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기

 

아끼던 물건을 버리기는 그리 쉽지 않습니다. 때로는 사물에 대한 애정에 의한 집착인지 물건을 절약하고 아끼는 마음에서 오는 것인지 잘 구분이 안 갈 때가 있습니다.

버리기는 아깝고 쓰자니 불편한 물건들을 움키고 안 버리면서 갖고 있는 것도 어쩔 땐 큰 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언젠간 사용할 수 있겠지 하면서 베란다 구석에 고이 모아둔 물건들은 어느 새 뽀얗게 먼지가 앉습니다. 볼 때마다 버리긴 아깝고 당장 쓰자니 필요가 없고. 자질구레한 짐 밖에 되지 않는 것들을 오늘 당장 처리할 것 같다가도 더 갖고 있어보자, 하는 생각으로 마음을 접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물에 대해서 집요하게 집착이 생겨 우상이 되어 버린다면 과감하게 버리는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내 삶에 버려야 할 큰 악습을 오늘은 뿌리 뽑으리라 하지만 뽑지 못한 부분들이 있습니다. 가정 일을 하면서 생기는 크고 작은 불만과 스트레스, 교회 일을 하면서 오는 여러 가지 당혹스런 일들을 겪을 때 주님 앞에서 나름의 기도를 하지만, 그 마음을 혼자 풀기 위해 하는 일이 있습니다.

나만의 비법, 바로 물건을 사는 일입니다. 크고 비싼 것은 절대 사지 않습니다. 심적인 부담은 2차적인 스트레스를 주기 때문에 아주 작고 저렴한 것으로 그것도 내 취향에 맞는 것을 고르면서 마음을 풉니다. 인터넷이나 생활용품 할인 매장에서 필요한 것들을 고릅니다. 어떨 땐 이것도 필요해, 저것도 필요해 하면서 고르다 보면 액수가 커질 때도 있는데 물질을 절제하지 못했다는 낭패감을 몇 번 겪은 적이 있어서 되도록 2-3개로 만족합니다. 지나칠 때는 어쩔 수 없이 회개거리를 또 하나 만드는 일이겠지만요.

이렇게 물건을 구경하고 구입하면서 나도 모르게 불편했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집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이 모습도 그리 예뻐 보이진 않을 텐데 하면서도 마음으로 범죄 하는 것보다 낫지 않나 스스로 합리화합니다. 어차피 생활에 필요한건 데 어때하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하나님이 아닌 사물로 위로를 받으려는 제 안에 깊숙이 숨겨진 정욕단지임을 보게 하시면서 요즘엔 자꾸만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리게 하십니다. 굶어서 죽어가는 아프리카 어린이들, 장애우들, 정기메일로 들어오는 함께하는 사랑밭 편지 등에 눈길이 가게 하시면서 일정금액을 후원하게 하십니다.

오늘 아침 새벽예배를 드린 후 메일을 열어봤더니 여섯 식구가 창고 같은 방에서 더운 여름을 나고 있는 편지를 읽게 되었습니다. 여든이 된 할머니, 알코올 중독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 아빠, 지체 장애인인 엄마와 큰언니, 실질적인 가장 고3의 정은이(가명)와 두 명의 동생 이렇게 여섯 명이 도움의 손길 없이는 일어설 수 없는 어려운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분들을 보니 나는 그동안 너무 사치스럽게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후원의 손길이 갑니다. 적은 금액이지만 안타까운 마음에 한 줄 기도와 함께 후원에 동참합니다. 도울 수만 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여섯 식구를 도와줬으면 하는 바람이 생깁니다.

내 영혼의 골짜기를 나보다 더 어렵고 힘들게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사랑과 긍휼로 채우게 하십니다. 영혼에 아무런 유익도 없는 버리기 아까워하던 악습 하나를 고쳐주시기 위해 주님은 오랫동안 참아주셨습니다. 다그치면서 잘라버리라고 하지 않으시고 신사적이면서도 근사한 제안을 하시면서 내가 소비하던 그만큼의 금액만큼 후원하게 하시니 하나님은 참으로 멋지십니다.

내 영혼의 창고에 뽀얗게 먼지가 쌓여 늘 들여다보면서 버리기 아까워하고 그냥 두기엔 마뜩지 않은 또 다른 골동품을 어떻게 버려야 할지요. 인정사정없이 싹둑 잘라버려야 할 때가 오겠지만 지금은 그냥 그저 그렇게 봐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빤히 들여다보듯이 서두르지 않는 게으른 나를 바라봅니다. 아버지가 다그치시기 전에 알아서 치우고 버리면 좋으련만 그것이 뭐가 좋다고 버리기 아까워하면서 갖고 다니는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나의 무거운 죄짐과 정과 욕심, 결점과 악습들을 자꾸만 버리라고 하십니다. 그 치졸하고 볼품없는 것들을 버리고 깨끗한 그릇이 되면 더 좋은 것, 하나님의 생명인 보화로 가득가득 채워주실 텐데 뭐가 소중하다고 애지중지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내 영혼의 창고에 물질에 대한 탐심과 사물에 대한 욕심 하나만 잘 제거해도 죄짐이 한결 가벼워 질 것 같습니다. 내 영혼이 거룩함으로 신실함으로 기쁨으로 충만하다면 세상의 것 눈에 안 보이겠죠. 세상 것은 버리고 주님으로 내 영혼을 채우는 주바라기가 되어보렵니다.

이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