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13:1).

여기에서 ‘끝까지’란 ‘완전히 하라’에서 온 말로 시간적인 마지막뿐 아니라 모든 상황에서의 한계를 말한다. 다시 말해서 죽기까지 사랑했다는 것이다. 조금 후면 자신을 배신할 가룟 유다의 발을 씻겨주시는 주님,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하며 도망갈 베드로와 나머지 제자들. 예수님은 그들 모두를 끝까지 사랑하셨다.

창과 몽둥이를 들고 온 로마 병사들 앞에 혼미백산하며 도망치는 제자들과 달리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의 가는 것을 용납하라”고 하셨던 우리 주님의 사랑은 끝이 없으셨다.

이 말씀이 가슴에 부딪혀 왔다. 가슴을 짓누르는 듯 한 고통과 영혼이 압박을 당하는 것 같아 도저히 집회를 인도할 수 없어 강단을 등지고 돌아섰다. 십자가 밑에 꿇어 엎드려 가슴을 치며 통곡하며 울었다.

“하나님 아버지,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이 못쓸 죄인을 용서해 주옵소서.” 수백 번 억장이 무너져라 가슴을 치며 피를 토하듯 회개하였다. 가슴이 찢어지고 터져 말로 못하고 ‘아~’만 했다. 그동안 목회하면서 끝까지 사랑하지 못해서 나 때문에 시험 들어 떠나간 사람들, 조금만 더 참고 기다려 주었더라면 될 걸, 세상살이 힘든 성도님들 위로해 주지 못하고 늘 바쁘다는 핑계로 돌아보지 못하여 결국 떠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을 눈물짓게 했는가. 부모, 형제, 일가친척, 목회자와 성도들과 신학생들, 수도자들에게, 그리고 신학교 강의실에서 철저한 수도자들과 같이 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젊은 학생들에게 너무 극단적으로 몰아붙였고, 대사경회 때 머리를 이상하게 물들여 온 집사님께 머리를 단정하게 하고 다녀야 빛이 아니겠느냐고 해서 중간에 가방 들고 나가게 한 것, 같이 수도생활하면서 좀 따뜻하게 친절하게 이해하고 용서하며 사랑하지 못하여 결국 그만두고 나간 형제들….

내말 듣지 않으면 은근히 멀리하고 나를 비방하면 입으로는 사랑, 사랑 말은 잘도 하면서 은근히 비방하고 사상이 다르면 마음이 안 맞아 같이 못하겠다고. 목사노릇 20년하고 나서 이제야 겨우 깨닫고 발견한 최대의 사실은 나는 진정 죄인 중에 괴수라는 사실이다.

불쌍히 여기소서

요 며칠 동안 진통을 겪었다. 못마땅한 사람이 마음에 자꾸 살아나 여름가뭄에 논바닥 갈라지듯 심령이 메말라 죽을 지경이었다. “아이고, 하나님!” 하고 아무리 하나님을 찾아도 대답도 없으셨다. 고개를 책상 밑까지 처박고 기도해도 전혀 응답이 없으시니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 이 사망에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라는 한탄이 절로 나왔다. 답답하고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내 마음이 찢어지고 헤어진 걸레조각처럼 너덜너덜하다.

“아! 이 괴로운 인생이여! 이 죄인 모든 죄에 대한 천벌을 받아 라오디게아 목회자처럼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사랑에 메마른 자 되었나이다. 저는 악의 씨앗이요, 위선자입니다. 저는 교만과 음란, 질투와 포악, 거짓과 태만, 아집으로 가득한 자입니다. 제 안에 큰 구렁이가 일곱 마리나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저는 불벌을 행한 자요, 대악(大惡)의 죄인입니다. 저는 무심하고 무정한 자요 바보 천치입니다.

