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자리가 꽃자리다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 너의 앉은 그 자리가 / 바로 꽃자리니라 /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꽃자리』 중에서
구상 시인이 돌아가시기 전 찾아오는 분들에게 건네신 이 시는 메마름과 허덕임의 일상에서 저를 뒤돌아보게 합니다. 삶의 무게가 무거워질 때 저는 ‘네 자리가 꽃자리니라’는 시인의 말씀을 떠올립니다. 노 시인이 삶의 끝자락에 가슴으로 담아 풀어 쓴 시가 유난히 절절한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은 온갖 사건과 사람을 통해 이끄시는 숨겨진 하나님의 사랑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포로생활 70년이 지난 후에 스룹바벨과 에스라에 뒤이어 느헤미야의 인도로 불타버린 고향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고향 예루살렘을 사모하는 마음은 힘든 포로생활을 거쳤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저 또한 희귀성 헌틴텅 병을 앓고 있는 남편과 아이가 건강에 묶이는 인생의 포로기를 거치면서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힘든 포로기를 거치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의 목적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금 제가 가시방석처럼 여기며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인 것을,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모든 삶의 자??하나님의 선물인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크던 작던 예외 없이 인생의 포로기를 거치면서 그 나라를 사모하고 주님 안에 거하는 자로 인도함 받습니다.
1648년 프랑스의 루이14세 때 부유한 귀족 가에서 출생한 귀용 부인은 22살이나 연상인 남성과 결혼하며 인생의 포로기를 맞게 됩니다. 고통스런 결혼생활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허락하신 십자가라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 철저히 순복하며 옛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고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며 주님과 동행하는 내적 생명의 길을 걸어갑니다. 12년의 고통스런 결혼생활 끝에 남편과 사별한 후 제네바로 가라는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때부터 그녀의 삶은 새로운 박해와 오해, 비난과 수치, 투옥으로 점철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혹독한 핍박 가운데도 많은 영혼들을 주님께 돌아오는 귀한 도구로 귀용 부인을 놀랍게 사용하십니다.
귀용 부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에 대한 믿음만으로 얻어지는 의롭다 함과, 성인들의 중보 없이 곧바로 하나님께 나아가 직접 그리스도의 이름만으로 기도하는 것에 대한 가르침 때문에, 이교도로 몰려 바스티유 감옥에 투옥됩니다. 그곳에서 더욱 깊이 주님의 고난과 십자가에 참여하며 깊은 연합을 체험합니다. 기적같이 살아서 출감한 귀용 부인은 그 후에도 영적 갈망 때문에 계속해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옛 자아의 못 박힘과 성화, 자아 부인과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생활, 성령 안에서의 기도와 그리스도의 내적 생명에 대해 가르치며, 1717년 70세의 나이로 주님께서 맡기신 지상사역을 마치고 본향으로 돌아갑니다.
귀용 부인은 가시방석 같은 삶의 자리 자리마다 주님 사랑으로 승화되어 꽃자리에 앉는 은총을 입었습니다. 시어머니는 귀용 부인이 악령이 들렸다고 비난하거나, 남들에게 좋은 평판을 못 마땅히 여겨서 험담하고, 손님들 앞에서 모욕과 상처를 주기 일쑤였습니다. 남편도 가세하여 냉랭하고 모욕적으로 대했으며, 심지어 하녀까지도 부인을 함부로 대했습니다.
어느 날, 부인의 옷 입는 시중을 들고 있던 하녀의 거칠고 무례한 행동에 대해서 충고하자 하녀는 부인의 남편에게 하지도 않은 말까지 꾸며서 고자질을 했습니다. 이에 성급한 남편은 불같이 화를 내며 목발을 치켜들고 내리칠 듯이 위협하며 온갖 악담을 퍼붓고 하녀에게 용서를 구하라고 명령했습니다. 부인은 기꺼이 하녀에게 용서를 구했습니다. 귀용 부인은 시댁식구와 심지어 하녀까지 사람의 눈으로 보거나 사람의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영혼의 유익을 위해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것임을 깨닫고 그들에게 순복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아주 작은 결점일지라도 영혼을 정결케 하려는 하나님의 사랑임을 깨닫고 고통을 없애거나 더하려고 하지 않고 그 고통이 다할 때까지 견뎠습니다. 마을 전체를 휩쓴 천연두는 귀용 부인의 집안에도 퍼져 둘째 아들의 죽음과 부인의 아름다운 외모를 빼앗아 갔습니다. 그녀는 욥처럼 “주신이도 주님이시요, 취하신이도 주님이시라”는 고백으로 아들을 하나님께 올려드렸습니다. 또한 천연두로 얽은 자신의 얼굴을 거리에 나가 노출시켜 그동안 아름다운 외모로 인한 교만의 올가미에서 완전한 자유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귀용 부인은 십자가를 진 자리에서 외적인 것이든 내적인 것이든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것 전부를 버리는 완전한 가난, 주님의 뜻에 대한 완전한 순종, 예수님만을 사랑하며 경배하겠다는 소원을 실제로 주님 안에서 누리는 은총을 받았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헉헉 대며 ‘내가 앉은 자리는 가시방석이야’라고 투정 부리고 싶을 때마다, 주님이 함께 머무는 곳은 어디나 ‘꽃자리’임을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변하지 않는 저의 모습과 환경을 보며 주저앉아 허덕일 때마다,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는 주님의 음성이 무릎을 일으켜 세웁니다. 주님께 대한 무한한 신뢰와 사랑으로 이끌어 구원의 삶을 살아가는데 부족함이 없도록 인도하시는 나의 사랑 주님께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박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