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리 오차드는 레이크 온타리오에서 출생했다. 그의 어머니가 독실한 기독교인이라서 어려서부터 주일학교에 다녔다. 그러나 20세에 방탕아가 되었고 집을 뛰쳐나가 술과 여자로 세월을 보내다가 22세에 결혼을 했으나 곧 아내를 버리고 집을 나갔다.
그가 정착한 곳은 록키산맥의 탄광지대였는데, 당시에는 기업주와 노조측의 알력이 심하여 걸핏하면 혈투를 벌렸다. 오차드는 이곳 노조의 테러 단원으로 채용되어 수많은 폭행과 암살에 개입했다. 그리고는 콜로라도 주 크리플 크리크 정거장을 폭파하여 사망자 14명과 백여 명의 부상자를 낸 테러의 주범이 되었다.
또한 한 때 뉴스거리가 되어 사회를 어수선하게 했던 아이다호 주지사 스투넨 버그씨 살해사건의 주범도 바로 오차드였다. 이 사건은 1905년 12월 30일 스투넨 버그 주지사가 퇴근하여 집 문을 여는 순간 미리 장치해 놓았던 폭약이 터져 주지사의 몸이 산산조각이 났던 사건이었다.
이후 오차드는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는데, 전혀 예기치 못한 주지사의 부인과 아들이 교대로 면회를 오는 것이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용서하신 것처럼 우리도 당신의 죄를 용서한다”고 말하며 작은 전도 책자를 올 때마다 주고 갔다.
드디어 오차드의 영혼에는 놀라운 일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는 지금까지 재판부에서 미해결로 남아 있는 크리플 크리크 정거장 사건을 위시하여 많은 범죄를 자백하기에 이르렀고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는 신앙고백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감옥에서 ‘선한 사마리아인’이라는 별명을 들을 만큼 자기 일에 충실했을 뿐만 아니라, 남들을 도와주고 동료 죄수들에게 성경 말씀을 읽어주며 전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는 주지사 미망인의 끈질긴 요청과 변화된 생활태도 때문에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어 평생을 감옥에서 거듭난 삶을 살다가 죽었다.
첩의 아들로 태어난 가가와 도요히꼬(하천풍언)는 15세에 동경에 올라와 인쇄소, 청소부로부터 시작하여 여러 가지 노동일을 하며 야학을 다녔다. 그런데 소년 시절부터 앓기 시작한 폐결핵이 심해져서 모든 희망을 잃고 병석에 누워 죽음을 눈앞에 두게 되었다. 그는 병석에 누워서 엉뚱한 생각도 했다고 한다. “내가 지금 희망이 끊어져 자살을 계획하고 있는데, 내가 믿는 하나님도 자살을 계획해 본 일이 있을까?” 가가와 선생은 자신을 향한 이러한 질문이 부질없다고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고 모든 일을 성취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무엇에 끌려 다니시는 분이 아니라 모든 것을 섭리 가운데 계획하시고 계획대로 운영해 나가시는 분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러던 중에 마야스 선교사를 만나게 되었다. 자신의 목 안에 있는 핏덩어리를 손수 손으로 꺼내주는 그분의 사랑을 체험하면서 그는 큰 깨달음과 감동을 받게 되었다. 그의 안에 새로운 빛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기독교 안에는 더 깊고 심오한 진리가 있음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었다. 그는 더 깊은 진리를 만나고자, 또한 그 진리 안에서 살아가고자 몇 가지 안 되는 세간을 달구지에 싣고 그 길로 고베 빈민굴로 들어갔다.
이 때 그의 일기를 보면 “이제 나는 죽었다. 이제부터는 새롭게 사는 것이다. 죽음의 선을 넘어서 영원한 삶을 시작하는 것이다”라고 기록되었다. 그는 수많은 고난과 고통과 질병을 뛰어넘고, 마침내 그는 그곳에서 영원히 변하지 않는 참된 진리를 만났고,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하였다.
과거의 자신은 죽고 사선에서 새롭게 출발하는 것이 바로 부활신앙이다. 이후의 생은 덤으로 사는 것이므로 아까울 것도 없고 두려울 것도 없다. 그래서 사선을 넘어선 사람처럼 무서운 사람도 없는 법이다. 그러한 사람은 무엇이나 할 수 있다. 아무도 그를 막지 못한다. 이러한 사람은 행동이 과감하며 용기가 있고 신념에 따라 살 수가 있다. 왜냐하면 항상 따라다니던 죽음의 공포와 죽음의 그림자가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박애정신과 희생은 오로지 사선을 넘어선 사람, 자아가 철저하게 깨어진 사람, 거듭난 사람일 때 가능하다. 그럼 나는 과연 거듭났는가? 무엇이 부족한 것인가?
송흥섭 장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