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과 사역의 갈림길에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큰 사역이 두 개 있다. 하나가 교회이고 다른 하나는 가정이다. 가정을 가진 그리스도인인 우리들은 교회라는 큰 울타리 속에 또 다른 하나의 울타리를 치고 살고 있다. 대개 가정을 가진 이들은 사역과 가정 사이에서 적잖은 어려움과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성경에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눅14:26)라고 말씀 하신 것처럼, 두 가지의 사명을 다 감당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나도 자주 경험하고 있다.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이후로 교회에서는 주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사역자로 살아왔다. 또한 가정에서는 아내이며, 두 아들의 엄마였다. 15년간 사역을 하고 있는 내게도 주님의 말씀을 온전히 실천하며 제자 된 삶을 살기 어려운 시기가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그 시기는 감사하게도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 즉 하나님을 내 삶의 우선순위에 두는 것을 연단 받는 시기이기도 했다.
온갖 아름다운 꽃들이 만개하고, 온 대지위에 생명력이 넘쳐나는 어느 주일의 오후였다. 공동체의 모임을 끝내고 아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그 날 나는, 왠지 모를 행복감에 뿌듯해져 있었다. 주일을 온통 주님께 온 몸과 맘으로 드려서 기뻤고, 예배 가운데 임한 성령의 은혜가 충만했기 때문이다. 또 그 모든 사역을 아들과 함께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주님께 너무 감사했다. 그런 행복감에 도취되어 아들에게 넌지시 한마디를 던졌다. “엄마는 지금 이런 시간이 너무 행복하다. 아들과 엄마가 함께 주님의 일을 끝내고 집으로 들어가는 이 시간이 엄마는 너무 좋단다. 아마 우리 같은 집은 드물거야. 그렇지?”
그러나 그 말에 대한 아들의 대답은 정말 예상 밖이었다. “엄마는 우리 집이 정상적인 가정이라고 생각하세요?” 한마디로 우리 가정은 비정상이라는 것이었다. 행복한 건 엄마뿐이지 가족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아들이 내게 던진 충격적인 한마디에 도저히 그 밤을 넘길 수가 없어서 아들과 대화를 하기로 했다.
이야기를 들어본 즉, 엄마가 하나님께 온통 마음을 빼앗겨 집을 비우고 밖으로 다닐 때 자기와 동생은 엄마가 있어야 할 그 빈자리를 거리로, 친구들로, 술로, 방황으로 아프게 보냈다는 것이다. 아들들이 겪어야 했던 그 방황들이 엄마의 빈자리로 인하여 일어났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말하는 아들에게 눈물을 흘리며 “그럼 어떡하니? 하나님께서 엄마를 사용하기 원하셨고 엄마는 그저 순종할 수밖에 없었단다. 그렇지만 정말 너에게 상처를 주어서 미안하구나.” 라고 말했다. 엄마의 눈물에 당황한 아들은 “그때 그랬단 얘기지요.”라고 했고, 대화는 끝이 났다.
그 날 밤 난 밤새 십자가 밑에 꿇어 앉아 먹먹한 가슴을 부여잡아야만 했다. 사역자를 엄마로 둔 아이들이 겪어야 했던 아픔과 상처, 사역을 핑계로 더 잘 해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에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주님께 의탁할 수밖에는 아무런 도리가 없었다.
“주님, 저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 주소서. 그러나 홀로 보내야 했던 그 시간들 속에 주님이 함께 계셨음을 믿습니다. 언젠가 저들이 복음 증거자가 되어 사역의 길 위에 서게 될 때 그 때 먼저 그 길을 간 이 어미를 이해할 수 있게 하소서. 제가 이렇게 생을 주님께 드리듯 저 아이들도 이 어미처럼 주님께 자신의 생을 드리게 하소서.”
지금은 감히 고백한다. 그 아픔과 갈등 속에서 내가 사명의 길을 내려놓지 않고 눈물로 주님께 가정을 맡기며 이 십자가의 길을 걸어온 것에 대해서 올바른 선택이었다고. 그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었고, 그 뜻에 순종하여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아직 이 길 위에 있다는 것을 난 기뻐하며 안도한다. 또 아들이 사역자로서 서서히 자신의 시간들을 드리는 모습을 보며 감사한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긍휼하신 은혜임을 하나님께 머리 조아려 감사와 찬양과 경배를 드린다.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눅9:62).
김학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