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먼지에 뒤덮인


흙먼지에 뒤덮인 고르반 인생

출근길에 버스를 기다리는데, 동네 아주머니 한분이 걸어오셨다. 인사를 드린 후 잠깐 대화를 나누는데, 아주머니께서“저 먼지 좀 봐요. 물 좀 뿌릴 것이지.”라고 하시면서 얼굴을 잔뜩 찌푸리셨다. 제3경인고속도로 건설로 인해 덤프트럭들이 수시로 오가면서 뿌연 흙먼지가 계속해서 일어났다. “이봐요. 아저씨, 거기 물 좀 뿌려요.” 야단치는 듯 한 아주머니의 목소리에 아저씨가 그러겠노라 답변을 하셨다. 그런데 물은 뿌리지 않고 비탈길을 내려오는 차들에게 계속 손짓만 하고 계셨다.
비탈길을 내려오면 양 옆에 물을 뿜어내는 기구가 설치되어 있는데, 덤프트럭의 바퀴가 그곳에 닿으면 물이 뿜어져 나왔다. 덜커덩 턱을 넘는 소리와 함께 뿌연 흙먼지로 뒤덮인 덤프트럭이 어느새 깨끗이 씻기어 아스팔트 도로를 질주했다. 그와 달리 비포장도로인 비탈길을 내려오는 차들은 계속 뿌연 흙먼지를 일으키고 있었다.

며칠 후 비탈길에 시커먼 콜타르를 깔아 놓은 것이 보였다. 그런데 비탈길을 내려오는 덤프트럭 운전기사와 공사장의 문지기 아저씨 사이에 약간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문지기 아저씨가 손짓을 하자, 덤프트럭 운전기사가 자동차 바퀴에 먼지가 안 묻었으니까 그냥 가도 괜찮다면서 고개를 계속 저으셨다. 그러면서 아스팔트 도로로 바로 들어서려고 운전대를 돌리고 계셨다. 반면 문지기 아저씨는‘절대 안 된다!’고 하면서 완강한 표정으로 손짓을 하고 계셨다. 그러자 덤프트럭 운전기사가 결국 자신의 생각을 포기하시고 운전대를 돌리셨다. 건설현장에서 나오는 모든 차들은 꼭 그곳을 거쳐야 하는 관문인 듯 했다.

아침 출근 때마다 매번 그곳에서 흙먼지를 씻고 가는 차들을 보곤 했는데, 오늘따라 깨끗하게 씻긴 차바퀴가 유난히 눈에 들어 왔다. 그와 동시에 마음과 행실을 성령의 맑은 물로 깨끗이 닦으라고 손짓하고 계시는 주님의 모습이 보이는 듯 했다. 순간 마음이 뜨끔하면서 단지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영하 45도가 웃도는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인생의 반세기를 지냈던 아놀느 로제씨의 고백이 갑자기 스쳐 지나갔다.
“나는 40살까지 ‘만복(배부름)’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몰랐었고, 15살까지는 세상에 ‘단것’이 있는 것도 몰랐습니다.” 제법 쌀쌀해진 날씨로 인하여 여러 겹으로 옷을 껴입었건만 그 옷들이 무색할 정도로 몸이 부르르 떨렸다. 흙먼지 즉 애정과 욕망으로 뒤덮여진 초라한 한 영혼이 허허벌판에서 벌거벗은 채 서 있는 듯 했다.

주어진 시간 속에 나름대로 무릎은 꿇지만 어느 순간부터 회개를 한다고 하면서도 입만 달싹 거리고 간절함과 애태우는 마음이 없다. 습관적으로 드리는 기도. 사역도 마찬가지였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이곳저곳을 오가지만 지나간 자리마다 부덕함의 먼지가 풀풀 일어나는 것을 자주 본다. 철저한 자기성찰을 하면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고르반이다. 하나님께 드렸으니 내 할 일은 다 했다는 식으로 스스로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다.
영적 교만에 빠져 직분이, 거룩한 일이, 거룩한 장소가, 밝은빛의 말씀이 나를 지탱해주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안일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꽁지에서는 온갖 더러운 오물을 쏟으면서도 머리에는 화려한 공작의 기틀을 달고 활보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거룩한 성인이 내 앞에 있었노라고 스스로 자부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한 나에게 주님께서 강하게 책망을 하시는 듯 했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모세와 사무엘이 내 앞에 섰다 할지라도 우상단지를 품고 살아가는 너에게 내 마음이 향할 수 없다”(렘15:1).
입에 단 음식을 찾고 만복이 된 배를 두들기면서 식욕을 만족시키고 있는 모습. 희생하기 싫고, 손해 보기 싫고, 고통 받기 싫은 마음들로 인해 작은 일들을 하찮게 여기면서 좀 더 큰일을 하고 싶다고 아우성치면서 헛된 명예욕을 찾는 모습. 조금만 고달파도 조금만 핀잔을 들어도 달팽이처럼 몸을 움츠리며 사람들 눈치만 살살 살피면서 엉금엉금 기어가는 기회주의자 같은 나의 모습.

전에는 옷 하나 사는 것도 가슴 졸이며 주님의 눈치를 살폈는데, 점점 물욕이 꼬리를 물고 있다. 지나온 길만 곱씹으면서 ‘이 정도면 됐지.’라는 만족감에 자신의 영적상태를 보지 못하고 있다. 철저한 자기성찰과 참회생활이 약해지면 수많은 악습들이 다시 기습 한다. 이로 인해 영적 무기력함에 빠져 삶 가운데 뿌연 먼지를 계속 일으킬 수밖에 없다. 아무리 많은 일을 할지라도 회개생활을 등한시 한다면 그것은 영적 게으름이다. 더럽고 추악한 정욕의 먼지로 인해 내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얼마나 숨이 콱콱 막히실까?

거룩한 사업과 거룩한 장소에 있다 해도 그 안에서 얼마나 자신과의 영적 투쟁이 있느냐가 중요하다. 정욕의 딱지가 덕지덕지 붙어 있으면, 하나님께서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가 없다. 정욕의 딱지를 떼어내기 위한 피눈물 나는 참회의 기도를 매일매일, 순간순간, 분초마다 드려야 한다. 눈이 짓누르도록, 창자가 끊어지도록, 가슴이 찢어지도록 애절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서야 한다.
입술만 달싹거리는 겉꾸밈만으로는 안 된다. 쉴 사이 없이 먼지를 뿜어내는 부패한 심령가운데 순간순간 맑은 물을 뿌려야 한다. 지극히 작은 죄도 민감하게 느끼며 씻고 또 씻어내야 한다. 구석구석 자신의 삶을 살피지 않으면 미세한 먼지는 쉽게 지나치기 쉽다. 거짓말 한 마디 살짝 했던 것, 퉁명스런 말 한 마디 살짝 했던 것, 성내는 표현을 살짝 했던 것, 불평 한 마디 살짝 했던 것조차도 철저하게 참회를 해야 한다.

내 안에 천국에까지 닿는 고속도로가 완공될 때까지 끊임없이 참회하면서 사랑하는 주님께만 온통 마음을 드렸으면 좋겠다. 아, 내 안의 모든 먼지가 성령의 맑은 물로 깨끗이 씻겨 지는 그날이 속히 왔으면 좋겠다.
이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