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레스 오블리즈(Noblesse Oblige)라는 말이 있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도 언급을 했고, 한국사회에 자주 등장하는 말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즈란 프랑스어로 “귀족의 의무”를 의미하는 것으로, 부와 권력, 명성은 사회에 대한 책임과 함께 해야 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즉 노블레스 오블리즈는 사회지도층에게 사회에 대한 책임이나 국민의 의무를 모범적으로 실천하는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단어이다.

이 말의 어원을 살펴보면 그 도덕성의 의무가 주는 숭고한 가치를 느낄 수 있다. 14세기 백년전쟁 당시 프랑스의 도시 ‘칼레’는 영국군에게 포위당한다. 칼레는 영국의 거센 공격을 막아내지만, 더 이상 원병을 기대할 수 없어 결국 항복을 하게 된다. 점령자는 “모든 시민의 생명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누군가가 그동안의 반항에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며 “이 도시의 대표 6명이 목을 매 처형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칼레시민들은 혼란에 처했고 누가 처형을 당해야 하는지를 논의했다. 모두가 머뭇거리는 상황에서 칼레시에서 가장 부자인 ‘외스타슈 드 생 피에르(Eustache de St Pierre)’가 처형을 자청하였고, 이어서 시장, 상인, 법률가 등의 귀족들도 처형에 동참한다. 드디어 그들은 다음날 처형을 받기 위해 교수대에 오른다. 그러나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죽음을 자처했던 시민 6명의 희생정신에 감복하여 살려주게 된다.

이 이야기는 역사가에 의해 기록되었고, 높은 신분에 따른 도덕적 의무인 ‘노블레스 오블리즈’의 상징으로 남아, 귀족의 역사가 긴 유럽 사회에서 오늘날까지 유래되어 왔다.

결국 ‘노블레스 오블리즈’는 유럽 사회 상류층의 의식과 행동을 지탱해 온 정신적인 뿌리라고 할 수 있다. 귀족으로 정당하게 대접받기 위해서는 명예(노블레스)만큼 의무(오블리즈)를 다해야 한다는 귀족 가문의 가훈(家訓)인 셈이다.

전쟁이 나면 귀족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싸움터에 앞장서 나가는 기사도 정신도 바로 여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런 귀족 사회의 전통적 모럴(morale)은 면면히 세계 여러 나라로 퍼져 나갔다. 이런 정신을 바탕으로 영국 지도층의 자제가 입학하는 이튼 칼리지 졸업생 가운데는 무려 2,000여명이 1,2차 세계대전에서 목숨을 잃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차남 앤드루 왕자는 포클랜드 전쟁시 위험한 전투헬기 조종사로 참전하기도 했다.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의 네 아들은 모두 2차 대전에 참전하였다.

139명의 미군장성들의 자제들이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그중 35명이 전사하거나 부상을 당했다. 그들 중에는 52년 대통령에 당선된 아이젠하워 육군원수의 아들인 아이젠하워 소령과 제3대 유엔군 총사령관이었던 마크 클라크 대장의 아들도 포함되어있다.

한국군 전투력 육성에 지대한 공헌을 세운 밴 플리트 대장의 외아들인 밴 플리트 2세는 야간 폭격기 조종사로 작전수행 중 행방불명되었다. 그는 외아들을 한국전선에서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한국사랑은 지극했다.

오늘날 한미우호관계에 공헌이 큰 사람에게 주는 상의 이름이 밴 플리트 상인 이유는 외아들을 잃고도 한국 사랑을 멈추지 않았던 장군의 마음과 그의 ‘노블레스 오블리즈(Noblesse Oblige)’를 기리기 위해서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초대주석인 모택동 주석의 큰 아들 모안영(毛岸英)은 옛 소련에서 공부하였다. 1950년 10월 하순 중국 인민해방군 총사령관의 비서 겸 통역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하였다. 그리고 그해 폭격으로 전사했다. 후에 모택동 주석은 아들을 군복무하게 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내가 그 녀석을 파병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희생되지 않았을 텐데… 그러나 만약에 가정을 보호하기 위해 내 아들을 파병하지 않았다면, 더욱이 다른 사람의 자식들만을 전선에 파병했더라면, 내가 어떻게 지도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

흔히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하늘나라의 공주와 왕자라고들 한다. 하나님이 왕이시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으니, 공주와 왕자라 일컫는 것이리라. 왕자와 공주가 되었으면 거기에 걸 맞는 의무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 세상의 귀족들이 ‘귀족의 의무’를 가지고 사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이 되어 구원받고,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축복을 받는 것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 앞과 이 세상을 향한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을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고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셨다. 소금과 빛이 되라는 것이 아니고, 이미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예수님을 따르는 순간 소금과 빛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왕자와 공주가 되려면 그 의무를 다하고 소금과 빛으로 살아야 한다. 앞으로 열심히 살아 소금과 빛이 되리라는 것이 아니고, 이미 소금과 빛이다. 거꾸로 말하면 소금과 빛이 아니면 주님의 제자가 아닌 것이다. 왕자와 공주의 의무를 다하는 삶이 아니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것이다. 세상 사람도 귀족이 되면 앞장서서 희생하며 본이 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 권력을 잡아서 높아지고, 그 권력이 주는 혜택과 명예를 누리려고만 한다. 그러나 책임감과 의무감은 약하다. 노블레스 오블리즈는 살아나야 한다. 직분에 걸맞은 대접을 받으려면 명예(노블레스)만큼 의무(오블리즈)를 다해야 한다.

특별히 한국교회의 지도자들과 성도들 안에서 살아나야 한다. 소금은 녹아야만 맛을 내고, 빛은 희생해야만 빛을 드러낸다. 녹지 않아 맛을 잃은 소금은 세상에 버려져 밟힐 뿐이다. 빛을 발하지 않는 촛대는 아무 소용이 없다.

이안드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