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선교] 나 자신부터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켜야지

처음 캄보디아어를 배울 때에 교재에 실린 내용 가운데 “캄보디아인들은 마음이 좋다. 그러나 약속을 잘 안 지킨다.”는 문장이 실려 있기에 왜 이런 예문이 실렸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실제로 이들과 생활을 하면서 경험해 본 결과 캄보디아인들은 약속을 잘 안 지키고 쉽게 잊어버린다. 또한 약속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새로 이사한 예배당으로 사용하고 있는 건물 옆집에 대학 졸업을 앞둔 여학생이 살고 있는데 대학에서 간호학을 전공하는 자매이다. 전도 목적으로 교제를 나누는 가운데, 일석이조로 캄보디아어 성경을 가지고 같이 읽어 나가면서 발음을 좀 배워 볼까 해서 서로 약속을 하였다. 캄보디아어는 문법은 비교적 쉬우나 읽고 쓰기가 매우 힘들기에 좋은 시간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약속한 날, 시간이 훨씬 지나도 나타나지도 않고 연락도 없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가 하고 사모가 그 자매의 집을 찾아 갔는데 글쎄 집안 청소를 하고 있더란다.

우리 집에 오기로 약속을 하지 않았는가 물으니 답은, 지금 자기는 청소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특별히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씩 웃으면서 별일 없다는 듯 계속 청소를 하더란다. 한국인의 개념과 정서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이었다.

사모는 웬만한 일에는 불평을 잘 안하는 성격인데 그날따라 그 자매에게 바람을 맞고 돌아오면서 무슨 대학생이 저 모양이냐고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혼자 푸념을 하면서 집에 돌아왔다. 사실 대학생이면 다 큰 성인이고 또한 사리분별을 할 수 있는 나이이다. 그런데 약속을 지키지 않고도 별일 아닌 것으로 생각을 하고 그냥 넘겨 버리는 것이다.

현재 우리 교회는 주일예배를 마치고 모두 식사를 같이 한다. 여기는 예배를 마치고 식사를 하지 않는 교회도 많이 있다. 그러나 우리들은 한국의 개척교회를 모델 삼아 섬기고 교제하는 차원에서 식사를 하기로 하여 그동안 사모가 주로 맡아서 해왔다. 물론 음식은 이 나라 음식이다. 그러다가 이제는 봉사하는 훈련도 필요하다 싶어서 이들에게 직접 하게 하려고 계획을 세워놓고 구역별로 봉사하는 순서를 따라서 진행하기로 하였다.

약속을 하고나서 드디어 첫 번째 주일날 아침 8시까지 먼저 교회에 모이기로 하였는데, 시간이 꽤 지나도 오지도 않고 전화도 없는 것이다. 이런 일들이 여기서는 아주 흔하고 이 나라 사람들의 보편적 모습이다. 분명히 약속을 하고 약속한 사실을 확인도 시켜 주었지만 막상 약속시간이 되어도 잘 나타나지를 않는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왜 약속을 안 지켰느냐고 물어 보면 하나 같이 애들이나 어른이나 태연스럽게 “로볼”(바쁘다)이라는 말 아니면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핑계로 일관한다. 약속은 지키려고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고 만약 지키지 못했다면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진지하게 사과를 해야 하는데, 이들은 미안해하는 마음이 별로 안 보인다. 그리고 중요한 약속이라도 자신에게 돈이 되는 일이 생기거나 조금이라도 이익이 더 되는 일이 나타나면 약속은 아예 던져 버리고 그쪽을 향하여 가버린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돈을 받을 일에 대해서는 기억을 잘하고 약속을 잘 지킨다. 아마도 모두들 워낙 가난해서 그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 마디로 약속을 따라 움직이기 보다는 순간순간 자신의 이익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이다. 물건을 하나 주문을 하든지 아니면 구입을 해서 배달해 달라고 약속을 해도 제 시간을 안 지키고 약속을 어기는 것도 아주 다반사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런 모습들을 자주 보게 되면서 사람들이 실망스럽고 신뢰가 가지 않았다. 과연 이렇게 책임감이 없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가 있을까 하고 선교사역에 의구심이 들기도 하였다.

선교지에서는 문화적 충격과 낯선 환경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있다. 그래서 늘 긴장을 해야 하고 힘들고 어려운 면도 있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믿음직스럽고 영혼에 열매를 보게 되면 거기서 힘을 얻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믿음직스럽지 못할 때는 맥이 빠진다.

캄보디아인들과 함께 지내면서 자주 경험한 이후로 이제는 현지인들과 약속한 것에 대해서는 되도록 기대를 하지 않기로 하였다. 그렇게 약속한 것을 믿고 있다가는 나중에 낭패를 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옛날에 우리 한국인들도 약속을 잘 안 지켜서 서양인들에게 “코리안 타임”이란 불명예스러운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약속을 잘 안 지키는 것이 아마도 후진국이나 미개한 나라에서 많이 나타나는 공통적 현상이 아닌가 생각을 해 보는 것이다.

나는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 이들을 보면서 아주 저급한 민족이라고 탄식하며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말을 늘어놓는 때가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에 마음 한 쪽에서 너 자신도 하나님과의 약속을 잘 안 지키고 있지 않느냐 라는 소리가 나의 양심을 찔렀다. 사실 나는 이곳에 오기 전부터 하나님 앞에서 규칙적인 경건생활을 하기로 약속하고 왔다. 그래서 우선 새벽, 정오, 저녁기도회를 꼬박꼬박 드려야 하는데, 언어공부로 인한 부담과 각종 스트레스와 더위 때문에 지쳐서 피곤하다는 핑계로 때로는 약속을 어기고 나서도 대충 넘겨버린다.

얼마 전에 한국에 있는 딸에게서 이메일 한통이 날라 왔다. 이곳에서 선교사역을 하는 우리들을 위해 진지하게 기도하다가 잠이 들었는데, 마침 그 밤에 선명한 꿈을 하나 꿨다 하여 꿈 이야기를 전해 주면서 부모인 우리에게 유익한 충고를 해 주었다.

자기 나름대로 꿈 내용을 정리해 보니 우선 우리가 제일 힘써야 할 일은 선교와 언어훈련보다 먼저 규칙적인 기도생활을 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하며, 마치 다람쥐가 쳇바퀴 돌듯이 규칙적으로 기도생활을 빼먹지 말고 하라고 서슴없이 충고를 하였다. 생각해 보니 새삼스러이 영혼에 신선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나는 이들의 약속 안 지키는 것을 탓하기 이전에 우선 나 자신부터가 하나님과의 약속을 성실하게 잘 지키라고 다시 한 번 다짐을 하였다. 이런 간증을 쓰면서 내 마음속에서 감동이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겠다는 약속을 지켜주신 하나님을 생각하면 감사가 절로 넘쳐 나온다. 신실하시고 좋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박용환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