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쿠아 드 디오스(Aqua De Dios)에서 생긴 일 - 콜롬비아 선교보고

 

작년에 콜롬비아 선교 다녀 온 보고입니다.

 

    9년 전 처음 콜롬비아 보고타 공항에 도착했을 때 현지 선교사님을 위시해서 많은 사람들이 나를 맞이해 주셨다. 부족한 나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환영을 해 주시나 하고 감회가 젖었는데 실상을 알고 보니 나를 환영해서가 아니라 나의 안전을 위해 body guard로 많은 사람들을 동원한 것이었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콜롬비아는 좌파 게릴라와 내전을 겪고 있고, 마약이 유명하며, 마약과 항상 관련되어 있는 마피아가 진치고 있는 곳이다. 그래서 internet에서 콜롬비아를 소개하기를 “가장 여행을 꺼려하는 나라“라고 소개 하고 있다.

   사람들이 가기를 꺼려하는 나라인 콜롬비아에 하나님의 은혜로 10여 차례를 다니면서 신학교 강의, 목회자 세미나, 그리고 각 교회에서 영적각성운동을 해왔고 이번에는 수도 보고타에서 북쪽으로 4시간 떨어져 있는 인구가 8000명이 사는 작은 마을인 아쿠아 드 디오스(Aqua De Dios)에 저희 교회의 학생들을 데리고 가서 복음을 전하고 함께 사랑을 나누는 기회를 가졌었다.

   이 마을은 보고타 강을 경계로 격리되어 있다. 이 마을을  들어서기 위해 비탄의 강’ (Bridge of the Sigh)를 건너야 한다. 왜 ‘비탄의 다리’이라고 이름이 지어졌을까? 아쿠아 드 디오스는 1870년 세워진 마을인데 한국의 소록도와 같이 한센병 환자들이 격리 되어 사는 곳이다. "한센병이 전염병이 아니다."라고 판명 난 한참 후인 1960년대까지도 이곳에 한번 들어오면 나가지 못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가족 중에 한센병자가 발견되면 이 다리를 건너서 보내는데 이 때 가족들이 ‘이별의 비탄’의 눈물을 흘렸기에 그렇게 불렀다. 다리를 놓기 전에는 환자들을 바구니나 상자에 실어 장대로 밀어서 강을 건너 마을로 보내 졌다고 한다.

   한센병은 구약 성경에서도 등장하듯이 인류역사만큼이나 오래됐고 전 세계적으로 악명이 높았던 병으로 한센병 만한 것이 없다. 성경에서도 하나님을 거역한 부정과 죄의 징표로 묘사되어 혹독한 학대를 받았으며, 한때 한 국가 전체를 멸절시킬 위기에까지 몰아넣었던 페스트조차도 이토록 잔인하게 다뤄지진 않았다. 특히 이 병이 발병하면 환자는 철저히 버림받아 어둠 속에 영원히 격리되고 유폐됐다. 혈육마저 인연을 끊었다.

  우리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중년 이상이면 기억할 것이다. 아무리 극악스러운 아이도 "문둥이가 잡아간다"는 한 마디면 울음을 뚝 그쳤다. 한센병 환자들이 병을 고치려 아이를 잡아 내장을 꺼내먹는다는 속설까지 널리 퍼져있던 탓이다. “해와 하늘빛이/ 문둥이는 서러워/ 보리밭에 달뜨면/ 애기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미당(未堂) 서정주 선생의 시 <문둥이>에서 가슴 저미게 묘사한 그대로다.

   이 마을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센병 환자들이 이 마을 들어 왔을 때 먼저 거주하던 토착민들의 배척으로 동네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그들은 마을 외곽 외딴 곳에서 겨우 농사를 지으면서 변변찮은 정부의 지원으로 긴 세월동안 투병과 가족과 사회의 격리된 외로움과 주위 사람들의 냉대와 굶주림 등의 뼈아픈 삶을 살았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 하지만 역시 가난과 여러 가지 아픔과 싸우면서 살고 있다.

