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를 이긴 봄의 왈츠

내가 사는 방은 춥다. 하긴 사택 전체가 좀 춥다. 사방이 큰 유리창으로, 값싼 비용으로 지어진 건물 끝 층이기도 하지만, 터무니없는 난방비를 줄이고자 전기 필름을 끊은 까닭이다. 교회완 관계없는 자원한 선택이다. 대신 13탄 연탄난로를 사용한다. 하루에 2개 정도면 거실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방들도 스크루지 사무실은 비교되지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내 방이다. 누가 그러란 게 아닌데, 괜히 다른 난방기구를 거부하는 방이다. 옷을 몇 겹 껴입고 두터운 양말과 구두를 신고, 무릎에 담요를 걸치면 된다. 입김이 나도 면장갑을 끼면 타이핑은 이상 없다. 웬 궁색이냐 싶지만 절약과 고난 참여에 나쁘지 않다. 올 겨울도 그렇게 지나갔다.

그런데 몇 년 만에 드디어 십 수 년을 이 방에서 함께한 난꽃이 폈다. 하얀색 속에 연한 보랏빛이 감돌고 속살은 아이보리로 여민 그 꽃을 보노라면 코끝이 찡하다. 가뭄과 추위를 잘 견딘 난은 고결한 기품마저 느껴진다. 은은한 향내가 감도는 꽃은 한번 피면 두 달은 족히 산다. 누가 보아달라는 것도 아니다. 충분한 영양과 잘 맞는 환경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단지 이따금씩 주는 맑은 물 한 모금, 그마저 잊기도 하고 무심키도 한 고독한 곳에서 묵묵히 견뎌왔다.

올해는 유난히 추웠다. 밤이 되면 이곳 창에는 서리가 낀다. 전기장판 한 장으로 이불을 머리까지 덮고 잔다. 추워서인가 감기도 이곳은 피해 간다.

하지만 추위가 못 막을 봄이 또 왔다. 그보다 더 먼저 나의 동반자인 난은 12개의 꽃을 피웠다. 성령의 열매를 맺으라 하시는 것에 응답한 것 같이.

견딘 모든 것은 아름답다. 참는 것은 다 신비롭다. 그 힘이 자기에게서만 나지 않는 까닭이다. 주님의 생애와 십자가의 절정은 참음에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가엾은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주님은 견디셨다. 그 향기는 우주가 사라져도 영원히 진동할 향내이다. 이를 보며 그 뒤를 묵묵히 좇는 이들도 아름답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지니라.” 하신 주님에게서 받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하신 신실하신 주님이 함께 져주시는 은혜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감당 못 할 짐을 주지도 않으시지만, 그 분이 너만 져라 하지 않고 함께 져주시는 까닭에 멍에는 하늘을 여는 은혜의 통로가 된다.

십자가 길의 구레네 시몬은 지친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졌지만 예수님은 그와 우리의 모든 죄짐을 지셨다. 그리고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신 그 분이 지금 함께 하시는데 무엇이 두려운가!

이 봄에는 웅크렸던 몸을 일으키자. 일어나 추위와 고독을 견딘 대견한 것들을 보자. 모든 참음에 함께 하시는 주님과 걷자. 다리가 부러져도 암 치료로 머리가 빠져도 외로움의 한기가 뼛속까지 스며도.

봄이 왔다.

박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