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행복은 하나님뿐이지요

경기도 시흥시 금이동 작은 언덕 위에  선생님 기념관을 짓기 위해 한 나절 동안 땀을 흘리며 일을 하신 분들이 저녁식사를 하러 가셨다. 뒤뜰에 혼자 앉아 소래포구 쪽으로 붉게 물든 저녁노을을 바라보니 인생무상(人生無常)이 느껴진다. 유수같이 흐르는 세상, 만물은 쉬지 않고 흘러가고, 여린 나뭇가지에 어느새 연녹색 잎들이 한 잎 두 잎 피어 있었다. 불어오는 봄바람에 뻐꾹새 우는 소리가 청아하게 들려온다.  

내 일생 가장 다정하고 고마우신  선생님.

200513일 아침, 밤새 고통 속에 한숨도 못 주무셨다. 온몸에 열이 나서 목도 붓고, 말씀도 제대로 못하시고, 아무것도 드시지도 못하시고, 계속 설사를 하셨다.

대사경회 첫 강의를 해야 됐기 때문에 안 갈 수도 없고 기다리다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선생님, 저 잠깐 강의하고 오겠습니다. 오늘 첫날 성경의 핵심진리 입문을 맡아서 금방 하고 올게요.” 다른 때는 항상 강의를 잘 하고 오라고 간절히 기도를 해주셨는데, 오늘은 도저히 기도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셨다. 선생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데, 열이 많이 나고 심장이 심하게 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박 목사님, 빨리 다녀오세요. , 빨리요.” 들릴 듯 말듯 쉰 목소리로 힘들게 말씀하시는데, 너무 고통스러워 보이셨다. 평소에 그렇게 아프셔도 신음소리조차 내지 않으려고 하셨던 분이었다. “, 선생님 죄송해요. 빨리 다녀오겠습니다.”라면서 인사를 드린 후 강의를 마치고 내려오는데, 선생님이 소천 하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 소식을 전하시는 목사님은 목이 메이는 듯 울먹이면서 말씀을 하셨다.

한쪽 폐가 다 녹아버릴 때까지 죽도록 충성하시다가 그토록 사랑하던 주님 곁으로 가신 선생님. 40년 병상생활을 하시면서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 오로지 주님만을 사랑하며 자신을 희생하셨다. 자신의 힘이 다 소진될 때까지 이웃들과 공동체를 사랑으로 끊임없이 섬기며, 신령한 밑거름으로 살아가신 선생님이셨다. 하루하루 살아온 이 광야의 길. 이제는 늙고 병들어 동작이 둔해지고, 삶의 맛을 점점 잃어가고 있는 듯하다. 그 옛날을 동경하며 인생무상에 선생님의 임종이 자꾸만 떠오른다. 선생님과 함께 했던 시간들 가운데 들려주시던 말씀들도 다시 떠오른다.

인간의 참된 행복은 마음에 있는 것이지 외적인 조건에 있지 않아요. 그러므로 저와 같이 외적인 조건이 불행스럽게 보인다 할지라도 저와 같은 사람이 행복이라고 증거 한다면, 그것이 바로 순수한 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순수하고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 사람들에게 깨닫도록 하기 위하여, 저로 하여금 병상에서 불행한 육체적 조건을 가지고 생활하도록 섭리하신 것 같습니다. 어떤 분은 저에게 음식을 입에 넣어줄 테니까 누운 채로 편하게 식사를 하라고 하시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는 것을 기뻐하시지 않아요. 저의 팔을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는 제 손으로 직접 식사하기를 원하신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엄살이나 꾀병하는 것을 제일 싫어하는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할 수 있는 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하여 스스로 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이시지요.”

사실 저는 하나님께서 필요하시다면 얼마든지 고난을 주시라고 기도하지요. 저에게는 고난이 다가올지라도 두려움이나 겁에 질리는 마음은 없어요. 성경 말씀 중에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은 안주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지요. 아무리 어려운 시험을 당한다 할지라도 감당할 수 있는 시험만 주신다고 하셨어요. 만일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시험풍파가 다가오면 기적을 나타내서라도 피할 길을 열어주시고 감당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니까요.”

하나님의 말씀은 신실하기 때문에 저는 성경말씀을 믿고 의지하면서 담대하게 고난을 구하는 기도를 가끔 잘하고 있어요. 제가 담대히 고난을 구하는 것은 의지가 특별히 강하거나 인격이 특별히 좋다거나 지혜가 특별히 뛰어나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닙니다. 제가 고난을 선택할 때는 주님께서 기적으로라도 도와주신다는 믿음을 저에게 주셨고, 또한 주님과 함께 고난당하는 것이 합당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고난을 구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모래 알처럼 많고 많은 이 세상의 사람들 중에서 저 같은 사람을 이렇게 만드시고 불러주신 하나님께 너무너무 감사하고 있어요. 아무리 건강한 몸을 가지고 성공적인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제 마음은 티끌만큼도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그때 해주신 말씀들이 가슴에 머물다가 사라지고 머물다가 사라지고 한다. 선생님을 잊지 못하고 그때를 그리워하며 사는 이 모습이 숙명인가 보다. 이 세상에 발을 디디고 살아가셨지만, 더 이상 이 세상에 머물지 않으셨던 선생님. 언제나 하늘을 바라보며 사셨던 선생님. 헛되고 헛된 세상에 그 마음이 단 한시도 빼앗기지 않게 하시기 위하여 우리 주님은 선생님을 육체 가운데 가둬두신 것일까.

반면 나는 이곳저곳 자유롭게 다니지만, 영혼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구더기 같은 육신에 갇혀 사는 가련한 인생이다. 만물의 찌끼만도 못한 죄인이다. 저 하늘나라에 가지고 가지 못할 것에 왜 이리도 미련이 많은지. 풀도 시들고 꽃이 떨어지듯, 이 육신도 언젠가는 흙으로 돌아가야 할 인생. 그저 이 광야 길에 주님만을 바라보며, 주님만을 의지하며 온 몸이 녹아 없어질 때까지 선생님처럼 그렇게 쉼 없이 달려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건강, 재물, 지식, 권력과 지위가 부러운 게 아니다. 고난을 사모하는 마음,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마음, 하늘의 지혜를 담은 마음, 고통을 행복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입술이 진정 부러운 것이다.

주님을 온전히 따르려거든 두 벌 옷도 가지지 말고, 지갑에 동전 한 푼이라도, 현금카드라도 넣고 다니지 말아야 할 것을. 내 먹을 음식 챙기지 말고, 맨발로 이 가시밭길을 묵묵히 따라야 할 것을. 자신의 이성과 판단, 명철을 의지하는 지팡이도 버려야 할 것을. 이익 따지지 말고 오리를 가자면 십리까지 가주고, 겉옷을 달라면 속옷까지 내어주는 희생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을. 원수를 만나거든 축복의 기도를 해주고, 돈과 명예를 탐하지 말고, 이 동네 저 동네 구걸하며 복음의 정신을 따라 순수하게 살아야 할 것을. 주면 먹고 안 주면 굶고 그저 주님이 주시는 것으로 감사하며 기적의 하나님을 믿고 살아야 할 것을. 이 세상 사람들에게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어, 오직 주님만이 모든 것이 되기만을.

어서 속히 육신의 장막을 벗어버리고 싶다. 주님 품에 안기고 싶다. 이 세상 그 어떤 피조물도 마음의 평화를 깨트리지 못하는 그 나라에 속히 이르고 싶다.

박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