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의 출입을 지키시리라
신학원 가을학기부터 1년 6개월 동안 학교나 특별 일정이 없는 날에는 일용직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날그날 받은 노임을 한 푼도 빼지 않고 아내에게 주면서 약속하기를, 신학원을 졸업할 때까지 최선을 다해 당신을 돕고, 그 후에는 하나님 사역에만 전념 할 수 있도록 아예 출가를 하겠다고 일방적으로 선언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대꾸의 가치도 없다던 아내와 아들은 저의 변화된 삶을 보고는 일방적인 선언에도 점점 긍정적인 태도로 바뀌어져 갔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힘들고 피곤해도 영적생활과 일을 성실히 하는 저의 모습에 드디어 금년 1월 초에 계획한 사역에 동의를 하였습니다. 사실 이제껏 노동을 경험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몇 번이나 포기할까하고 여러 번을 망설였지만 어려울 때마다 하나님의 은밀한 도우심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새로 이사 간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예주인력’을 경영하고 있는 분이 모퉁이돌교회의 집사님이었기에 자연스레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후 그분은 저의 호칭을 ‘목사님’으로 부르기까지 하였고, 토요일 오후에는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예배와 소그룹 성경공부를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특전사 부대 사열대 개축공사장에서 여러 날 일을 하던 중 철골조물이 미끄러지면서 제 오른손이 꽉 끼이게 되었습니다. 화들짝 놀란 소장님과 직원들이 얼굴이 노래가지고 달려왔지만, 정작 엄지손가락에 약간 찰과상을 입었을 뿐 아무런 이상이 없었습니다. 그라인더로 절단하는 작업을 하다가도 무심코 다리를 스치는 때가 있었는데 바지만 찢기고 가벼운 핏자국만 비치는 등 크고 작은 사고가 많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도우시는 체험을 하였습니다.

한번은 엉켜 있는 구리선을 절단해야 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구리선이 얼굴을 심하게 때리는 사고가 발생을 했습니다. 그날은 워낙 무더운 날씨 탓에 이마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데도 땀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내 옆의 동료가 피가 흐른다고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사무실에 가서 응급치료를 하고 난 후 거울을 보면서 저는 빙그레 웃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또한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자그마한 고난의 흔적임을 알겠기에.

나를 천거하신 그분이 계시기에

어려운 병실의 절망적인 환자를 대상으로 섬기려는 목표는 세웠지만 이분들을 어떤 방법으로 섬길 것인가를 곰곰이 기도하다가 우연히 『종의 마음』이라는 한권의 책을 보게 되었습니다. 토미테니와 데이빗 케이프 목사님이 동역하는 현장체험을 바탕으로 한 간증인데, 이분들은 십자가를 목에 걸고 대야와 수건을 가지고 전세계를 돌며 소외된 이웃들의 발을 닦아 주면서 선교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섬김의 현장에서 갖가지 성령체험으로 내적, 외적인 치유를 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내용들을 보면서 사역방향에 서광이 비취는 듯 했습니다.

신학원을 졸업한 2011년 3월 3일, 첫 사역의 발걸음을 떼기 전 금식으로 준비해야겠다는 마음의 감동이 왔습니다. 하지만 금식기도로 예정되었던 곳의 목사님께서는 경험도 없고 더구나 나이가 들어서 장기간 금식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하시면서 몹시 걱정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기간을 정하지 못한 채 금식을 시작하였습니다.

금식 첫날, 꿈에 보니 대기업체인 1군 건설업체에 취직을 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모두 유니폼을 지급을 받았는데 저만 유니폼을 안 주는 것이었습니다. 왜냐고 묻자 조금만 더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각자 현장으로 투입이 되었고, 저는 큰 지하 보일러실에 들어가서 일을 하는데 옆에 있던 분에게 누가 나를 이곳에 취직시켜 주었는지 묻자, ‘신기씨’(욥33:47, 성령의 다른 호칭)라는 분이 천거해서 취직을 시켜주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에게 다가가 “신기님! 정말 감사합니다.”하고 인사를 하면서 그 얼굴을 보았는데, 세상에서 그렇게 인자하고 사랑이 넘치며 또 그렇게 젊은 모습을 본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안전모을 쓰고 작업복 오른 팔에 ‘소장’이란 완장을 차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나를 쳐다보는 얼굴에서 ‘내가 너를 도우리라’는 표현을 역력히 읽을 수가 있었습니다.

저는 생전 처음 해보는 장기간의 금식이지만 하나님께서 강력하게 도우심을 의식하며 강한 의지가 일어났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도움을 받았던 것은 평소의 습관대로 성무일과를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시간의 지루함에서 벗어나 오히려 천국적인 하루하루가 되었습니다.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산 위에서 주님과 교제하는 정오 기도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금식기도가 시작되는 날부터 성경 500구절을 외워야겠다는 생각에 별도의 노트에 기록한 후 말씀을 외우기 시작하였습니다. 복음전파를 위해 꼭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400구절 정도 외웠고 아직 부족한 것을 계속해서 도전하려 합니다.

환갑, 늦깎이로 출발했지만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말씀을 붙들고 천국을 힘차게 침노해 가렵니다. 주님의 복음 사역에 나이가 많고 적은 것, 돌아보아야 할 가족들, 세상의 염려와 재리들, 세상에서 누리게 될 영광은 걸림돌이 되지 않음을 봅니다. 잠시잠간 존재하는 아침안개와 같은 이 세상은 순간적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오직 저에게는 처자와 어머니를 주님께 맡기고 일사각오 정신으로 나아갔던 주기철 목사님의 각오가 있을 따름입니다.

이제 저는 5월부터 고시원과 인력사무실, 병원과 거리에서 버려진 이웃들을 대상으로 발을 닦아 섬기면서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며 믿지 않는 불신자들에게는 복음을, 믿는 자들에게는 성화의 복음을 증거 하는 사역을 할 것입니다.

바울 선교회를 조직하여 해외 선교사 파송을 많이 하신 이동휘 목사님의 말씀이 새삼스러워 집니다. 훈련을 받고 나간 선교사님들의 수명은 25년이나 되는데 비해, 훈련 없이 나간 선교사님들의 수명은 약 5년간이라는 통계가 있다고 합니다.

비록 너무나도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영성훈련을 꾸준히 받으며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나 부끄럽지 않는 선교사가 되기 위해 오늘도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갑니다. 주님 앞에 닳아 없어지는 그날까지 선교사의 수명은 끊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종신토록 하나님께 충성하다가 이 땅에서의 최후는 지하철역에서 또는 논둑에서 그리고 해외 오지 마을에서 순교하는 것이 간절한 바람입니다. 또한 늘 종의 마음을 가지고 밝은 빛의 말씀을 땅 끝까지 전하렵니다. 최후의 승리하는 그날까지. (끝)

이광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