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잊지 말라

잊지 말 것
120년을 산 모세는 40년 동안 애굽의 궁궐에서 부귀영화도 누렸고, 광야 40년 동안 무기력한 삶을 살기도 했다. 마지막 40년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꿈에도 그리던 가나안을 향해 힘들지만 광야 길을 즐겁게 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 날벼락인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너는 가나안을 바라보기만 하고 들어가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은 모세는 하나님을 향해 따지거나 불평을 말하며 범죄 하지 않고 자신을 제외하고 가나안에 들어갈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마지막 유언 같은 고별설교를 한다.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하고 모세가 여호수아를 불러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그에게 이르되 너는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여호와께서 그들의 조상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들에게 그 땅을 차지하게 하라”(신31:6-7).
가나안 땅의 정복을 눈앞에 두고 모압 평야에서 2세대들에게 당부하는 명령의 핵심은 과거 그들이 애굽에서의 생활과 하나님의 속량으로 탈출한 과거를 결코 잊지 말고 기억하라는 것이다. 얼마나 너희를 사랑하셨는지, 얼마나 놀라운 기적과 긍휼을 베풀며 인도하셨는지 그 은혜를 잊지 말라는 것이다. 너희를 종 되었던 애굽에서 건져 내신 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며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여 주신 분. 수많은 죽음과 탄생 속에서도 율법의 의미를 되새겨 주시며 하나님을 향한 순종을 알게 하셨던 분. 그분을 결코 잊지 말라. 그분이 너희의 창조주가 되시며 위로자시며 영원한 약속의 하나님이심을 어떤 경우에도 잊지 말라. 잊지 말라.
“그들은 내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서 그들 중에 거하려고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줄을 알리라 나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니라”(출29:46).

잊어버릴 것
어거스틴은 “과거는 지나갔으니 내 시간이 아니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니 내 시간이 아니고, 지금이 내가 쓸 수 있는 시간이다”고 했다.
인간의 뇌 기능 중 가장 쓸모없는 것은, 과거에 매여 현재도 미래도 볼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혀 염려하고 불안 해 한다. 살다 보면 누구든지 힘들거나 고통스러운 일을 겪게 된다. 그때는 마음이 울적해지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정상으로 회복되는 게 보통이다. 또한 하나님의 방법은 우리를 연단하시기 위하여 끊임없이 순경과 역경을 반복하여 허락하신다. 그때마다 지금에 충실하지 않으면 우리는 연약함을 배개 삼아 영원히 누워 버려야 할지도 모른다.
알베리오네 성인은 철저한 영적생활을 위하여 피조물에 대한 추억까지도 잊기를 권면하신다. 얼마나 많은 생각과 사람들 혹은 사람들과 얽힌 이야기들이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데리고 달콤한 소풍을 떠나려 하는가. 기억할 수 없는 것들은 물건이나 그 어떤 흔적을 붙잡고라도 기억하고 싶어 하는 것이 인간의 기본 욕망이다.

어떤 이는 자신의 건강문제에 지나치게 사로잡히는 경우도 있다. 무슨 큰 병에 걸렸다고 생각하거나, 작은 신체적인 불편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며, 견디기 힘들어 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긴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하나 걱정하거나, 기력이 떨어지며 몸이 나른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많다. 나의 일에 대하여 자포자기하거나 무기력함을 이유로 게으름을 피울 때도 많다.
광야 길을 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시절을 그리워하며 추억할 때마다 그들의 입에는 불평과 원망이 넘쳐났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그들의 불평을 해결해 주셨지만 그들은 끝까지 그 불평을 멈추지 않았다. 지금 내 자리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답이 있다. 이 자리에서 무엇을 어떻게 할지 기도하고 고민하면 주님이 답을 주신다. 지나간 것과 다가올 것은 내 기억에 담아두지 않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것이다.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주님이 인도하시고 계시는 지금인데. 떠오르는 불안과 염려는 자꾸만 잊어버려라. 달콤한 추억까지라도. 그것이 주님의 길을 가는데 나의 발목을 잡고, 생각을 어둡게 하고, 심지어 주님이 주실 영원한 안식까지 위협하는 원인이 될 수도 있음을 기억하여라. 오늘만 보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라. 한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고 주님 말씀하셨다.

