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찢는 회개의 자리


마음을 찢는 회개의 자리로 나아갈 때

지난 9월 11일 오전 7시. 한국복음주의협의회 주최로 목회자 100명이 서울 역삼동 화평교회에서 모여 ‘월례 조찬기도회 및 발표회’를 가졌습니다. 그날은 철저하게 회개하고 반성하는 자리였습니다.

십자가의 길을 외면하고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16:24). 조찬 기도회에 모인 목회자들은 주님 가신 길을 온전히 걷지 못한 것을 회개하였습니다. 하이라이트는 합심기도와 “한국교회와 십자가의 길”을 주제로 발표하는 순서였습니다. 참석자들은 한국교회의 신앙과 도덕, 윤리의식이 땅에 떨어져 세속화된 점, 기복주의에 편승해 대접받는 데 혈안이 되어 왔던 모습 등을 돌이키며 통렬히 반성했습니다.
쓴 소리도 쏟아져 나왔습니다. 한국교회의 산증인 방지일(98) 영등포교회 원로목사님은 “한국교회가 물질만능주의에 빠져 주님이 걸으신 십자가?길을 걷지 않고 있어 안타깝다”고 심경을 밝혔습니다.
안만수 화평교회 원로목사님은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은 세상의 빛도 소금도 아니었습니다. 100여 년 전 세상의 희망이었던 한국교회가 지금은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고 있습니다. 목사들은 교세와 학력을 자랑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안 목사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하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라고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그 외 다수의 목회자들이 “한국교회가 덩치만 커지고 세상을 섬기지 못해 세상에 안티기독인들이 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십자가의 고난을 설교하면 출석률이 줄고 복 받는 설교를 하면 출석률이 높아지는 현실을 개탄했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고난을 통해 영광이 주어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참석한 목회자들은 고난을 상징하는 십자가의 길을 가볍게 여기고 있는 교회 현실을 개탄하며,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usㆍ비탄의 길, 슬픔의 길) 이외엔 대안이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경건한 삶을 추구할 것과 청지기로서 청렴하고 검약한 삶을 살아갈 것, 사회적 약자를 돌보며 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이 될 것을 다짐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 지라”(마16:24)는 말씀처럼, 어려움은 짊어지려고 할 때 참아질 수 있는 것이고, 온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화내기 쉽고, 짜증내기 쉽고, 욕하기 쉽지만, 참고 견디는 것이 십자가 지는 삶입니다. 그렇지 못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느낀다면 진정으로 통회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특히 심판대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교회가 진정 주님을 따른다고 하면서, 진정한 참회가 없다면, 죄 때문에 느끼는 뼈저린 아픔이 없다면, 하나님께서 따끔하게 징계하시지 않을까요. 오늘날 한국교회가 안팎으로 당하고 있는 상황이 그런 징계가 아닐까요.
하나님의 최대 뜻은 성화(聖化)입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화평함과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주님을 보지 못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께서는 철저한 참회생활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게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엄청난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이 정도면 괜찮다고 착각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화되라는 주님의 뜻은 외면하고, 세상 복이나 많이 받고 출세하고 성공하려는 이들을 어찌 그리스도인이라 하겠습니까. 교회부흥이라는 선한명분을 내세우며 교인 숫자를 늘리기에 급급하여 죄와 회개를 강조하지 않고, 하나님의 빛을 밝게 증거 하지 않으며 죄에 민감하지 않고 자신의 부족한 것 때문에 애태우는 마음이 없다면 이를 어찌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 하겠습니까?
“주여, 저는 어떡하면 좋습니까? 아이고 하나님, 또 짓지 말아야 할 죄를 지었습니다. 이를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제발 저를 도와주옵소서.” 진정으로 울면서, 열심히 회개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가장 훌륭한 사람입니다.

애태우는 마음으로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마6:3)고 하셨지만,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대가를 바라면서 하는 위선적인 행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를 깨닫고 회개하는 사람이 바로 자기를 비우는 사람입니다.
분도 라브르 성자는 추운 겨울에도 앞가슴을 풀어헤치고, “오소서, 주님! 나 주를 갈망하나이다. 나 주를 탐하나이다!”라고 탄식했습니다. 주님을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을 나타낸 것입니다. ‘주님을 어떻게 하면 더 잘 섬겨볼까’ 이 마음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잘해도 하나님을 100% 만족시킬 수 있는 일꾼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단 1%라도 부족하면 그것 때문에 애태워해야 합니다. 겸손, 온유, 사랑, 인내, 절제, 정직, 충성 등이 부족한 것 때문에, 그것을 좀 더 온전케 하기 위해서 언제나 간절하고, 목말라야 합니다.
카타리나 성녀는 거친 환경이 나타날 때마다 악심이 나타나서 괴로워했습니다. 가끔 악심 때문에 언행으로 범죄 하면 실패의식이나 정죄의식이 마음에 가득차서 숨이 막힐 정도로 애태우고, 괴로워하고, 탄식하고, 슬퍼하고, 몸부림쳤습니다. “주여, 도대체 어디 계십니까?” 자신의 마음이 그렇게 요란스럽고 지저분한 것을 보고, 부끄럽고 실패의식으로 가득차서, 정결함을 사모하는데 악심이 자꾸 올라오니까 괴로워서 탄식하는 것입니다.
한번은 “도대체 주님 어디에 계십니까?”라고 했더니, 갑자기 주님께서 음성으로 “네 안에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 때문에 몸부림치며 애태우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없는 사람들은 영적으로 잠자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5).
사람들은 바쁘다고 하면서 죄 때문에 괴로워하는 마음이 생기려고 하면 다 쫓아버립니다. 그런 마음과 겸손은 사촌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요하다고 생각하면 그런 마음이 쉽게 들어오지 않습니다. 애태우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절절한 눈물의 통회가 필요합니다.
“주님, 저는 죄와 허물과 부족함이 너무 많습니다. 이것 때문에 늘 애태우는 마음으로 주님께 나아가기 원합니다. 주님 곁에 꼭 붙어있는 가지가 되어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여 주옵소서!”
이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