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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 붕대
흔들리는 나무 그림자들과 겹쳐지며
숲길을 걷다 보면,
바람이 애기솔 도래솔들의 파르스름한 머리를
빗질하고 있는 곁을 기분 좋게
지난다
푸른 솔과 내 숨결이, 때로 솔 아래
묻힌 이와 내가
바람의 정다운 끈으로
하나로 이어져 있음을 느낄 때
나는 그이들이 내뿜는
숨결보다 훨씬 더
큰 숨결에 닿아 있는 것이 아닐까
더러, 상처 입은 솔의 벗겨진 밑둥을
벌건 진흙 붕대로 싸매고 있는 손과 악수를 나누고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 볼 때
고진하
그늘진 숲길을 걷는데, 푸른 소나무 위로 산뜻하게 바람이 불고 지나간다. 일상적인 산책이다. 시인은 산책길에서 문득 ‘나’와 ‘솔’과 ‘솔 아래 묻힌 이’를 연결하는 끈을 깨닫는다. 깨달음은 상승 작용을 해서 마침내 그들의 숨결보다 더 ‘큰 숨결’의 존재인 하나님의 존재까지 나아간다. 큰 숨결을 깨달은 것은 ‘상처 입은 솔의 벗겨진 밑 둥을 벌건 진흙 붕대로 싸매고 있는 손과 악수를 나누고’ 하늘을 쳐다보았을 때와 일치한다. 나무의 상처를 치료하는 진흙 붕대처럼, 죄 많은 영혼을 큰 숨결로 치료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존재를 확인하는 순간이다.
‘나’는 산책하는 길에서 큰 숨결, 우리의 통로인 치유의 하나님을 만난다.
치유의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 나의 길은 평강하다.
뜨거운 열정으로 그분과 하나가 된다.
나의 길 위에서, 눈 먼 내 눈에 진흙을 이겨 발라주시던 예수님의 손길을 추억하노라니, 지금 내가 가는 길이 그저 눈물겹고 감사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