결코 잊지 말 것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잊고 살기 쉬운 연약한 죄인들이다. 하나님에 대해서 잊는 어리석음은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들에게 경문을 이마와 팔에 차는 의식을 낳게 했다. 그만큼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의 의식 한가운데 붙잡아 매고자 할 정도로 그들의 삶은 치열했다.
우리가 출애굽 할 때부터 지금까지 한순간도 우리를 놓지 않으셨던 그분을 인정한다면 그 은혜와 사랑을 잊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기회가 주어지면 주님에 대한 사랑에 심통을 내기도 하고, 내 뜻대로 이루어 달라며 협박을 하기도 한다. 시간이 흘렀다고 안일해지고 일상의 한 부분이 되어버린 주님을 심드렁하게 바라볼 때도 많다. 늘 계시니까. 늘 그분 안에 거한다고 믿으니까. 그러나 주님은 질투하시는 분이시고, 또한 사랑의 징표를 원하시는 분이시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말씀하시고, 세상 끝 날까지 함께하리라 말씀하시는 분이시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는 예수님 덕분에 축복과 평안을 받고자 하는 사람은 많으나 고난을 받고자 하는 사람은 매우 적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과 더불어 세상적인 행복과 평안을 즐기려고 하지만 예수님을 위하여 고통을 참고 견디겠다는 훌륭한 성도들은 매우 적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사랑하되 곤란을 당하지 아니하는 때만 사랑한다. 또한 하나님의 도움과 위로가 적다고 생각될 때는 원망을 하기도 하고 낙담하기도 한다. 예수님께서도 부활의 영광을 얻으시기 전에 십자가의 큰 고통을 겪으셨다. 예수님께서는 매일매일 십자가를 짊어지시고 순교적인 생활을 하셨는데, 우리는 언제나 평안과 형통함만을 원하고 육신적인 즐거움만을 누리고자 한다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우리가 영적으로 빠르게 성장하려면 세상적인 쾌락과 위로를 십자가에 못 박으면서 십자가의 길,  좁은 길로 정진하며 어려운 일을 많이 참아 견디어야 하는 것이다.
연단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랑의 선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며, 우리는 언제든지 연단받기를 사모하는 믿음으로 충만한 가운데 크고 작은 고난을 잘 극복하면 영적인 유익이 대단히 많다. 우리들이 자기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세로 생활할 때 마음과 행실이 정결하게 되어 익은 열매가 된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8:18).

사막 교부들은 언제나 자신들이 인간임을 기억했다. 그들은 마지막 숨을 쉴 때까지 유혹 받을 것을 예상하고 늘 깨어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두렵게 하거나 초라하게 하는 영성이 아니라 그 길에서 인간성을 지켜주는 영성이었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가는 것이 바로 자유로 가는 길이다. 우리는 어떤 죄 때문에 우리 자신을 심판하지 않는다. 그 대신 자신 안에 있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긴다.
팜보 교부가 안토니오 교부에게 물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대답은 이러했다. “그대 눈에 의롭게 보이는 바를 과도히 믿지 마시오. 지나간 일을 후회하지 말고, 혀와 육욕을 제어하시오”(사막 교부들의 금언 집 중에서).

내 눈에 조금 의롭고 선한 것이 있다면 얼른 내려놓고 과도히 믿지 말자. 지나간 일들을 후회하지 말고 지금 나의 앞에 당한 경주를 힘차게 하자. 주님이 주셨던 사랑만 기억하자. 그 사랑을 안고 죽음까지 이를 수 있도록 하자. 기억하고 기억하지 않아야 될 것들을 분별하여 결코 잊지 않고 주님을 위해 살아가자. 우리의 남은 생이 얼마일지 모르나 주님 때문에 사는 삶이라면 가장 가치로운 삶이 아니겠는가.
이순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