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이하는 경계선상에서 나에게 크고 작은 일들이 속속히 일어났다. 어느 때보다 마음 한구석이 몹시도 춥게 느껴졌다. 어머니의 갑작스런 암수술, 인대가 늘어나 깁스를 했던 발, 말썽을 피우던 사랑니와 썩은 이 치료 때문에 두 곳의 병원을 바쁘게 오고갔다. 앞으로도 얼마 동안은 시간과 돈을 쪼개서 병원을 다녀야만 한다.

왜 갑자기 중요한 시기에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지. 하나님은 내게 무엇을 원하시는 것인지. 답답한 심정으로 주님께 토로해 보기도 하고 묵비권으로 일관도 해보았다. 그동안 허덕이면서도 정신을 가다듬고 영성생활과 맡겨진 일을 충실히 감당하려고 몸부림치고 있었는데 주님은 왜 이렇게 어렵게 하시는지 서러움에 복받쳐 한숨과 눈물이 교차되었다.

순간 “넌 나비가 되어 날고 싶지 않니? 평생 애벌레로 만족하며 덧없이 인생을 살아가려느냐.” 마음속에 침묵을 깨뜨리는 물음이 하나 던져졌다. “이렇게 엎치락뒤치락하며 힘들게 사느니 차라리 애벌레로 살래요. 나비가 되고 싶은 건 헛된 꿈일 뿐이에요.”

겨우내 베란다에 놓여 있던 작은 화분들도 숨죽여 사는 듯 하나 봄에는 다시 꽃을 피우겠지 라는 생각이 들면서『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의 한 부분이 떠올랐다.

어느 날 늙은 애벌레 한 마리가 나뭇가지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것을 보고 어린 애벌레는 깜짝 놀랐다. 마치 털 뭉치에 갇혀 있는 것처럼 보여 자유롭게 해 주고 싶었다. 그러나 나비가 되기 위한 과정일 뿐이라며 당연한 듯 받아들였다. 어린 애벌레는 나비가 무엇인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그것은 네가 앞으로 될 그 무엇이란다. 그것은 아름다운 두 날개로 날아다니고, 또 하늘과 땅을 연결시킨단다. 꽃의 달콤한 이슬을 마시고 이 꽃에서 저 꽃으로 사랑의 씨앗을 전해주기도 하지. 나비가 없으면 세상에서 꽃들이 곧 사라지고 말거야.” 어린 애벌레는 도저히 믿기지 않아 다시 질문을 던졌다.

“아냐, 그럴 리가 없어! 나와 당신의 속에 나비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나요? 내 눈앞에 보이는 거라곤 솜털로 싸인 벌레뿐인데, 어떻게 해야 나비가 되는 건가요?”

늙은 애벌레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애벌레이기를 포기할 만큼 날기를 원하는 마음이 간절해야 해. 나를 잘 보아라. 고치를 만들고 있는 중이지. 내가 마치 숨어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고치란 피어버리는 꽃이 아니란다. 결코 다시는 애벌레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으니까, 커다란 도약을 한 셈이지.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동안, 너나 그것을 지켜보는 누구든 언뜻 보기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는 것 같지만 이미 나비는 만들어지고 있는 거란다. 다만 시간이 조금 걸릴 따름이지.”

죄수에서 이집트의 총리가 된 요셉, 사울 왕에게 쫓겨서 망명생활을 하다가 위대한 왕이 된 다윗, 한갓 포로에서 한 나라를 구해낸 에스더, 어부에서 예수님의 수제자가 된 베드로. 이들은 처음부터 유능하고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갖춘 자들이 아니었다. 평범하며 능력 없고 내세울 것 없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인생 속에서 하나님은 일하셨고, 그들의 변화된 삶을 통하여 선한 역사를 이루어가셨다.

우리가 인생의 어떤 목표를 세운다 할지라도 그 목표를 이루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영적인 목표와 사명을 완수하는데 있어서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연약한 인간은 늘 새로운 무엇인가를 얻고자 한다. 그 결과물이 손에 잡히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을 때, 하나님은 내 틀 속에 맞춰진 채 능력 없는 분이 되고 만다. 하나님은 1%의 가능성이라도 그냥 스쳐지나가는 분이 아니시다. 그 작은 생명력을 보시고 우리에게 일을 맡기시고 기회를 주신다. 나에게 주어진 작은 것에 감사하면서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에 역사하시어 주님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 적은 능력으로 인내의 말씀을 지켜 주님께로부터 생명의 면류관을 받았던 빌라델비아 목회자처럼, 결코 능력이 많고 적음이 아니다. 그저 삶속에서 묵묵히 인내하며 나아가는 것이다.

애벌레가 살아가는 궁극적인 의미는 나비가 되는 것. 그러나 대부분의 애벌레들은 긴 시간 속에서 견디지 못하고 포기하고 만다. 결코 자신은 나비가 될 수 없음을 한탄하면서. 애벌레로서는 꽃들에게 희망을 줄 수 없다. 인고의 시간을 거치고 거쳐 나비가 되어야만 꽃을 피우는 희망의 메신저가 될 수 있다.

“주님, 이런 주님의 깊은 뜻을 모른 채 괴로워하며 불순종했던 저를 용서해주세요. 다시 힘을 내어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애벌레로서의 나약함이 몸서리치도록 싫다면, 넌 나비가 될 수 있다고 격려하시고 일으켜 세워주시는 주님을 바라보자. 나비가 될 수 있도록 폭풍과 비와 바람을 선물로 보내주시는 주님을 찬양하면서. 쉬지 않고 꿈틀거리노라면 언젠가는 그분께서 고상한 날개를 주실 것이다.

허윤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