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심부름꾼이 되고 싶어요

마르티노는 1579년 남미 페루의 리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스페인계 기사(knight)였고, 어머니 안나는 페루의 원주민이었다. 마르티노는 리마에서 가난한 어머니와 살았다. 아버지는 상당히 부자인데다 훌륭한 군인으로, 체격도 좋은 스페인 신사였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흑인이 싫다는 결정을 내리고는 떠나버렸다. 그의 아버지는 어머니 안나와의 관계를 무엇보다도 수치라고 생각했으며, 그것은 단지 그녀가 흑인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흑인이라는 것에 대하여 어머니가 화내는 것을 볼 때면 마르티노는 슬펐다. 어린 남자아이는 피부가 검다는 것이 왜 그렇게 두려운 일인지 아직 몰랐다. 어느 날 마르티노는 여동생 젠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는 잘못 알고 있어. 중요한 것은 피부색이 아니라 영혼의 색인데 그렇지 젠? 만약 우리들이 새하얀 영혼을 가지고 하나님 마음에 드는 일을 한다면 우리들이 가난한 흑인繭遮?것도, 아버지가 우리들을 버렸다는 것도 아무런 슬픔이 되지 않을 텐데.”
어렸을 때부터 마르티노는 영적인 통찰력과 믿음이 남달랐다. 또한 자신도 가난하여 잘 먹지 못하며 초라한 옷을 입고 있으면서도 길거리를 지나가다 불쌍한 할아버지가 구걸을 하면, 가지고 있는 돈이나 먹을거리를 다 주고는 집에 돌아와서 어머니께 혼이 나곤 하였다.

마르티노는 성장하여 도미니코 수도원으로 들어가려는 자신의 선택에 대하여 어머니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어머니, 저는 높은 사람 같은 것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세상 안에서 가장 큰 임무를 수행하라고 저를 뽑으셨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 역할은 다른 사람이 할 거예요. 그러나 하나님을 위하여 보잘 것 없고 변변치 않은 일을 해야 하는 사람도 역시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수도원의 심부름꾼이 되어서 제 자신을 바치고 싶어요.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를 좋은 몫에 잘 사용하실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그가 수도원에 들어가서 받은 첫 임무는 이발소에서 봉사하는 일이었다. 2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있었으므로 바쁜 날들을 보냈지만, 마르티노는 자신이 수도원 안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으며, 자신이 부름 받은 성소에 대해서 하나님께 늘 감사하는 마음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고 다짐하였다.
어느 날 나이가 어린 신학생 수사가 머리를 깎으러 왔다. 그는 시간이 별로 없으니 빨리 깎아 달라고 하였다. 어린 수사는 가지고 온 책을 읽으면서 마르티노가 열심히 가위질을 하고 있을 때 조금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고, 자기의 일에만 열중하였다. 그러다 자신의 머리가 지금까지 모습과는 달리 새롭게 깊숙이 잘려 있는 것을 보고는, 얼굴이 시뻘겋게 된 채 고함을 질러대는 것이었다.
“야 이 멍청아, 네가 내 머리를 전부 잘라 버렸잖아. 너는 내가 옆은 길게 하고 뒤는 짧게 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냐?”
“폐를 끼쳐 죄송하게 됐습니다. 미안합니다.”
“뭐라고, 폐를 끼쳤다고? 폐를 끼쳤다면 다야. 너와 같은 아이를 누가 수도원의 이발소로 데리고 온 거야? 흑인아이는 마구간에서 가축을 돌보는 것으로도 충분해.”
마르티노는 얼굴을 붉히며 몇 번 거듭 정중하게 사과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러자 마르티노는 즉시 무릎을 꿇고 상대방의 발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는 그 수사를 향해 웃어주었지만 어린 수사는 아직도 화를 내고 있었다.
마르티노는 사람들이 싫은 소리를 한다거나, 멸시한다거나,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를 염려하기보다는 수도원의 규칙을 잘 지키면서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잘 완수하였다. 그는 늘 가장 미천하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일을 찾았으며, 열중하였다. 또한 자신에게 맡겨진 임무에 단순한 마음과 성실한 자세로 충실히 행하였다. 흑인이라서 겪어야 하는 고초와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께 집중된 삶을 살면서, 사랑과 웃음을 잃지 않았다.

4년 전,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고 오직 주님만을 위한 삶을 살기로 작정하였다. 주님을 사랑하므로 이웃을 사랑하며, 자신을 부인하며 말석에 앉기를 자처하며 기도했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 때문에 기뻐할 수 있고, 감사할 수 있고, 다 버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가슴이 뜨거울 때는 그런 빛된 삶을 동경하면서 잘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의 모습은 은근히 말석보다는 대우받기를 바라고, 쓴소리 보다는 칭찬과 인정받는 말을 듣고 싶어 하고 있다. 죄를 범해도 가슴을 치며 철저하게 회개하지는 않고, 무뎌진 가슴으로 주님께 호소하듯 불평만 늘어놓는다. 내 눈에 큰 들보가 있음에도 깨닫지 못하고, 이웃의 눈에 있는 작은 티는 생선살 발라내듯이 다 발라내어 정죄하여야 속이 후련하게 되었다. 먼저 고개 숙이지 못하고, 자만심과 자존심으로 배려하기보다는 배려받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겨났다.
“주님, 어쩌면 좋습니까? 이 교만하고 더러운 죄인을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마르티노와 같이 가장 천하고, 가장 낮은 자리를 자처하며 겸손해 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며, 행복해할 수 있는 초심의 마음을 회복하게 해주세요. 주님께서 제 앞에 서시고 저는 주님 뒤에 숨을 수 있는 그런 겸허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인정을 받든지 안 받든지 사람들이 호의적이든지 반감을 갖든지 마음을 쓰지 않고 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일만을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주님께서 저를 쓰시고자 하는 곳에 써주시고 저는 다만 저의 몫을 주님께 다 드리는 그런 삶을 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세요.”
허윤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