그 뒤 목사가 된 메이어는 미국에 가서 설교하였고, 그 모임에서 채프만(J.Chapman)이 회심하였습니다. 그리고 YMCA에서 일했던 채프만은 야구 선수였던 썬데이(B.Sunday)에게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나중에 전도자가 된 썬데이는 함(M.Ham)을 강사로 초빙하여, 노스캐롤라이나 샬로트에서 3주간 집회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너무나 실망스러웠습니다. 결신자는 겨우 십대 소년 한 명 뿐이었습니다. 그러니 거의 실패한 집회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소년이 훗날 전 세계 수 천만 군중에게 복음을 전하게 될 바로 ‘빌리 그레이엄’이었습니다. 한 주일학교 교사로부터 시작된 복음의 발자취입니다.
킴벌 선생님은 잘 알려지거나 크게 영향력 있는 인물이 아니었고, 오히려 성격이 소심하고 신경이 예민한 분이었습니다. 킴벌 선생님이 처음 무디를 만났을 때의 심경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무디가 나의 주일학교 반에 들어왔을 때 나는 그처럼 영적으로 어두운 아이를 처음 보았다. 더구나 어떤 일에 유용하게 쓰일 사람으로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무디 역시 한 동안 교회 생활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지낸 듯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킴벌 선생님은 가난한 무디가 실의에 젖어 살아가는 모습을 안타깝게 여겨 어느 날 무디의 구두 가게를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가게 뒷방에서 함께 무릎을 꿇고 무디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실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했고, 그 자리에서 무디는 깊은 감동 중에 예수님을 영접하게 됩니다. 이렇게 변화되어 세계적인 전도자가 된 무디는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는데도 3개의 학교를 세웠고, 미국과 영국에서 기독교를 크게 부흥시켰으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 그 영향력을 끼치고 있습니다.
마더 데레사의 말씀이 큰 공감과 거룩한 도전을 불러일으킵니다. “난 결코 대중을 구원하려고 하지 않는다. 난 다만 한 개인을 바라볼 뿐이다. 난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다.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껴안을 수 있다. 단지 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씩만… 따라서 당신도 시작하고 나도 시작하는 것이다. 난 한 사람을 붙잡는다. 만일 내가 그 사람을 붙잡지 않았다면 난 4만 2천명을 붙잡지 못 했을 것이다. 모든 노력은 단지 바다에 붓는 한 방울 물과 같다. 하지만 만일 내가 그 한 방울의 물을 붓지 않았다면 바다는 그 한 방울만큼 줄어들 것이다. 당신에게도 마찬가지다. 당신의 가족에게도, 당신이 다니는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단지 시작하는 것이다. 한 번에 한 사람씩.”
내게 맡겨 주신 한 영혼을 통해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실지 기대가 됩니다. 그 한 영혼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고 든든히 세워질 그루터기가 되길 오늘도 내일도 기도합니다. 그리고 오늘도 전도합니다.

이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