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소음에 귀를 막고

세상 소음에 귀를 막고 세미한 주님의 음성을 듣자

얼마 전 ‘대한민국은 소음공화국’이란 어느 신문의 사설을 읽으면서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루에도 온갖 잡음과 소음이 울려 퍼지는 요란한 이 세상에서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소음공화국의 오명
지난해 환경부는 전국 45개 도시 348개 주거지역에서 연평균 환경소음을 측정한 결과 낮 시간대에는 주거지역 10곳 중 6-7곳이, 밤 시간대엔 10곳 가운데 8곳 이상이 기준을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실제 도시인들이 느끼는 생활소음은 보통이 아니다. 낮에 집에 있으면 야채트럭 행상의 확성기나 개 짖는 소리, 배달 오토바이들의 엔진 음이 뒤섞여 귓전을 때린다. 밤이면 인근 슈퍼나 놀이터 등에 서성이는 취객들의 떠드는 소리가 거실 안으로 밀려온다. 외출 때면 지하철과 시내버스 안내방송, 차량들이 지나가는 소리, 광고방송, 휴대전화 통화소리, 각종 공사장의 굉음, 상점들의 외부 스피커가 우리의 귀를 괴롭힌다. 우리는 소음에 시달리는 소음공화국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고 보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도 洲좡?현실이 아닌가 생각한다. 사실 우리의 생활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도록 요란한 소음을 내며 방해하는 요소들이 얼마나 많은가? 
성경에 보면 엘리야 선지자가 호렙 산의 동굴에서 세미한 가운데 여호와의 음성을 듣는 장면이 나온다. 천신만고 끝에 이세벨의 추격을 피해 호렙 산의 동굴로 찾아간 그의 곁을 여호와께서 지나가신다.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는 엄청난 굉음 속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않았다. 바람 후에 땅을 가르고 산을 허무는 지진이 있었으나 그 지진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않았다. 또 지진 후에 이글이글 타는 불꽃이 있었으나 그 불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않았다. 그 후에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라는 세미한 소리가 들려왔다.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
대개 하나님의 임재와 영음은 세미하기 때문에 신경을 써서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잘 듣지 못한다. 우리 자신이 주님께 관심을 기울이고 지금 이 순간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들으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깨달을 수가 없다.
우리가 생활하는 환경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소음이 너무 많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인데, 다 하나님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라고 했다(요일 2:15-16). 육신이 좋아하고 만족하며 쾌락을 즐기고 집착하는 것들을 향한 정과 욕심들, 눈으로 보면서 즐기게 되는 모든 것들, 그리고 재산이나 학벌, 용모, 재능, 건강, 가족, 좋은 직장, 화려한 주택, 신령한 체험들, 입신체험, 기도를 많이 하는 것, 신유와 축사의 은사, 신앙적인 지식이 많은 것 등이 가득한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주변에서 온갖 감언이설과 소음을 내면서 우리의 신경을 자극하고 마음을 빼앗아 간다. 물론 배후에서는 어둠의 영들이 역사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예를 들면 TV의 드라마와 연속극이나 예능 프로, 영화나 만화, 세상적인 잡지 등이 우리의 눈과 귀를 막아 주님께로 향한 우리의 마음을 무디게 한다. 인터넷과 컴퓨터 게임이 우리의 온 신경을 빼앗아 아예 주님을 잊어버리게 한다. 남자의 경우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힘들게 일하는 현장의 소란함과 분주함에 쫓겨 하나님과의 은밀한 교제시간을 놓쳐버리기 일쑤이다. 주부들의 경우 조금 더 싸게 식료품과 제품을 구입하기 위해 여기저기 마트를 다니고 이것저것 꼼꼼히 따지고 고르다보면 어느새 예수님은 간데없이 잊어버린다. 내가 좋아하는 액세서리와 옷, 가전제품, 맛있는 음식이 우리의 마음을 자극한다. 또 재미난 친구나 이웃들과의 친근한 교제 속에서 주님을 잊어버리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모처럼 기도 좀 하려고 손을 모으면 어느 새 지나가는 트럭에서 마른 멸치를 싸게 준다고 어서 나오라고 소리친다. 그런가 하면 아침저녁으로 남편이나 아내나 자녀들이 이것저것 챙겨달라고 요구하는 소리, 올려놓은 압력밥솥,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 또한 최근 친정 식구들의 소식이 주님을 향하려는 우리의 마음을 무디게 한다.
그런가 하면 괜히 아침에 사소한 말다툼이 도화선이 되어 수년 전에 남편이 나에게 섭섭하게 하고 상처를 준 일이 기억나 기분이 나쁘고 괴롭다. 그로 인해 하루 종일 마음이 심란하고 소란하여 기도와 묵상을 제대로 안 된다.

주님의 손을 잡고
이렇게 저렇게 우리의 마음을 소란케 하는 소음과 굉음들로 인해 우리는 주님의 임재를 상실하는가 하면, 모처럼 각고의 노력으로 얻은 성령 충만을 이런저런 사소한 부주의로 회개와 절제, 기도생활을 소홀히 하는 바람에 주님의 임재를 상실하고 심령은 메마르게 된다. 그러니 어찌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을까?
생활소음이 건강과 정서에 해롭다는 것은 상식이다. 장시간의 과도한 소음에 노출되면 수면장애와 청력장애, 불안증 등이 생겨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진다.
이와 같이 영적인 일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생활주변의 과도한 소음에 노출되어 주님의 임재를 잃어버리고 살게 되면 심령이 메마르게 되고 무기력증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예배, 기도, 절제, 회개생활 등이 시큰둥해지고 나중에는 아예 하기도 싫어져서 영적으로 심각한 병증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라는 생활주변의 영적인 소음들을 떨쳐버리고, 하나님의 임재와 성령 충만한 가운데 살고자 한다면 세미한 주님의 음성을 듣고자 하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영성의 대가 로이드 존스나 요한 웨슬리 목사님은 단 몇 분간이라도 주님을 잊어버리지 않고자 노력했다. 한국의 대부흥사 이성봉 목사님은 언제나 어디를 가든 주님의 손을 잡고 간다는 믿음으로 오른 손을 꼭 쥐고 다녔다.
일본 강점기 한국강토를 성령의 물결로 휩쓸었던 이용도 목사님은 “미치자 미치자 예수님께 아주 미치자!”고 외치면서 주님의 임재와 성령 충만한 가운데 33년의 짧은 일생을 살다가 가셨다. “주님, 세미한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마음을 기울이게 도와주소서!”
이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