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땅에서 시작했어요

초등학교 때 산등성을 몇 개나 넘어서야 갈 수 있는 산간 밭을 아주 가끔 엄마를 따라 간 적이 있었다. 엄마 뒤를 졸졸 따라가다가 몇 번이나 힘들다고 쉬었다 가자고 하면서 떼를 쓰곤 했었다. 힘들게 겨우 올라간 나는 땀을 뻘뻘 흘리시며 일하시는 엄마와는 달리 시원한 나무 그들에서 흙장난을 하며 철없이 놀곤 했었다. 그리고는 왜 하필이면 이 멀리까지 와서 밭을 일구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굴곡이 많고 비스듬한 땅으로 인해 밭고랑도 고르지 않았다. 때로는 산짐승들이 와서 힘들게 일군 고구마를 파먹곤 하면 엄마는 굉장히 안타까워 하셨다. 그런 모습을 볼 때면 곧잘 나는 엄마에게 힘들게 고생하시지 마시고 이 밭은 그냥 포기하고 도로가의 평지에 있는 밭만 일구면 안 되냐고 말하곤 했었다. 문득 그때 일이 새삼스럽게 생각이 났다. 그것은 아마도 얼마 전에 접하게 된 마더 데레사의 “우리는 땅에서 시작했어요.”라는 말씀이 너무나도 강하게 마음을 울렸기 때문인 듯하다.

떠나라, 비참함과 고통의 땅으로
알바니아 공화국에서 태어난 마더 데레사는 집을 떠나 인도의 로레토 성모 수녀회에 들어갔다. 이후 종신서원을 한 뒤 성마리아 학교 교장이 된 그녀?수녀회에서의 삶을 이렇게 정리했다. “나는 로레토에서 제일 행복한 수녀였어요. 가르치는 일에 나 자신을 완전히 헌신했으니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수행하는 진정한 사도직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 일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1946, 36세) 그녀는 피정을 하기 위해 다질링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로레토를 떠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 ‘가난한 사람들 중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라.’ 하나님께서 그녀를 거친 땅으로 부르고 계셨다. ‘내가 저를 개유하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호2:14). 안정되고 익숙한 생활환경과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로레토를 떠난 것은 그로부터 2년 후였다. 교황청 허가가 떨어지기까지 인내의 기간이 필요했다. 그녀는 수도원 밖, 길거리에서 생활할 수 있다는 허락이 떨어지자 그 즉시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렸다. 기도가 끝난 후 그녀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이랬다. “신부님, 이제 빈민가로 가서 일해도 되는 겁니까?”
이후 수녀원을 떠나는 그녀의 두 손에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입는 거친 천으로 만들어진 흰 사리 세벌이 들려져 있었다. 4개월 뒤 성 마리아 학교의 학생들은 그녀가 근처에 있는 모티즈힐에서 작은 학교를 열었다는 소식에 흥분되어 찾아왔다. 그들이 그곳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너무 놀란 나머지 발걸음을 멈추었다. 책상도, 의자도, 책도, 연필도 없이 웅덩이 옆에 쭈그리고 앉아 다 해진 옷을 입은 대여섯 명의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마더 데레사가 보였다. 그 모습이 너무 비참해서 그들은 눈물이 나올 정도였다. 그녀는 그 시기에 대해 이렇게 말하곤 했다. “우리는 땅에서 시작했어요.”
그녀는 비와 바람과 뜨거운 태양을 막을 수 있는 지붕이 없었다. 가장 가난한 사람들, 구더기가 들끓고 각종 전염병이 나돌고, 썩어가는 시체가 이리저리 나뒹구는 가장 비참한 거리에서 살았다. 누구 하나 인정해주지 않는 거리에서 그녀도 버림받은 자처럼 여겨졌다.

