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變化)


1941년 12월 7일, 353대의 일본 전투기가 하와이의 진주만에 정박해 있던 미국 해군 함정을 향해 무차별 공격을 감행했다. 그러자 웨스트버지니아 호에 근무하는 미 해군 병사인 로버트슨(Robertson)은 급히 기관포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 일본 비행기를 향해 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안타까움과 당혹감에 몸을 떨어야만 했다. 왜냐하면 그가 쏘고 있는 실탄은 실전용이 아니고 연습용이었기 때문이었다. 기관포에서 실탄이 나가기는 했지만 그것은 소리만 내고 있을 뿐 그야말로 무용지물이었다. 그는 여기에서 진짜와 가짜의 차이를 피부로 실감할 수 있었고, 가짜가 얼마나 보잘 것 없고 무력한 것인가를 뼈저리게 느꼈다.
또 한 번은 성경그룹에 가입해서 성경공부를 하게 되었다. 그날따라 인도자가 한 사람씩 돌아가며 성경구절을 암송하게 했다. 그런데 그가 암송할 수 있는 성경구절은 요한복음 3장 16절 뿐이었는데, 앞사람이 암송해 버렸기 때문에 로버트슨은 앞이 캄캄했다. 그의 얼굴은 금세 홍당무처럼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그대로 앉아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여 하는 수 없이 떨리는 목소리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요한복음 3장 16절을 암송했다. 그는 사람들이 말은 하지 않고 있었지만 자신을 틀림없이 비웃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 ‘나는 가짜다’라고 자책하기 시작했다.
기도를 한다는 것도 형식만 있는 가짜였고, 찬송을 하는 것도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감격이 찬양으로 뒷받침되지 않는 가짜 찬양이었으며, 경건의 모양만 갖추었을 뿐 알맹이가 없는 가짜 경건과 교인을 흉내 내고 있을 뿐 가짜교인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이때부터 마음에 단단한 결단을 하면서 진짜 교인이 되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노력 끝에 빌리 그레함 전도단의 주역 멤버가 되었고, 나중에는 청년 신앙 훈련단체인 네비게이토(Navigators)를 창설하기에 이르렀다.
1844년 2월 26일은 미 해군의 최대 전함인 프린스턴 호의 진수식이 있는 날이었다. 대통령과 국무장관을 위시하여 각계각층의 지도층 인사와 상원의원 등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다. 식순에 따라 대통령의 축사가 있었고 예포가 발사되었다. 그런데 첫 번째 예포가 발사되고 두 번째 예포가 오발되면서 국무장관과 해군 참모총장 등 고위 관리들이 현장에서 즉사하고 수십 명이 중경상을 입는 참사가 발생했다. 이는 미 해군 역사에 있어 가장 비극적인 날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미주리 출신 상원의원인 토마스 벤튼 의원은 친구인 해군 장성 길모가 그의 어깨 위에 손을 얹자 돌아서서 성질을 부리며 그를 뒤쫓아 갔는데, 그 사이에 사고가 발생해서 참사를 아슬아슬하게 모면한 행운아가 되었다.
그는 본래 성격이 괄괄하고 쉽게 흥분을 잘했다. 걸핏하면 성질을 부리고 잘 싸웠기 때문에 그의 주변엔 친구가 없고 원수처럼 지내는 사람만 많았다. 이러한 그가 사고를 모면한 그날 밤, 집에서 잠자리에 들었는데 이상하게도 잠이 오질 않고 자신의 성격적 결함이 머릿속을 온통 들쑤셔 놓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자신이 가장 원수처럼 지내던 다니엘 웹스터 씨를 찾아가서 이렇게 말했다.
“웹스터 씨, 오늘 프린스턴 전함에서 내 어깨를 두드린 것은 하나님의 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손은 내 마음도 두드려 주셨습니다. 지금까지의 제 생활은 잘못되었으며, 나의 모든 생각과 삶의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먼저 저와 사이가 안 좋은 사람들에게 용서를 빌어야 할 것 같아서 한밤중에 무례한 줄 알면서도 이렇게 찾아왔으니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변화는 내 생각과 아집을 포기하는 것이다. 내 주장을 상대방의 주장 앞에 주저앉히는 것이다. 치켜 뜬 눈을 내리는 것이고, 뻣뻣했던 고개는 숙이는 것이다. 큰소리를 조용한 소리로 바꾸는 것이고, 분노를 용서로 바꾸는 것이다. 자존심을 존경심으로 물갈이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는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곧 하나님께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송흥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