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를 향한 신앙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일어난 일이다. 프란시스코에 사는 젊은 형제가 가족과 함께 추수감사절 휴가를 맞이해서 시애틀 친구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오레곤의 어느 눈이 덮인 산속에서 길을 잃었다. 가족을 살리기 위해 가족을 차에 남겨두고 도움을 찾아 나섰다가 조난을 당해 생명을 잃었다. 그의 시신이 발견된 곳은 불과 차에서 그리고 공원 오피스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었다. 그는 여러 시간을 도움을 찾아 헤맸지만 멀리 가지 못하고 주위에서 맴돌았던 것이다. 방향을 잃고 정로를 이탈한 사람들의 방황하는 삶의 모습을 여기서 보는 듯했다.

삶에 분명한 목적지와 길을 알고 달려가는 자를 가리켜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 그러나 지금 그리스도인들 역시 방향을 잃고 부질없는 발걸음을 걷는 방황 자가 것을 많이 본다.

과거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 방향을 잃고 방황했던 광야 그들에게 슬픈 역사의 산실이었다. 어떤 분은 광야를 가리켜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묘지이다. 어떤 분은 인류 역사상 가장 장례행렬이었다.라고 했다. 그들은 40 동안 광야에서 하루 평균 100명씩 장사를 지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기적과 권능으로 애굽에서 탈출을 했으나 그들이 목적한 곳인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방황했다. 그들이 오랜 40년간을 움직였으나 전진하지 못하고 광야에서 맴돌면서 죽어갔다. 이유가 무엇인가?

히브리서 기자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이 사십 동안 누구에게 노하셨느냐 그들의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죄를 범한 자들에게가 아니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에게가 아니냐.(3:15-17)

그들은 가나안을 향한 여정에서 바로의 군대의 침입, 아말렉 족속과의 전쟁, 그리고 가나안 7족속과의 전쟁 등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죽음은 이런 외적과의 싸움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 안에 있는 내적 싸움에서 패함으로 광야에서 죽어갔다. 그들은 마음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정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하나님께 원망, 불평을 하고  불순종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죽어 갔던 것이다.(14:33)

거룩한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불평과 불순종은 과히 상상을 초월했다. 그들은 진귀한 하늘의 양식을 거부했고(11), 하나님의 택한 지도자 모세를 비방하고 권위에 도전했으며(12), 10명의 정탐꾼들의 보고로 인해 약속의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을 포기했으며(13), 결국에는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선동으로 지도권과 제사장직에 대한 범국가적인 반역을 일으켰다.(16-19) 그들의 불신의 소용돌이에 위대한 지도자 모세까지 휩싸여 돌이킬 없는 죄를 저지르고 말았다.(20)

지금 현세대를 살고 있는 성도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대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또한 수 많은 예배를 드리지만 아직도 방황하고 있는 성도들이 있지 않는가? 천국을 소망하는 성도는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정욕을 제거하고 세상 유혹에서 떠나 방황하지 말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욕을 추구하고 있다. 오히려 마음에 맞는, 반짝반짝 화려하게 보이는 선악과를 찾아 헤매고 있다. 분명히 우리의 마음에 새길 것은 위의 이스라엘의 광야역사를 통해서 그리고 예수님께서 탕자의 비유를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사실은 정욕을 추구하여 방황할 때는 파멸이다 것이다.(15:11-32) 정욕, 이 선악과는 우리의 내면을 지옥으로 만든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방황으로부터 탈출을 것인가?

성경은 불평하고 불순종하여 불뱀에 물려 죽게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불뱀에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21:8.9) 하셨다. 우리도 우리의 불평과 불순종의 죄를 담당하고 십자가에 돌아가신 믿음의 주요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한다.(12:1,2) 오직 갈렙은 나를 온전히 좇았은즉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14:24) 하심과 같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며 좇아야 한다.

죽음을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을 향한 주님의 발걸음, 십자가를 지신 주님의 발걸음은 고통으로 비틀거렸지만 골고다 언덕을 향한 목표는 뚜렷하여 아무 없이 분명히 뚜벅뚜벅 걸음을 내딛으셨다. 우리 역시 삶의 고달픔과 세상의 유혹과 자신의 정욕으로 비틀거린다. 그러나 주님과 같이 내 몫에 태인 십자가를 지고, 자신의 못난 자아를 부인하고 광야 같은 세상에서 방황하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면서 걸어가야 한다. 이것이 생명의 , 영광의 길이다.

주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