   원래 이 마을의 이름은 토카이마(Tocaima)이었다. 그런데 그들에게 이변이 일어났다. 그들이 그곳에서 온천을 발견하고 목욕을 하면서 한센병이 치료를 받곤 했다. 그래서 그곳 이름을 치료의 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여 마을 이름을 ‘아쿠아 드 디오스’(Aqua De Dios) '하나님의 물’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그들을 핍박과 냉대를 했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아픈 마음을 그대로 버려두시지 않았다. 하나님은 그들의 절망적인 상황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낱낱이 감찰하여 위로하시고 해결의 방법을 주신 것이다.

  이제 나를 돌아보자. 지금 나는 어떤 고난과 역경 가운데 있는가? 하나님은 나를 잊어 버려셨는가 하고 탄식하는가? 낙담하지 말자, 탄식하지 말자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찾아와 나의 모든 고통을 치료해 주실 것이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 나의 고통과 염려를 기도하며 내어 맡기자.

   사역을 하기 위해 우리도 숙연한 마음으로 ‘비탄의 다리’를 건너서 계곡 사이를 이루고 있는 마을로 들어갔다. 마을 아래부터 산꼭대기까지 이르러 다양한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하게 피어 있어 아름다운 절경이었다. 아니 비경이라 할 만큼 감탄이 절로 나왔다. 콜롬비아를 ‘정원의 나라’라고 부르는데 정말 이 말이 실감이 났다. 거기에다 살며시 평화까지 마음에 스며드니 얼마나 좋은가! 누가 이곳을 한센 병자의 마을이라 하겠는가? 누가 이 마을을 눈물과 아픔이 젖어 있는 곳이라고 하겠는가? 마치 천지창조의 당시의 에덴동산을 보는 것 같다. 하늘과 맞닿을 것 같은 산동네는 마치 하나님이 그곳에 임재하시는 것 같아 절로 창조주 하나님을 향한 찬송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흘려 나왔다. 그곳에서 찬양을 하면서 사역을 할 때 마치 하나님 앞에서 뛰노는 것 같았다고 내 마음에 하나의 소원이 일어났다. “하나님, 여기가 좋사옵니다.” 이곳에 조금만 움막을 짓고 조용히 주님을 묵상하면서 그들과 함께 살고 싶어졌다.

   우리의 첫 사역은 초등학교에서 여름성경학교를 하면서 한센병자의 후예인 어린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세상에 때 묻지 않은 모습이 그들의 해맑은 눈빛에서 스며 나온다. 어찌나 귀엽고 예쁜지 미국으로 모두 데려가 키우고 싶었다. 아이들이 무더운 날씨에도 연상 땀을 닦고 옷을 적셔 가면서도 긴 시간을 짜증내지 않고 복음을 받아들인다. 이 어린아이들에게도 남미의 정열이 있어 함께 노래 부르고, 뛰고, 솟고, 춤추면서 신나게 지칠 줄 모르고 즐겼다.

   과연 그곳에 우리를 치료하게 하고, 구원하게 하는 ‘아쿠아 드 디오스‘(하나님의 물)이 있었다. 여름성경학교가 끝나고 집회를 가졌는데 그때에 ‘하나님의 물’이 터져 나왔다.  폭포같은 강한 성령의 임재가 아니었다만 샘물이 솟아 오르듯 곳곳에서 성령이 흘려 나왔다. 사랑을 실고 온 산들 바람 같은 성령님이 우리 가운데 임하셨다. 구석구석에서 울면서 기도하는 소리와 찬양 소리가 들려왔고, 또한 치유가 일어났다면서 감사의 소리가 들렸다. 여기저기 기뻐 뛰며 좋아 들 했다. 우리 아이들도 너무나 기뻐서 그칠 줄 모르고 깔깔 웃어 대기도 했고, 은혜에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사랑이 넘쳐 남녀노소 불문하고 이 사람 저 사람 찾아가 껴 안고 “사랑합니다.”라고 고백들을 했다.

