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바치는 사랑

어렸을 때 구약성경을 읽다보면 납득이 가지 않을 때가 많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거듭 반역하고, 틈만 나면 우상을 숭배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나님은 유난히도 민족성이 나쁜 이스라엘을 선택하셔서 고생이 많다고 생각했다.

어른이 된 지금, 구약성경에 나온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면 거울을 보는 것 같다. 그렇게 매를 맞아도 뒤돌아서면 또 죄를 짓는 것을 보며 측은함을 느낀다. 세상에서 가장 배은망덕한, 우상을 만들기 좋아하는 이스라엘의 모습 속에 내가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으로 부모님께 거짓말을 했다. 당시 최고 인기를 누리던 아이돌 가수의 공연에 가기 위해서 친구들과 학교 숙제를 하기로 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날은 공교롭게도 주일이었다. 눈치 채신 부모님께서는 주일 저녁예배에 같이 가자고 하셨지만 끝까지 고집을 부렸고, 결국 늦게까지 공연을 보다가 집에 들어가서 혼난 기억이 있다. 그때 나의 우상은 아이돌 가수였다.

고등학생이 되니 아이돌 가수는 유치해졌다. 내가 독차지할 수 있는 존재, 나와 눈높이를 맞혀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그때 우연히 음악성이 뛰어난 한 무명 가수를 알게 됐고, 그의 홈페이지에 매일 글을 남겼다. 결국 나는 내 우상이 된 가수와 휴대전화 번호도 주고받는 사이가 됐다. 문자를 한 번 보내면 답장이 올 때까지 오매불망 기다렸다. 집이나 학교나 교회에서 내 생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 그 가수였다. 후에 내가 유명한 뮤지션이 되어 그와 어깨를 겨누는 사이가 되기를 꿈꾸곤 했다. 그의 팬들은 점점 늘어나 어느덧 조그마한 팬클럽도 생겨나고, 얼떨결에 팬클럽 부회장 자리까지 맡게 되었다. 직접 연락하며 정기 모임을 주선하던 나는 팬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하나님은 나를 내버려두지 않으셨다. 대학생 선교단체에서 훈련을 받으면서부터 팬클럽 부회장 자리가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청년의 때에는 하나님만 사랑해야 합니다.’ 하시던 멘토의 말씀이 자꾸 맴돌았다. 무엇보다 속에 계신 성령님께서 양심을 불편하게 하셨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내 인생에 잊히지 않을 말씀을 주셨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6:4-5).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음을 다하여하라는 말씀에 충격을 받았다. 분명 내 마음은 나뉘어 있었고, 하나님을 부분적으로 사랑하고 있었다. 아니 그 무명가수를 사랑하고 남은, 아주 작은 부분을 하나님께 떼어드리고 있었다. 하나님은 분명한 어조로 나누임 없는 마음과 혼신을 다한 사랑을 요구하고 계셨다. 마침내 말씀에 순종하여 3년간 섬겼던 우상을 무너뜨렸다. 부회장을 내려놓고, 그와 관계된 모든 것을 정리했다. 그때 내게 임했던 성령의 충만함을 아직까지 잊지 못한다.

팬클럽을 탈퇴하며 이제 더 이상 내겐 우상이 없다.’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눈에 보이는 우상은 없어도 순간순간 나의 마음과 생각을 지배하는 또 다른 우상들이 너무나 많았다. 일의 성취,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 생활의 염려, 세상의 욕심 등이 순간순간 마음을 지배했다. 나는 그것들을 품고 있다가 우상으로 발전시켰다. 하나님은 침묵하시다가 사태가 심각해질 즈음 다양한 환경과 사람들을 보내셔서 고통을 당하게 하셨다. 그제야 나는 깨닫고 회개하며 우상을 깨뜨렸다. 이것이 나의 역사이고 곧 이스라엘의 역사임을 깨닫기까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독일의 마리아 자매회를 설립한 바실레아 쉴링크는 자신의 영적인 딸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의 소명이다. 나의 딸들에게 바라는 나의 최고 소망은 그들이 이 소명에 합당하게 사는 것이다. 예수님에 대한 나의 사랑은 내가 오래도록 찾은 끝에 발견한 값진 보배이며, 그렇기에 내게는 특별히 소중한 것이다. 예수님의 신부로서 갖는 사랑 안에서 나는 비로소 온전한 행복과 만족을 발견했으며, 그 사랑은 나의 모든 문제와 의문의 해결점이 되어주었다. 그의 사랑이 나에게 구애하며 내 마음에 불길을 일으킨 이후로 나의 생각과 감정은 온통 그리스도께 대한 것뿐이다. 그는 내 삶의 중심이시다.”

예수님을 사랑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은 마리아 자매회만이 아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마음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도록 부름받았다. 성 어거스틴의 말이 생각난다. “우리에게는 사랑하느냐, 사랑하지 않느냐를 선택할 자유는 없다. 오로지 무엇을 사랑하느냐 만이 우리의 의지와 자유에 맡겨져 있다.”

하나님을 섬길 것인가, 우상을 섬길 것인가? 먼 옛날 이스라엘의 이야기가 아닌 오늘 우리 앞에 놓인 질문이다. 주의 제단에 모든 것을 바치기 전에는 주님께 그 무엇도 받을 수 없다. 모든 것을 내어주신 주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드리고자 하면, 주님은 우리의 전부를 차지하시어 모든 것을 드릴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주신다.

박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