한걸음만 옮기면 돼
그녀는 학교 후원금을 얻기 위해 이곳저곳을 다니다가 온갖 냉대와 수모를 겪으면서 지쳐 쓰러져 절망적인 순간을 여러 번 경험했다. 이따금씩 로레토 성모수녀회로 돌아가고 싶은 유혹이 강하게 밀려들었다. 나중에 그녀는 로레토 성모수녀회를 떠나는 것이 집을 떠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희생이었다고 하면서 ‘내 마음은 로레토에 있다’라는 말을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 “유혹은 점점 더 강해졌습니다. 모든 아름다운 것들과 안락함이 나를 유혹했어요. ‘넌 한마디만 하면 돼. 그러면 그 모든 것은 다시 네 것이 될 거야.’라고 사탄은 끊임없이 속삭입니다.”
나중에 어떤 사람은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그처럼 많은 상황에서 여인 하나를 돕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며 그녀를 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하는 일이 바닷물 중 물 한 방울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그 한 방울만큼 고통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가치 있는 일이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사람들로부터 ‘빈민가의 수녀’라고 불렸다. 이에 그녀는 “나는 하나님의 사랑과 영광을 위해 기꺼이 그렇게 되려 합니다.”라고 하였다. 그녀는 영광도 부귀도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는 데만 마음을 쏟았다.
이후 많은 수녀들이 들어왔는데, 그들도 마더 데레사의 가르침과 본을 따랐다. 음식을 담는 값싼 금속 접시 하나와 물을 담는 컵 하나 그리고 옷을 빨 때 쓰는 양동이 하나와 얇은 이불 한 채, 튼튼한 샌들 한 켤레 이상은 어떤 것도 소유하지 않았다. 마더 하우스에 단 하나 있는 천장 선풍기는 방문객을 위한 것으로 응접실에 있었다. 그곳에는 오븐도 없고 세탁기도 없으며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도 없었다. 이런 저런 가전제품들을 기증하고 싶다는 제의가 많았지만 그녀는 언제나 거절했다.
그래도 라디오는 한 대 있어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알지 않겠느냐고 하자, 그녀는 그곳 수녀들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경험한다’고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마더 하우스에는 안락함의 흔적이 없었다. 사람들은 단 한걸음만 움직여도 좀 더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을 텐데, 거칠고 척박한 땅에 그대로 머물러 있기를 원하는 그녀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는 하나님이 머무는 그곳이 축복의 땅임을 알았다.
그녀는 언제나 가장 가난하고 비참한 사람들을 통하여 예수님을 보고 느끼고 만졌다. 마더 데레사의 활동은 언제나 거리와 빈민가에서 이루어졌다.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였던 그녀는 하나님의 음성이 부르는 곳이면 어디든지 마다하지 않고 갔다. 비록 손에 지문이 다 지워 지고 심장의 맥박이 희미해질 정도로 거친 땅을 쉼 없이 일구는 고된 일을 하였지만, 그녀는 행복했다. 십자가를 지시고 피와 땀이 뒤섞인 주님께서 그 땅을 앞서 걸으셨기에.

종종 자신이 발을 딛고 있는 땅, 자신이 처한 환경과 사역지를 훌쩍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더 좋은 땅으로 지계표를 옮기고 싶은 유혹이 강하게 일어날 때가 있다. 하지만 그곳이 아무리 거칠고 척박한 땅일지라도 하나님이 계신 곳이 가장 아름다운 땅이다. 혹 자신이 하는 일들이 하찮게 느껴지고, 무의미하게 느껴지지는 않은가? 이제는 지쳐서 더 이상 구부러지고 딱딱한 이 땅을 일굴 힘이 없다고 평지의 다른 비옥한 땅을 바라보고 있지는 않은가?
그러나 우리의 눈에 만족하는 평탄하고 안락한 비옥한 땅은 훗날 우리의 영혼을 망가뜨리는 소돔과 고모라 땅으로 뒤바뀔 수도 있다. 반면에 사나운 짐승이 몰려와 순간순간 고전분투를 해야 하는 거칠고 비참한 땅이 훗날 우리의 영혼을 정금같이 담금질하여 영원한 천국, 신천신지로 옮겨가게 할 것이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계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