 ‘하나님의 물’을 마음껏 마시고 영혼이 소성케 된 것이다. 미국을 위시해서 여러 곳의 집회에 참석을 해 보았지만 이런 성령 충만의 역사를 보지 못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요.(5:3)의 말씀과 같이 그들의 마음이 가난했기에,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8:17)라는 말씀과 같이 그들의 은혜를 사모하는 뜨거운 열정 때문에, 아니면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이요.(5:8)라는 말씀과 같이 그들의 마음이 순수했기에 이런 큰 은혜를 내려 주신 것인가?

   단기 선교팀인 우리는 ‘하나님의 물’ 곧 생수를 마시는 큰 수지를 맞았다. 그들에게 은혜를 나누어 주려갔었는데 오히려 큰 은혜를 받고 오게 된 것이었다.

   이번 단기선교를 마련한 것은 세 가지 목적이 있었다. 첫째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며, 둘째는 우리 아이들이 이 단기 선교를 통해서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배우고, 그리고 사역을 함으로써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고 구원의 확신을 갖게 하기 위함이었다. 우리 아이들 중 더러는 하나님을 믿는다 하지만 구원의 확신이 없었다. 설령 구원의 확신이 있다 하더라도 은혜가 없어 생명력이 있는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곧 무감각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철부지 신자들이었다. 그들이 ‘하나님의 물’을 마시므로 단기 선교의 제일 큰 목적이 이루어 진 것이다.

   우리 인류는 죄악으로 찌들어 있다. 그 죄악으로 인해 마음과 몸이 병들어 있다. ‘아쿠아  드 디오스’ 마을의 한센병 환자들이 ‘하나님의 물’에 몸을 담궜을 때 치료를 받은 것 같이 영적 무감각한 우리에게, 삶에 많은 상처를 받은 우리에게 치유의 ‘하나님의 물’이 필요하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물’을 마심으로 영혼이 소생케 됨을 말씀하셨다( 4: 10). 이 물을 마심으로 영생( 4: 14)과 한없는 희락과 평화( 21:2,3,22)와 치료와 회복을 약속하셨다( 47: 8-10). 이 모든 은총들은 어린양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물을 흘려 넘치게 주시는 것이다(7:37-38).

아직도 자신의 죄와 질병의 치료를 위해 다른 곳에서 찾고 있는가? ’하나님의 물‘을 주시는 예수님께로 나아가 그 분이 주시는 생수를 마셔야 한다. 오직 그분만이 모든 것을 치료하시는 분임을 알아야 한다. 믿는 자 중에서 혹시 깊은 은혜의 체험을 하지 못한 자, 예수님의 사랑을 맛보지 못한 자가 있는가’하나님의 물‘인 성령을 사모하고 하나님께 구하면 하나님께서 풍성히 주실 것이다.

   모든 프로그램을 마치고 여분의 시간을 이용해서 산꼭대기에 있는 화전민들에게 전도를 하기 위해 꼬불꼬불한 길을 차를 몰고 올라갔다. 무슨 귀한 손님이 온양 온 동네가 들썩하며,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 반겨 주었다. 주름이 잔득한 연로하신 분이 골동품 같은 기타를 치면서 우리를 위해 환영의 노래를 불러 주었다. 가사는 모르지만 흑인연가 못지않게 무척 애절함이 젖어 있었다. 그 노래에서 능히 그의 지난 삶을 알 수 있었지만 이어진 그 노인의 환영사에서 그들의 소외와 외로움과 굶주린 가난한 생활의 고통을 말해 주었다. 곧 ‘비탄의 다리’의 실상이 그 노인을 통해서 철철 흘려 나왔다. 누가 그들의 아픔을 보상을 해 줄 수 있을까? 우리로서는 할 수 없어 그들을 위로해 주실 분은 예수님뿐이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주님의 은혜 가운데 거하라고 말씀을 전하고 떠나 왔다.

