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버스를 개조해 만든 집에서 온 가족이 생활할 정도로 가난했던 고학생이 장학금을 들고 모교를 찾았다. 최근 서울대에 송재홍장학기금을 출연한 송재홍(44·사진) 홍보산업 대표다. 그는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재단법인 현동장학회에서 18년 동안 해마다 1억원씩을 떼어 서울대에 전달하기로 했다. 서울대는 이 기금을 운영해 농생대 응용생명화학 전공 학부에 장학금을 지급한다. 조건은 하나다. “장학금 수혜자가 사회에 나가면 최소한 장학금으로 받은 금액만큼은 사회에 환원하며 살라”는 것이다.

그는 “학창 시절에 지독하게 가난했다”고 말을 꺼냈다. 그의 아버지는 93년 한동대를 설립한 송태헌(70) 대영그룹 회장. 부친은 87년 시작한 폐기물 처리사업으로 큰 돈을 벌어 다시 집안을 일으켰지만 70년대 초반 사기를 당해 10여 년 동안 온 가족이 몹시 궁핍하게 살았다. 송 대표가 중학교 2학년이던 78년부턴 일곱 식구가 경북 포항시 고물상 한쪽에 놓인 ‘버스집’에서 살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다. “낡은 버스 바퀴를 떼어버리고 벽에는 스티로폼과 합판을 댄 집이었어요. 버스 안에 칸막이로 방 세 개를 만들고 버스 외벽에 슬레이트 지붕을 대 부엌으로 썼지요.” 그는 “그 와중에 부모님은 장남인 내가 수험생이라고 공부방을 따로 만들어주셨다”며 눈물을 훔쳤다. 그의 가족은 이 집에서 10년 동안 살며 아버지의 사업 자금 500만원을 마련했다.

대학 생활도 순탄치는 않았다. 서울대 농화학과를 83년에 입학했지만 공부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느라 11학기 만에 졸업했다. 그는 방학이면 오전 5시부터 다음날 오전 1시까지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온갖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벌었다.

그의 기부는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기 위한 것이다. 독실한 기독교 신도인 송태헌 회장은 사업이 불같이 일어나던 93년 회사를 매각한 돈 320억원으로 한동대를 설립했다. “갑자기 감당하지 못할 큰 돈을 벌면 자식을 망친다”는 이유였다. 장남인 송 대표도 아버지의 뜻을 따랐다. “리어카를 끌어도 제 가족은 먹여살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평생 소원을 거절할 수는 없었지요.”

아버지 뒤를 이어 폐기물 처리업에 뛰어든 그 역시 회사 경영이 안정화 단계에 들어선 2005년부터 장학금 기부를 시작했다. 해마다 학생들을 선발해 수백만원, 수천만원을 전달하다 지난해엔 아예 장학재단을 만들었다. 5억원 상당의 회사 주식(27.2%)과 현금 3억원을 보태 현동장학회를 세운 것이다. ‘현동’은 부친의 호다. “제가 기부할 때 부모님이 가장 좋아하시니 기부를 중단할 수가 없다”며 웃었다.

그의 바람은 기부가 이어달리기처럼 후대로 전해지는 것이다. 장학금을 받는 학생들에게 “받은 만큼 환원해달라”는 단서를 단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세상이 시궁창 같아도 맑은 물이 한 방울 한 방울 들어가면 결국 깨끗해질 것이라는 성경 말씀을 새기고 산다”며 “베푼 만큼 돌아온다는 게 맞는지 장학금을 낸 뒤로 사업이 더 잘 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