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을 소망하자!
  
   옛날이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들이 복음의 핵심인 부활을 믿지 않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있을 수 있느냐?”(고전 15:12) 하고 질문을 했고, 더 나아가서 어떻게 부활을 할 수 있느냐? 하며 믿지를 않았다.(고전 15: 35) 그러나 예수님께 말씀하신 바와 같이 우리 믿는 성도는 부활을 한다. 마틴 루터가 “부활의 약속은 성경에만 기록된 것이 아니라 움트는 한포기의 풀에서도 약속되어 있다.” 했듯이 우리는 자연의 조화를 통해서도 부활을 확신 할 수 있다.
   ‘봄’ 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여러분들은 어떤 기억을 떠 올리는가? 어머니의 손을 잡고 초등학교 입학을 할 때, 꽃들이 만개한 산을 친구와 함께 쏘 다니던 일, 개나리 꽃을 꺽든 일, 겨울내 얼었던 땅이 녹아 질퍽한 거리들의 모습들….  
    저도 ‘봄’을 생각할 때 떠 오르는 것은 찬기가 가시고 훈훈 기운이 피부를 닿을 때 이 세상은 새로운 변화의 기지개를 펴는 것이다. 다시 긴 죽음의 겨울을 지내고  죽은듯이 보이던 메마른 나무줄기에서 새 싹이 돋아나고 있다. 이런 사실은 참으로 신기하고 재미있다.
   우리는 겨울의 메마른 나무를 볼 때  누구도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나무가 과연 나무잎을 낼까 의심도 하지 않는다. 왜? 자연스래 봄이되면 새로운 생명이 돋아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의 부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육신이 이땅에서 죽는 것은 정한 이치이지만 그  죽음은 완전한 죽음이 아니다.  마치 나무들이 봄을 맞이 하여 앞 다투어 싹을 내듯이 우리도 ‘영혼의 봄날’이 되면 죽은 사람은 물론 살아 있는 사람도 다시는 쇠하지 않고, 시들지 않는 아름다운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되어 영원한 새하늘과 새땅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이루어 질 수 있겠는가? 질문을 한다. 바로 죽은 나사로의 부활이 예수님의 부활을 예표하듯이 우리의 예수님의 부활이 곧 우리의 부활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가르켜서 부활의 첫열매가 되셨다. 곧 우리는 부활의 첫열매에 이어서 부활한다는 것이다.
   부활을 소망하자!
   우리의 인생의 삶에 있어서도 누구나 항상 봄과 같지는 않다. 때때로 겨울과 같은 춥고, 어둡고, 삭풍으로 시련의 때가 있다. 이때에 우리는 탄식하고 원망하고 절망에 빠진다. 아마 우리 중에 이런 추운 겨울과 같은 시련을 때를 맞고 있는 분이 있을 것이다. 아니, 지금 온 세계가 추운 겨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알 것은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이 우리의 삶이 겨울 같은 죽을 지경의  어려움이 있더라 분명히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이 겨울은 지나가고 ‘부활의 봄’이 온다는것이다.  그러므로 이 사실을 아는 우리는 낙망하고 좌절할 것이 아니라, 이 새 봄같은 아름다운 나날을 주시기 위하여 겨울을 통해서 연단하신다는 하나님의 큰 뜻을 알고 희망을 기쁨으로 인생의 봄날, 인생의 부활의 날을 맞이 해야 할 것이다. 겨울이 있어야 봄이 있다. 우리에게 고난의 죽음이 있어야 복된 부활의 삶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