   2차 사역지인 한센병 병자 수용소를 가는 도중 긴급 연락이 왔다. 한 성도께서 자신의 어머니가 발에 암에 걸려 고통 중에 있어 기도를 우리에게 부탁한 것이었다. 신령한 목사는 아니지만 기꺼이 응해서 달려갔더니 한 노인이 엉성한 나무 침대에 누워 있었다. “기도를 하자”고 했더니 덮었던 이불을 걷어 올렸다. 발이 없는 뭉뚱한 다리가 아닌가! 한센병으로 발이 잘려 나가고 이제 그 다리에 암이 걸려 다리를 짤라야 할 형편이었다. 조잘거리며 까불던 아이들이 그 다리를 보고 그만 숙연해지고 말았다. 그를 보니 내가 목이 메여 기도를 하지 못해 옆에 있는 14살 먹은 우리 중에 가장 어린 미셀에게 기도하라 했다. 섬짓할 만도 한데 당차게 환자의 발을 꼭 잡고 눈물을 철철 흘리면서 진심과 연민에 젖어 기도하지 않는가! 그녀의 기도가 환자의 마음과 우리의 마음을 이렇게 흔들었으니 당연히 하나님의 마음도 울렸을 것이다라는 확신이 왔다. 그녀의 어머니께서 “철없는 저것이 선교지에 가서 어려운 사람들을 보고 좀 배워 변화되었으면.”하고 보내었는데 그의 어머니의 생각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그 환자의 치료여부는 내년에 갈 때 알아 볼 참이다.

   다음 사역지인 환자 300명이 요양하고 있는 그런대로 잘 꾸며져 있는 한센병 병원을 찾았다. 5년 전에 갔을 때는 남자 병동을 찾아 심방을 했지만 이젠 여자 병동을 찾았다. 한가로이 침대에 걸터앉아서 햇볕을 쬐는 분, 세상을 잃어버린 듯 멍하니 먼 산을 바라보고 있는 등 다양한 모습이었다. 우리가 찬양을 하니 여기저기서 휠체어를 타고 우리의 주위로 몰려든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그들에게 기쁨을 안겨 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신나고 좋았다. 간단한 찬양이 끝난 후 각 조를 나누어서 통역관을 붙여서 환자들을 위로, 격려, 전도, 기도하게 하였다. 여기저기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만난 분은 첼리타 할머니였다. 그는 79년 전에 콜롬비아의 한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었는데 그녀가 채 다섯 살도 되기 전에 아버지가 한센병에 걸렸고, 곧 이어서 어머니가 걸렸다. 그녀는 다른 언니들과 다른 한센병자들의 아이들과 함께 수용소에서 고아 아닌 고아 생활을 하였다. 두 해가 지난 그가 일곱 살 때에 그녀도 그 못 쓸 병에 걸리고 말았다. 그녀 역시 바구니에 실려 비탄의 강을 건너 이곳에 온 것이었다.

    다행스럽게 다른 곳에 수용되어 있던 부모님들이 이곳으로 오게 되어 가족이 극적인 재회를 하게 되었다. 그 나이 서른둘에 왼쪽 눈을 잃고, 이어서 오른쪽 눈마저 잃었고, 또 예상했던 대로 손발도 잃어버려 남의 도움 없이 움직일 수 없는 완전한 특급 장애인이 되었다. 그녀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뜨거운 마음이 있었다. 이 마음으로 간간히 시를 써서 모았다. 가끔 시작을 발표하기도 하고 “잠 못 이루는 슬픈 밤”이라는 시집을 내기도 했다. 지금 그녀를 한센병 시인이라고 불려주고 있었다. 지금도 고령에도 불구하고 계속 시를 쓰면서 시와 함께 아름다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그녀를 위로를 해 드리기 위해 마주 앉았다. 어떻게 그녀의 마음을 쓸어 드릴 수 있을까 궁리를 해 보았다만 말이 통하지 않으니 답답했다. 만국의 언어인 노래를 부르기로 했다. 모두 잘 아는 찬송 “Amazing Grace" 등의 곡에 간단한 스페니쉬 몇 단어를 부쳐서 불렸다. 그 노래를 아시는지 마냥 어린 계집애 같이 즐겁게 따라 부르신다. 내가 손벽을 치면서 부를 때도 함께 그 손이 없는 팔로 무릎을 치면서 깔깔되면서 부르신다. 나의 기도를 듣고 난 후 그녀가 이렇게 말한다.

