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의 열매

 

천고마비의 계절, 인고의 시간을 잘 견디어낸 오곡백과들을 보면서 마음의 풍요로움과 감사가 절로 나옵니다.

유난히도 일조량이 적었던 한 해라 곡식과 과일들이 열매를 맺기 어려운 환경이었습니다. 그런 환경에도 불구하고 힘을 잃지 않고 나무에 잘 붙어 있어 주어 견실한 열매들을 잘 맺었습니다. 농부가 좋은 밭에 씨앗을 뿌려 좋은 열매들을 얻기 위해 꾸준히 가꿔주고 노력한 성실한 보상이지요.

농부들이 알곡을 곳간에 들이듯 인류역사의 종착역을 향해 달리고 있는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은 알곡, 즉 익은 열매들을 곧 추수하실 것입니다.

아직 덜 익은 열매들은 여러 가지 부족한 부분을 갖고 있기 때문에 따기에는 시기상조입니다. 채 익기 전에 비바람을 견디지 못해 가지에서 떨어져 나간다거나 병들거나 새가 쪼아 먹어버리는 등의 경우입니다. 잘 익을 때까지 기다려 주시는 하나님의 길이 참으심에도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각자의 영혼이 예수님의 형상을 입을 때까지 온전히 자라야지만 우리 영혼을 천국곳간으로 추수하십니다.

이것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진리입니다. 천국은 거룩해져야만 갈 수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들어가고 싶다는 열정만 가지고는 갈 수 없습니다. 인내의 말씀을 다 지키어 반드시 익어야지만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잘 익어가다가 썩거나 상하면 결코 안 됩니다. 변질되지 않고 끝까지 좋은 열매로 남아야 합니다. 천국은 누구나 다 갈 수 있는 곳이지만 아무나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마지막까지 인내하여 자신을 성화시킨 익은 열매만이 그 분의 마음을 흡족케 할 것입니다.

익은 열매가 되기 위해 좁은 길을 나아갔던 소화 테레사의 빛 된 삶을 그려봅니다. 그녀는 1873년 북프랑스의 알랑송에서 아홉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나 24세의 짧은 생애를 사신 분입니다. 그녀는 15세 때 리지외에 있는 갈멜수녀원에 입회합니다. 착복식을 마친 후 곧 바로 부엌의 천한 일을 맡아보면서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그녀에게 어떤 장점이 있는지 원장이나 동료 수녀들은 오랫동안 모르고 있었었습니다.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때에서야 비로소 그녀의 성덕의 출중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역사상에 남을만한 대사업을 이룩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매일 매일의 본분, 사소한 일까지 빈틈없이 충실히 하며 익은 열매가 되기 위해 노력하신 분입니다. 15세의 나이로 리지외의 갈멜수녀원에 들어갈 때부터 위선, 특권의식, 자만심, 단정치 못한 자세, 편협함, 그리고 소유욕에 대항하여 투쟁하기 위해 기도와 희생으로 자신을 무장했습니다.

그녀는 단순함과 일상생활의 작은 길을 통해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세차게 우리로 하여금 성경에 접근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또한 성화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마치 밀가루 반죽에 섞인 누룩처럼 그녀의 영향은 무언중에 고르게 퍼져 나갔습니다. 1883년 5월 13일 주님의 은총으로 병이 낫게 되면서 두 가지 겸손한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나는 세상의 눈에는 숨겨져 있고 싶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연약하고 불완전하다는 자기 인식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일찍부터 밖으로 드러나지 않으면서 덕행을 실천하는 것, 즉 자기의 공덕에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의지하였습니다.

학과는 훌륭했으나 수줍음이 많았고 글씨체가 나빠서 고양이 같다 했으며 일을 처리하는 방법도 서툴러서 주위에 호감을 살만한 외적 자질이 부족했습니다. 이런 외적 여건에 비해 내적 시련은 일 년 반 동안의 병고로 세심증에 시달렸으며, 그 고생으로 영성적 가난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준주성범을 거의 다 외울 정도로 깊이 묵상하면서 겸손의 중요성을 배웠습니다. 무시당하고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자신이 취급받기를 원하며 세상 사람들이 아무도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으면 하고 바랐습니다. 보잘 것 없는 모래알이 짓밟히듯 모래알처럼 작고 낮아지고 싶어 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덕행을 감추는데 특별히 조심하면서 반면에 공동체 앞에서 드러나게 모욕당하는 기회를 기꺼이 환영했습니다. 부당하게 책망 받고도 변명하지 않는 습관을 지녔으며 잘못 판단된 것에 대해 다행스럽게 여겼으며 그때야말로 자신을 하나님께 바칠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변명을 거부하는 것은 자기를 부당하게 비난하는 인물에 대해 우월감을 갖기 쉽기에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이웃으로부터 칭찬을 기대했기에 변명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늠름한 풍채도 볼품도 없는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고 귀히 여김을 받지 못했던 예수님을 본받고자 자신도 주변 사람들로부터 잊히기를 갈망하며 실제로 그렇게 살았던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자신을 높이고 드러낼까 고민하고 연구하는 이 세대를 향하여 소화(小花) 테레사의 겸손과 자기 부인의 모습이 밝게 조명됩니다. 무시당하고 오해받고 멸시받는 환경 속에서도 감사하며 온유함으로 인내한 결과 아주 잘 익은 열매로 주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렸습니다. 작은 선행으로 큰 선행 뒤에 따르는 자기만족의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지켰습니다. 자매들이 흩트려놓은 망토 개키는 일, 아무 말도 안하고 싶을 정도로 피곤할 때도 한번 웃어주는 일 등이 그의 일이었습니다.

익은 열매가 되는 것은 크고 거창한 일을 하는 것에 있지 않고 일상의 사소한 일과 사건 속에서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을 따르는 삶임을 다시금 상기케 합니다. 오곡백과 풍성한 이 계절에 생활 속에서 나 자신을 익혀가는 습작을 위해 조용히 기도 올립니다.

‘작은 자들 위에는 내가 내 손을 드리우리라’(슥13:7).

이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