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
강영은
터널처럼 두른 깜깜한 어둠을 의아해하지 마십시오.
이름없이 땅속에 묻혀 있음을 한탄하지 마십시오..
빨리 싹을 내고 싶다고 초조해하지도 마십시오.
부풀어 올라 터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불평하지 마십시오.왜 그렇게 말없이 웅크리고 있느냐고 묻지 마십시오.
왜 그리 손발 묶인 듯 답답하게 있느냐고 묻지 마십시오.
왜 그렇게 침묵하기만 하냐고도 묻지 마십시오.
왜 빨리 싹 하나 피워 밀어내지 못하냐고도 묻지 마십시오.
어둠이 왜 두렵지 않겠습니까?
적막속에 갇혀있는 것이 왜 답답하지 않겠습니까?
햇빛과 하늘을 이고 춤추는 것이 왜 기다려지지 않겠습니까?
다 썩어 존재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것이 왜 두렵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어둠속에서 홀로 싸운 그 몸짓으로 영혼이 살찐다는 것을
오랜 침묵 끝에 터지는 생명이 더 충만하다는 것을견뎌낸 고뇌와 시련이 더 힘찬 싹을 밀어낼 것을
깊이 익고 오래 썩은 후에라야 더 아름다운 꽃이 필 것을 나는 압니다.
잘 압니다.땅 위로 올라오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압니다. 이제 부터가 시작인 것도...
딱딱한 흙덩이 몸으로 헤쳐내야 함도,
비바람과 폭풍우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잘 압니다.
잎들 떨쳐내고 가지 전정되는 아픔을 겪을 것을 압니다.
가지들 꺾이는 비바람 속에서 몸 흔들릴 것을 압니다.
무정한 발길질과 비웃음 기다릴 것도 압니다.
짓궂은 바람의 장난으로 훍바람 뒤집어쓸 것도 압니다.
그러나
싹 틔울 기쁨에
꽃 피울 기쁨에
열매 맺을 기쁨에
그리고 밝은 햇빛 몸으로 받고
더 높은 하늘로 자랄 기쁨에 모든 것을 잊을 수 있기에
밝은 날 어깨와 가슴에 더 많은 꽃과 열매를 달게 되리라는 걸 알기에
오래 삭힌 몸에서 절로 터져 나올 잎과 꽃으로 숲을 달굴 것을 알기에
훗날 황량한 들판에 떼 지어 들어설 열매 그득한 숲을 꿈꾸기에
오늘도 지난한 몸짓 쉬지 않고 위로 오릅니다.
더 단단히 뿌리와 몸통을 키우며......
그리고 기다려 봅니다.
이 작은 몸으로 작은 한 귀퉁이의 땅을
풍요롭게 할 그날을......
그리고 하늘 농부의 곳간을 채울 귀한 알곡이 될 그날을....
"살아남는 이들 " 중에서 정혜경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