 “내가 너의 말을 알아 들을 수 없지만 충분히 너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너는 나의 모습을 보고 마음 아파하는 것 같다만 그러나 나의 지난 고통이 나를 천국으로 이끌어 주었다.” 하셨다. 참으로 그렇게 보였다. 그 긴 험난한 삶을 살았음에도 그 모습 속에 고난의 찌듬도,  삶의 ‘한’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전혀 추함도 없었다. 오히려 그녀의 평안함 안에 예수님께서 안식을 하고 있는 것 같이 보였다. 그의 모습에서 내면에 깊은 아름다움들이 풍성히 베여 나온다. “성령의 열매들이 잘 익은 성녀”라고 표현하고 싶었다. 잘 익히 아는 성경 말씀 “고난이 네게 유익하다”(119:71)는 이 말씀이 내 앞에 참 증거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었다. 얼마나 귀하게 보이는지, “나도 자신을 부인하고 예수님의 십자가에 맛 들여 저렇게 아름답게 변화될 수 있으면 좋겠다.” 하는 또 다른 소원이 생겼다.

    여기 그가 쓴 시 한편을 의역해서 여러분께 소개해 드립니다.

 

잠을  잃어버린  슬픔

 

음침스러운 어둠으로 추운 밤에

딱딱한 침대에 누워 없는 소리를 듣는다.

 

휘파람을 불며 골마루를 휩쓰는 바람 소리.

시계가 째깍거리며 들려 주는 시간의 소리

밤을 새우며 처량히 우는 새의 울음 소리.

 

어둠만 있는 눈이 서러워서

이루는 밤에 나는 울고 있다.

 

빛이 들어 없는 눈에 고인 눈물은

태양 빛의 아름다움을 잃어버린 아픔.

몸과 심장이 떨며 어린 시절을 그린다.

나를 사랑하시는 당신을 향하여

나의 걸음마다 담겨진 고통의 십자가를 붙든다.

 

당신이 있는 곳으로 가야 길은 멀고

시간은 너무 천천히 흘러 목마름에 타는 갈증

그래도 멈이 내게는 가깝게, 아주 가깝게

 나를 기다리는 당신을 사모케 한다.

    한 선교사님의 딸이 미국에 와서 식품점에서 많은 과일과 물건들의 풍족함을 보고 많은 사람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그만 펑펑 울고만 말았다는 말을 들었다. 우리는 미국에 살면서 너무나 풍족하다. 부족함이 없다. 온갖 문화의 혜택을 최상으로 누리고 산다. 그런데 그것을 모르고 온갖 불평을 토해낸다. 삶의 고달픔이 무엇인지 모르고 입에선 이민의 삶이 ‘피곤하다’는 말이 붙어있다. 삶의 부족함이 무엇인지 모르고 전혀 만족을 못하고 산다. 각 가지 많은 좋은 것들을 가지고 있으면서 더 좋은 것을 찾는 불감에 젖어 산다.

  누가 무감각한 한센병자일까? 세상을 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바로 느끼지 못하고, 올바르게 살아가지 못하고, 무감각하게 살아가는 내가 바로 그 환자인 것을 이 여행에서 알았다.

   작년에 인디오촌을 방문했을 때 족장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이 마을이 세워진 이후 처음으로 외지 사람이 방문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소외되고 외로운 사람들입니다. 우리를 생각하여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했다. 외면당한 인디오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 아큐아 드 디오스 사람들의 아픔은 병으로 겪는 아픔이 아니라 사람들의 편견과 소외됨, 격리, 냉대 등의 차가움이 그들의 아픔이었다. 다 같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단지 한센병에 걸렸다 하여 이중의 고통을 치루어야만 하는지?

   이 짧은 선교를 위해 많은 비용을 들이고, 프로그램을 위해서 수고를 했지만 그 비용과 수고가 전혀 아깝지 않고 너무나 보람되고 기뻤다. 이러한 보람 때문에 지금까지 모든 것을 마다하고 10차례에 이곳을 방문하였다. 이번에 동참한 아이들도 내년에 다시 오겠다고 다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