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가 내린다

을씨년스런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어머니의 구원을 위해 어르신들이 많이 계신 집 가까운 교회로 옮겼으면 한다는 소식을 접한다. 환영받지 못하는 장례식에서 가엾은 자매의 영혼을 위해 메마른 예배를 인도한다. 아무리 기도해도 차도가 보이지 않는 환우를 본다.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라 한 말씀이 무겁기만 하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섬기는 일이 쉽지 않다. 주님을 위해 충성하는 것이 죽도록 되지 않고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할 수 없어서 마음이 슬프다. 환영받지 못하는 가을비가 여름 장맛비처럼 내린다.

앞이 안 보일 정도의 심한 흙먼지에도 캄보디아 길거리에는 천연덕스런 가게들이 있다. 음식도 팔고 옷도 팔고 심지어 세탁소도 있다. 마스크를 한 사람들도 간혹 있지만 대개는 먼지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빗물을 받아 놓은 장독 속 벌레와 오물들은 휘휘 저어 시원하게 들이키면 그만이다. 모기 유충쯤이야 단백질로 여기고 흙먼지야 미네랄로 여기면 된다. 빗물이 다 떨어진 건기에는 그냥 짐승들이 마시는 웅덩이의 뿌연 물을 마신다. 부딪치고 지나간 승용차를 쳐다보면서 그냥 툭툭 털고 일어나서 다시 오토바이의 시동을 걸고 달려간다. 온가족 네명이 헬멧도 없이 수십 대 사이를 태연히 타고 간다. 대체 이들은 죽음이 두렵지 않은 사람들인가.

이들에게 참는 일은 일상이다. 말기 암 환자도 그냥 집 평상 위에 누워 죽음으로 이끄는 고통을 참아 낸다. 손을 잡고 기도하자 간신히 아멘이라 속삭인다. 이들은 하루에 한 끼만 먹어도 족하다. 세끼를 다 먹는 이들은 도시의 부자들뿐이다. 나머지에겐 배고픔이나 목마름은 먼지처럼 늘 함께 다니는 친구들이다.

이곳 선교사들은 이런 가난과 친해져야 한다. 여기선 학위도 권위도 없어서 좋다. 그저 속는 일이 아픔이 되지 않을 때까지 속아야 하고, 오래도록 정성을 드린 이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일이 슬프지 않을 때까지 슬퍼야 산다. 이분들에게 외로움은 주님께로 더 가까이 이끄는 친절한 안내자이고, 끝없이 요구되는 희생은 호흡처럼 떠날 수 없는 동역자이다.

예수님은 바로 그렇게 오셔서 그렇게 사시다 바로 그렇게 가셨다. 피와 땀을 다 흘려 가엾은 이들과 제자들을 위해 생애 전체를 헌신하셨으나 죽음의 자리로 내몬 자도 제자였고, 살겠다 그 자리를 떠나버린 자도 제자들이었다.

때로 외로운가! 외로운 이들 속에서 선교사의 길을 가라! 종종 자기 연민으로 슬퍼지는 사치스러움에 빠지는가! 진짜 슬픈 이들 속에서 사치스러운 연민을 저 멀리 던져버리라! 그리고 이 땅에 참 선교의 모범과 결말을 보이신 예수님의 뒤를 좇아가자! 늘 남에게 복음을 전파한 후에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했던 바울 사도의 길을 가자! 항상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했던 사도 베드로의 천성 가는 나그네 길을 가자!

이 가을에, 가을비가 일으키는 쓸쓸함이 탐스럽게 익어가는 영혼의 열매들을 좀 먹지 않게 하자. 아니 그 외로움이 주께로 더 가까이 가게 하는 맞바람이 되어 노련한 항해사를 만듦을 믿자. 슬픔아 오라! 고독의 바람아 불어라! 그리하여 창조의 완성을 이루라! 주님의 거룩한 작품이 되게 하라!

박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