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이 있는 아침

모든 동물은 하나님의 작품으로, 모양 하나하나가 다 완벽하여 아름답다. 그런데 어찌 보면 하나님의 완전한 창조물로서 더 손색없는 것이 식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뿌리를 땅에 뻗고 어두움 속에서 물과 양분을 빨아들여 줄기로 올리고 찬란한 꽃을 피우는 것. 죽은 것 같은 가지에서 싹이 나는 것. 잎새나 줄기들이 매일 새롭게 자라간다는 것은 경이롭고 놀랍기만 하다. 내 방에 있는 15여년 된 난초는 냉방과 찜질방 같은 역경들을 매년 통과하며 1,2주에 한번 물만 주는 환경에서도 힘차게 새 잎들을 뻗고 있다. 견디고 참는 모습들이, 더구나 악조건 속에서도 새롭게 자라는 모습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정녕 나보다 훨씬 나은 하나님의 멋진 피조물이다.

옥상에서 새벽기도 후에 드리는 묵상시간은 이런 신선한 경이로움으로 언제나 설렌다. 밤새 지상의 사정에 귀 기울였던 천사들이 하늘로 오르는 듯, 뒷산의 안개가 서서히 피어오르기 시작하면 이슬을 머금은 청초한 식물들이 깨어나는 것 같다. 대견해 하며 쓰다듬는 손끝으로 전해지는 찬 기운이 좋고, 결코 불평하지 않는 말없는 그들이 나는 참 좋다. 밤새 심한 바람에 잘린 줄기엔 머지않아 또 새로운 가지가 비집고 나올 것이다. 어찌 해서든 덩굴을 뻗어 폭풍도 견딜 준비를 하는 수세미, 민달팽이 가족의 생존을 위해 쓰러져버린 어머니 같은 봉숭아는 다 잘려서 마를 때까지 마지막 꽃을 피운다. 떨어진 씨앗에서 올라온 떡잎이 청순하게 자라는, 어린 사무엘 같은 단풍나무, 가지 몇 개를 꺾어 심은 개나리는 가장 긴 장마를 견디며 수도사처럼 뿌리를 깊게 내렸다.

코스모스의 너그러움 사이로 힘차게 뻗어가는 선구자 같은 넝쿨장미, 죽은듯하여 버팀대로나 쓰려 꽂은 가지에서 잎새를 띄워 경탄케 하는 나사로 같은 보리수, 이리저리 휘어지면서도 목적을 잃지 않고 끝없이 하늘을 향해 가는 순례자 같은 능소화, 작은 바람에도 사르르 흔들리는 소녀 같은 홑잎의 채송화, 자르고 잘라도 씩씩하게 흔들며 바람을 맞는 디모데 같은 앵두나무. 하나하나가 다 대견하고 사랑스럽다. 쉽게 실망하고 포기하는 변덕스런 사람들과는 어찌 이리 다른지….

성경을 읽고 준주성범을 묵상할 때면 이곳 정원의 형제자매들도 다 그것을 즐거이 듣는 듯하다. 부지런히 나온 벌은 벌써 꿀을 따고 꽃가루를 옮긴다. 구름이 걷히고 태양빛이 밝아지면 뒤늦게 나온 벌레들이 부산하다. 줄을 움켜잡은 거미는 긴장하며 조반을 준비하고, 꽃잎은 머리에 묻은 이슬을 털고 기지개를 켠다.

조물주의 은총 아래 시작되는 하루는 기대가 넘친다. 치유가 유보되고 해결이 더디 되는 중보기도도 이렇게 시작되는 은혜 속에선 그리 답답하진 않다. 주님이 새벽 미명에 이슬을 맞으며 기도하셨고, 하나님의 은총 속에 모든 것을 아뢰셨기 때문이다.

오! 사랑하올 예수님! 모든 것의 모든 것 되신 주님의 인애를 배우길 원하오니, 자비를 내려주시고, 풍성한 긍휼의 마음을 부어주소서! 그리하여 모든 것을 사랑하게 하시고, 저 형제자매들처럼 참는 법을 배우게 하소서!

떠오른 태양이 눈부시다. 파란 하늘 속으로 흘러가는 흰 구름이 자유롭다.

박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