아, 하나님! 내 뼛속 깊이 사무친 죄, 내 생활이 모조리 죄로 습관화되고, 악으로 익혀져 버린 눈, 손, 마음, 죄의 숨결을 어떻게 벗겨낼까요? 내 마음에는 역겨운 허례와 위선의 악취가 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훌륭한 교수인체, 참 목자인체, 거룩한 수도자인체 성자나 된 듯 교만과 아집 위선의 역겨운 냄새를 뿜기고 있습니다. 성인들의 빛 된 삶을 이야기하고 입만 열면 성화, 거룩, 완덕 하면서 성인인체 고상한척 위선을 떨었나이다.

주여, 주여 하면서 자기 배를 위해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살아온 극악무도한 죄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구더기만도 오물만도, 시궁창의 쓰레기만도 못한 이 못쓸 죄인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울고 또 울며 얼마나 회개했을까! 찢어지고 멍든 가슴에 자비와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사 은혜를 베풀어주셨다.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 비록 또 실패할지라도 끝까지 사랑하는 마음을 불어넣어 주셨다. 천근만근 같은 무거운 가슴을 시원케 해주셨다. 기쁨과 감사로 충만케 해주셨다. 모든 사람을 다시 품고자 하는, 끝까지 사랑할 수 있는 은총을 주셨으니 너무너무 감사할 따름이다. 가련한 영혼의 아픈 울부짖음에 자비로 응답하시는 주님께 다시 한 번 감사하기만 하다.

티끌만한 죄라도

“희생당할 때까지, 상처를 입을 때까지 사랑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은 우리에 대한 사랑으로 죽음에까지 이르셨습니다.”라고 하신 마더 테레사의 말씀처럼 희생당할 때까지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사랑에 관심을 가지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죽을 때가지 이일 저일 할 수 있지만, 사랑 없이 행한 일이라면 하나님 보시기에 아무 쓸모도 없다.

예수님은 우리 인생의 마지막 심판의 기준을 미리 알려주셨다.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많은 선행을 행했느냐에 따라 심판받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받은 상에 의해 심판받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얼마나 많이 사랑했는가 하는 것으로 심판 받을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요일4:16, 19-20).

우리 속에 미운 사람 하나 없으니 행복하다고 하신 최춘선 목사님 말씀처럼 미운 사람, 원수 같은 사람, 말만 하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 원망하는 사람이 있으면 만사를 제처 놓고 달려가 용서를 빌고 진심으로 사랑하면 천하를 얻는 듯 한 기쁨이 있다. 감히 죄 많은 이 죄인이 깨달은 것은 철저히 회개하는 것만이 사는 길이란 것이다. 지극히 작은 죄 하나라도 철저히 회개하는 것이 가장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것이다.

살아생전 “참회생활이 가장 중요한 기도입니다.”라던 선생님의 가르침이 명답이다. 선생님의 가르침이 이제야 확실하게 깨달아진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날마다 순간마다 철저히 회개하는 것이다. 가슴을 치며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주님의 십자가의 피로 씻는 것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그 후에 사랑할 수 있는 마음도 감사도 기쁨도 찬송도 영광도 전도도 봉사도 구제도 모두다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예수님께서 주시는 것이다. 이제 우리 먼저 철저히 회개하고 그 후에 하나님을 더 뜨겁게 사랑하고 내 이웃을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하기로 결단하자.

이 땅에서 마귀와 세상과 역경을 싸워 이기신 성화(聖化)된 성도들은 하나님의 생명의 능력으로 사랑할 수 있지만, 우리 같은 광야성도는 죄의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순간순간 주님을 전적으로 의지할 때 성령님께서 순간순간 도와주셔서 원수를 사랑할 수 있다.

죽기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을 본받아 아무리 미운 짓을 해도, 아무리 욕을 하고 침을 뱉어도 아무리 손해를 주고 억울한 일을 당해도 나는 끝까지 사랑하리라. 이 믿음, 이 결심, 이 의지 예수님께 완전히 의지하면 내 힘으로가 아니라 주님의 능력으로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리라. 그날에 이르기까지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우며 이 길을 달려가리라!

박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