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장과 초콜릿

방 창가에 선인장과 초콜릿이 나란히 놓여있다. 선인장 화분은 7년 전, 병원에 입원했을 때 선물로 받은 것이고 초콜릿은 주일학생들에게 줄 선물이다. 선인장은 7년이란 시간 동안 부지런하지 못한 나에게 까다로운 주문도 없이 늘 그 자리에 묵묵히 있었다. 이젠 오랜 친구가 되어버린 화분. 긴 세월동안 하나도 변한 게 없다. 문득 선인장을 만져보고 싶은 생각에 머리 쓰다듬듯 만지는데 가느다란 가시가 따끔하다. 사막의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가운데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선인장처럼 영혼의 메마름이 찾아오더라도 잘 참고 견디라고 은연중에 메시지를 종종 던져주던 선인장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또 다른 메시지를 나에게 던져주고 있다.
선인장(Cactus)은 그리스어의 ‘Kaktos’에서 유래됐는데 ‘가시투성이 식물’이란 뜻이다. 선인장의 가시는 잎이 사막의 고온으로 수분이 증발돼 변화된 모습이다. 어쩜 나도 선인장처럼 ‘가시투성이 동물’인 것 같다. “내 안에 들어오면 모든 꽃들의 잎은 가시로 변한다”는 어느 시인의 노랫말이 생각난다. 꽃을 피워야 할 잎들이 뜨거운 태양아래에서 목이 말라 아우성을 치다가 가시로 변해버렸다.
애굽을 빠져나와 메마르고 거친 사막을 惻ご?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악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라고 아우성을 치며 가시 돋친 말을 수없이 뱉었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달래시며 반석에서 물을 내시고 패역한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거룩함을 나타내셨다. 그러나 어리석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을 목격한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이곳은 식물도 물도 없다. 우리 마음이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하노라”라고 원망불평을 늘어놓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불평은 나 자신의 모습이었다. 환경과 조건이 박한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수많은 가시로 인해 마음이 박한 것이었다. 원죄의 뿌리는 거친 모래사막을 지날 때마다 불쑥불쑥 고개를 내밀며 은밀하게 숨겨두었던 정욕의 가시들을 하나 둘씩 드러낸다.
사막을 지나오면서 많이 지쳤는데, 이것쯤은 눈감아 주시겠지. 아주 잠깐만 즐기고 금방 빠져나오면 되겠지. 나만 이렇게 살아가는 거 아니잖아, 남들도 은밀하게 애정과 욕망을 살짝살짝 숨기고, 몰래 달콤한 초콜릿을 한 입 떼어 먹지 않는가? 모두가 그렇게 살아가는 데 뭐, 나라고 별수 있나? 광야 길을 가다 보면 목도 마르고 모래 바람도 세찬데 박한 식물보다는 달짝지근한 초콜릿이 좋지. 적당히 양치질 한번 하고 입 한번 썩 닦으면 누가 알겠냐고?
그러나 ‘이것쯤은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며 남겨두었던 정욕의 끈들이 훗날 내 앞에 최대의 적으로 돌변해 있을 것이다. 은밀하게 즐기며 남겨두었던 달콤한 정욕들은 눈의 가시가 되어 양심의 눈을 어둡게 하고 옆구리를 찔러 영혼을 무기력하게 만들어 버릴 것이다. 그 가시가 앞길을 막고 가나안땅으로 가는 길을 찾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찌르며 괴롭힐 것이다.
“너희가 만일 그 땅 거민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지 아니하면 너희의 남겨둔 자가 너희의 눈에 가시와 너희의 옆구리에 찌르는 것이 되어 너희 거하는 땅에서 너희를 괴롭게 할 것이요”(민33:55).
하나님은 성도들이 수많은 유혹과 범죄 할 수밖에 없는 환경가운데서도 점도 없고 흠도 없는 빛의 열매를 맺도록 하기 위하여 광야에서 영적으로 철저히 훈련을 시키신다. 그러나 인간의 애집과 집착은 끝이 없다.
생각해보면 은밀하게 남겨둔 정욕을 순간순간 즐길 때가 참 많다. 힘들고 괴로울 때, 고독하고 외로울 때, 억울한 일이 생겨 마음이 답답할 때, 광야 길이 지루하고 무미건조할 때, 식물이 박하다고 생각 될 때 숨겨놓은 정욕을 살짝살짝 꺼내어 옛날에 즐기던 애굽의 달콤함을 몰래 즐긴다. 특히, 안목의 정욕에 매우 약해서 눈의 즐거움을 적당히 즐기다가 꼭 마귀에게 뒷덜미가 잡혀 곤두발질 칠 때가 많다. 뒤에서는 은밀하게 정욕을 즐기면서도 겉으로는 누룩이 섞이지 아니한 무교병을 먹어야 한다고 외치고 있는 나는 온몸에 가시가 박힌 회칠한 무덤이다.
파종할 곳(사역지), 무화과·포도·석류(환경과 조건, 달란트 등), 마실 물(은혜)이 없어서가 결코 아니다. 결국은 영적 전쟁터에서 쓰라린 패배와 고통을 안겨준 것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은밀하게 숨겨진 정욕 때문이다. 내 안에 은혜의 물줄기를 차단하는 정욕의 큰 바윗덩어리, 아직도 깨어지지 않은 남은 자아가 문제인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마음과 행실 가운데 나타나는 지극히 작은 죄와 정욕일지라도 철저히 회개하기를 원하신다. 거친 광야를 지나면서 구석구석에 숨겨진 은밀한 정욕을 제거하고 하나님의 생명이 들어오실 수 있는 온전하고 정결한 그릇으로 준비되기를 원하신다.
어릴 때 회막에서 음행하던 시므리와 고스비의 배를 창으로 꿰뚫었던 비느하스의 행동이 너무나 끔찍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야 제사장 비느하스의 과감한 행동이 얼마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은밀하게 숨겨진 자아, 정욕을 완전히 척결하기 위해서는 과감한 결단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순간순간 일어나는 자애심으로 인해 창을 들고서도 얼마나 많이 머뭇거리고 있는가? 머뭇머뭇하다보면 마귀는 잽싸게 비집고 들어온다. 정욕은 마귀가 드나드는 통로요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 미끼이다. 작은 틈을 철저히 막아야 한다. 엄격한 극기생활, 철저한 회개생활, 규모 있는 경건생활을 다시 일으켜야 할 때이다. 느슨해진 영성생활에 채찍을 다시 한 번 가할 때이다. 내 안에 있는 정욕, 즉 바알들의 이름으로 안겨주는 모든 달콤한 맛을 내 입에서 철저히 제하여 버려야 한다. 우상의 제물을 먹고 행음하게 하였던 발람의 어그러진 길에서 속히 돌아서야 한다(계2:14).
고통이 없이 광야 길을 갈 수 없다. 달콤한 초콜릿은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과 주님을 향해 드리는 기도로 충분하다. 지극히 작은 악습조차도 고치기 위해 피 흘리는 영적싸움을 다시 시작하자. 아무리 큰 고통과 손해와 아픔이 따를지라도 다시 한 번 더 힘차게 달려가자. 내 안에 있는 모든 가시가 뿌리 뽑히고, 예수님의 생명이 들어오는 그날까지 나는 달려갈 뿐이다.
이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