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의 마음


따뜻한 봄날 이웃집 할아버지는 빌라 뒤 아기자기하게 가꿔놓은 텃밭에 상추, 방울토마토, 쑥갓, 완두콩 등을 심고는 화학비료가 아닌 천연비료를 손수 만들어 정성껏 밭에 뿌리셨습니다. 서울에선 맡아 보기 힘든 시골의 짙은 향기가 날리자 얼굴을 찌푸리는 이웃도 있었지만 부모와 같은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여 공을 들이시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입니다. 자식들은 다 출가하여 바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할아버지는 소일 삼아 하루에도 몇 번이고 자식 같은 상추와 완두콩, 방울토마토를 들여다보시느라 여념이 없으십니다. 아스팔트 도시에 이런 생생한 자연을 경험할 수 있게 해 주시는 할아버지가 마냥 고맙기만 합니다. 아이들도 하루하루 쑤욱 쑥 커가는 식물들을 신기해합니다.
햇살이 눈부신 이 봄날에 예수님은 우리 마음 밭에 무얼 뿌려 놓으셨을까요? 미움과 원망의 가시덤불 속에, 세상 근심걱정의 커다란 바위를 피해 부족하나마 싹을 틔울 수 있는 작은 텃밭에 감사의 씨앗을 화평의 씨앗을 사랑의 씨앗을 심으셨습니다. 남을 포용하고 이해하기엔 너무나 비좁은 나의 텃밭, 감사보다는 비판과 비난의 싹이 자라고 있는 나의 손바닥만 한 밭에 오늘도 주님은 묵묵히 나의 밭을 가꾸십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 이 하루도 이렇게 숨을 쉬고 살 수 있게 해 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전 주님을 위해 모든 걸 다 드릴 수 있어요.’라고 고백하던 것은 간데없고, 불평과 원망의 잡초들이 기운을 펴자, 감사와 사랑의 새싹들은 고개를 들지 못하고 숨죽이고 있습니다. 남 눈치 안 보고 눈물 콧물 흘려가며 은혜 받아 밭에 거름 뿌려 놨더니만, 하루가 멀다 하고 무성하게 자라나는 잡초들 때문에 착한 식물들은 살아가기가 힘듭니다. 교만, 게으름, 불평, 미움의 잡초들을 거칠고 사나운 환경의 극약 처방으로 일단 숨 못 쉬게 하고, 겸손해져 수그러든 나의 밭에 기쁨과 소망의 물 솔솔 뿌려주십니다.
주님이 단 하루라도 들여다보지 않으시면 식물에 벌레가 생기고, 얼마나 변덕이 심하고 까다로운지 조금만 환경이 나빠지면 난 도저히 이런 환경에서 못 살겠다고 아우성입니다. 늘 새로운 비료에 신선한 공기와 맑은 태양, 촉촉한 단비만 맞고 싶은 것은 그저 마음뿐입니다. 갑자기 비바람이 칠지, 오토바이라도 한 대 지나가면 혼탁한 매연에 숨이 답답하고, 장난 심한 아이라도 나타나서 잘 심어놓은 식물들의 가지를 똑똑 분질러 놓기라도 하는 날에는, 그 허탈함을 달래느라 한 동안 밭 가꾸는 일이 손에 잡히질 않습니다.
늘 주님이 돌보고 매만져 주고 가꿔주신 밭을, 주님은 이 봄날에 스스로 정리 해보지 않겠나며 종용하십니다. 뿌리가 깊은 미움의 가시가 잘 자라는 식물들의 기운을 막아 자라지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또 근심 걱정과 온갖 불안과 두려움 등의 돌들이 씨앗을 심을 수조차 없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이번 기회에 한 번 치워보라는 것입니다. 그래야죠. 내 밭에 예쁜 새싹들이 잘 자라게 하려면요. 가시 덩굴도 치우고 바위와 크고 작은 돌들도 제거하고, 늘 바쁘다는 핑계로 손바닥만 한 내 밭 가꾸는 일에 너무 게을렀던 것 같습니다.
또 한 가지 희소식은 내 밭의 평수를 넓혀야겠다고 하십니다. 밭이 너무 좁아 이해와 포용, 너그러움의 씨앗을 심기 어려우시대요. 이번 기회에 지경을 확 넓혀 여러 가지 특용작물도 심어 달라고 예수님께 부탁할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밭을 가지런히 반듯하게 고슬고슬하게 잘 다듬어 놔야 하겠습니다. 들락날락 하며 밭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는 장난 끼 많은 아이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특별 잠금장치를 부착한 담장도 만들 계획입니다. 이 아이들은 틈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여지없이 침범해 들어와 가꾸었던 많은 작물들을 짓밟고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습니다. 가까스로 담장 문을 닫고 밭을 회복해 놓긴 했는데, 이번엔 밤을 새워 지켜야겠습니다. 내 밭을 잘 가꿔놓고 환하고 밝게 정돈해 놓으면 예수님께서 꼭 놀러 오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내 밭 때문에 마음 아파하시는 것을 이 봄에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내 밭을 잘 가꾸면 이 봄에 예수님이 특용작물도 심어 주실 것 같은 기대감이 나를 설레게 합니다. “예수님! 저 어떠한 환경 가운데서도 기뻐할게요.” 사나운 환경 가운데서도 겨우겨우 이지만 감당할 수 있었던 것도 예수님이 다 좋은 약 뿌리시고, 치료하시고 내 밭을 가꿔주셨던 덕분이었습니다. “예수님! 감사해요. 예수님께 받은 은혜, 사랑을 언제나 갚을 수 있을까요? 지저분하고 가시덤불에 돌투성이였던 제 밭 가꾸느라 힘드셨죠? 이젠 제가 거들어 드릴게요.”
예수님은 이제 새로워진 내 밭에서 열매들을 기다리신 답니다. 다그치지 않으시고 묵묵히 기다려 주셨던 예수님의 그 사랑에 보답하는 길은, 내 밭을 잘 가꾸어 빨리 열매들을 잘 자라게 하는 것입니다. 잘 익은 열매를 주님 양손에 올려드려야죠. 나의 영혼이 익어가는 이 자리에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가득가득하길 소원합니다.
이은영  


이 한나.  
할아버지의 채전 가꾸는 모습에 우리의 믿음을 비교 해 주신 아름다운
글입니다. 나도 작은 채소 밭을 가꾸는 데 우리의 삶과 비교 해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줍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