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어느 서당에서 아이들이 글을 배우고 있었는데, 그 중 매우 영리하고 재주 있는 아이 셋을 뽑아서 두 푼씩 나누어주면서 서당방 안에 가득히 찰 물건을 사가지고 오라고 말했습니다.

이 세 아이들은 돈 두 푼씩 받아가지고 밖으로 나갔는데, 한참 만에 한 아이가 돌아왔습니다. “너는 무엇을 가지고 왔느냐?”하고 훈장님이 묻자 아이는 솜뭉치하고 성냥을 내놓으면서, “저는 이것을 사왔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것을 보고, “이 솜뭉치하고 성냥이 어떻게 해서 이 방 안을 가득 채우게 되겠느냐”고 하니까 이 아이는 솜뭉치에다가 성냥을 그어댔습니다. 그러니까 솜뭉치가 타서 거기서 나온 연기가 방 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런데 연기가 방 안에 가득 차니까 방 안에 있는 사람은 매워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고 재채기를 자꾸 했습니다. “응, 돈 두 푼 가지고 이 방안을 가득 채우는 것을 잘 사왔다. 그런데 너는 자라서 의식(衣食)은 족하게 살겠다마는 사람을 많이 괴롭혀서 원성을 많이 듣게 될 것이니 조심해야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다음에 두 번째 아이가 돌아왔습니다. “너는 무엇을 사가지고 왔느냐?”하고 물으니까 이 아이는 향(香)하고 성냥을 내놓으면서 “저는 이것을 사왔습니다”고 했습니다. “그것으로 어떻게 방 안을 채우느냐” 하니까 향에다 성냥을 그어대니까 향은 타서 그 향내가 방 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방 안에 사람들은 그 향내를 맡으면서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응, 돈 두 푼 가지고 방 안을 가득 채우는 향을 사왔으니 잘 사왔다. 그런데 너는 장차 자라서 너무 결백하게 살겠다. 벼슬 같은 것도 안 할 것이고 그래서 의식(衣食)도 곤란할 것이다. 네 일생은 저 향기처럼 향기롭기만 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셋째 아이가 돌아왔습니다. 너는 무엇을 사왔느냐고 물으니까, “이것을 사왔습니다.” 하면서 초하고 성냥을 내놨습니다. 초에 성냥을 그어대니까 그 불빛은 온 방 안을 환하게 비치우고 방 밖까지도 환하게 했습니다. “응, 돈 두 푼을 가지고 방 안에 온통 환하게 하는 초를 사왔으니 잘 사왔다. 너는 자라서 온 백성을 구할 사람이 되겠구나.”하고 말했습니다.

위의 이야기는 장호원읍에서 전해오는 구전이다. 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쩌면 우리 인생은 돈 두 푼을 가지고, 무엇을 사오는 아이들과 같다고 생각된다. 지금까지 살아온 우리의 삶은 무엇을 사가지고 온 것일까?

혹시 첫 번째 아이처럼 방 안에 연기만 가득 피웠던 삶이 아니었을까? 연기만 잔뜩 피워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을 숨도 못 쉬게 하고, 눈도 못 뜨게 하고, 너무 매워서 눈물을 흘리고 재채기를 연속으로 하게 한 것은 아닐까?

나와 함께 살아가는 가족들, 함께 신앙 생활하는 교회의 사람들, 공동체의 식구들, 그리고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 그들은 다 나와 함께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산다지만, 과연 우리는 참다운 빛이었을까? 어쩌면 빛을 빙자한 자기만족과 자기도취와 착각의 삶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두 번째 아이처럼 방 안에 향기를 드러내는 삶을 살았던 것일까? 아니면 세 번째 아이처럼 방 안을 환하게 밝혔던 빛의 삶을 살았던 것일까?

우리의 삶은 빛인가? 빛이 아닌가? 하는 것을 무엇으로 알 수가 있을까? 빛이 되려면 반드시 희생이 필요하다. 희생이 없는 삶속에서는 빛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빛이 되면 빛의 기능을 다하게 된다. 빛의 기능이 무엇인가? 그것은 어두움을 밝히는 일과 인도함이다. 그러므로 희생의 삶이 있다면 빛으로 살아가는 것이요, 사람들의 어둠을 밝히고, 옳은 데로 인도하고 있다면 빛이 되고 있는 것이다.

성경에는 예수님을 빛이라고 하셨다. 예수님의 모든 삶은 희생이시다. 하나님이신 그분이, 하늘보좌를 다 버리시고, 우리와 같은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희생을 당하셨다. 죄 많은 우리 인생을 구원하시려고 그토록 희생하신 것이다.

그래서 주님의 비하, 겸손, 온유, 한 알의 밀 같은 희생, 십자가의 용기, 세족의 삶 등 모든 주님의 삶은 빛이시다. 태양이 없으면 모든 만물들이 잠시도 살아갈 수가 없는 것처럼, 영계의 태양이신 주님이 빛으로 우리를 비춰주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밤바다에 등대가 없다면, 더욱이 비바람이 몰아치는 밤이라면 무엇으로 항구에 도착할 수가 있을 것인가? 우리는 주님의 삶을 보면서, “주님은 저렇게 사셨는데 나는 저렇게 살지 못 하는구나”하면서 옳은 길로 인도함을 받는 것이다.

며칠 전 광복절이 지나갔다. ‘광복(光復)’이란 ‘빛을 되찾다’라는 뜻이다. 광복절(光復節)은 일본에게 나라와 말을 빼앗기고 삶의 희망마저 잃어버린 우리 민족이 어둠 속에서 빛을 되찾은 날이다.

그렇다면 영적인 광복은 무엇일까. 평화 기독교 선교회 김목사는 “요한복음에 보면 빛은 ‘생명(生命)’이며 그 생명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다(요 1:1~4)고 쓰여 있다”며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생명을 얻어 무덤과 같은 사망(死亡)에서 나오는 것이 바로 어두움에서 빛을 되찾는 광복”이라고 설명했다.

우리 모두가 영적인 광복을 맞아야 하겠다. 서로서로 예수님처럼 빛이 되려는 희생과 착한행실로 살아야 하겠다. 잃어버린 하나님의 나라를 되찾기 위해 영적 투사들이 되어야겠다. 서두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나는 몇 번째 아이인가? 그 세 아이들은 뽑힌 아이들이었다.

빛 된 삶으로 어둠을 밝히며 많은 사람들을 옳은 데로 인도해야 할 막중한 사명을 감당할 마지막 때의 주자로 뽑힌 이는 자신의 온몸을 태우고 희생하면서 정과 욕심을 끊임없이 못 박아가는 사람일 것이다.

이안드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