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바이러스
 
어느 순간부터인가 상대방이 자그마한 충고나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간 불편한 표정을 짓거나 퉁명스럽게 대하면 마음이 몹시 불편해졌다. 괜히 섭섭한 감정도 올라오고, 상대방이 얄미워지고 미움의 가시들이 불쑥불쑥 올라왔다.

‘아니, 저 분은 왜 저렇게 사람 마음을 콕콕 찌르는 말만 할까? 나도 나름 잘해보려고 최선을 다한 건데. 평소 생각했던 것과 정말 다르네.’ ‘저 분은 왜 저렇게 표현이 강할까? 너무 차가워. 얼음왕자야.’ ‘아니 저 사람은 또 왜 저래. 2% 넘치거나 부족한 거 아니야. 나설 때 안 나설 때 분별도 못하고 정말 대책 없다니까.’ ‘흥, 남의 사정도 모르고 말이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동분서주 하느라고 그 일에 미쳐 신경을 못 썼는데, 그냥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만 하고 저 사람은 정말 너무 냉정해.’ ‘정말 저 사람하고는 다시 일하고 싶지 않아. 왜 저렇게 감정조절을 못 해. 내가 뭐 동네북인가? 맨날 나만 가지고 트집이야. 나도 밟으면 꿈틀거린다고 왜 이래.’ ‘아, 정말 저 분은 꼴불견이야. 도대체 말씀에 덕이 없어. 그냥 나오는 데로 내뱉기만 하면 어떡해. 저만한 위치에서 말이야.’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또 많은 사람들 앞에서 사람을 무안하게 하는 거야. 정말 창피하게. 정말 배려가 눈곱만큼도 없다니까.”

은혜도 고갈, 영성생활도 내리막길로 계속 치닫게 되자, 자그마한 언어의 파편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마음을 불편하게 찔러댔다. 그리고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마음의 문을 닫기 시작했다. ‘같이 일 안하고 안 부딪히면 그만이지. 괜히 자꾸 만나서 손해 볼 거 없잖아. 그냥 내게 주어진 일만 열심히 하면 되지.’ 미움과 원망불평이 자꾸 싹트자 나의 마음은 점점 얼음집이 되어갔다. “이번 겨울은 정말 사람들의 냉정함과 차가움으로 인해 더 추운 것 같아.” 유난히 추위를 잘 타는 나는 콜록거리며 이불을 덮어 쓰고 이곳저곳에 미움의 화살을 꽂기 시작했다. 내 안에 점점 사랑이 사라지고, 용서가 사라지고, 이해가 사라지고, 배려가 사라지는 줄도 모르고 계속 남 탓만 하였다. 상대방에게 꽂은 수많은 칼과 화살에는 한없이 무신경하면서 살짝 긁힌 화살 자국을 마음에서 지워버리지 않고 앙심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는 나 역시도 퉁명스러운 말과 딱딱한 말과 날카롭고 비판적으로 사람들을 점점 대하고, 비방을 하고 있었다. 개굴개굴 시끄럽게 울어댔다.

그런데 며칠 전 어떤 목사님과 함께 차를 타고 가면서 그분의 온화한 언어와 겸손한 모습에 나 자신이 몹시도 부끄럽게 느껴졌다. 금방 지쳐 쓰러질 것 같은 몸으로 눈이 충혈 되고 다리에 쥐가 날 정도로 충성스럽게 일하시고 수많은 일들을 하시면서도 한 번도 힘들다고 표현도 안 하시고, 속사포같이 사람들이 쏘아대고 부족한 점을 들추어내도, 특별한 이유도 없이 다짜고짜 무례하게 잘못을 따지고 들어도 여전히 온유한 말과 표정으로 사람들을 일관성 있게 대하셨다.

옆에 있는 사람이 도리어 답답하여 한번쯤은 톡 쏘아주면 좋으련만 하는 마음이 들 때도 많았지만, 여전히 변함없는 모습으로 한 결 같이 대하신다. 상대방이 대하기에 불편한 분이든지, 나이가 더 어리든지, 직분에 상관없이 부드러운 말, 따뜻한 말, 친절한 말로써 사람의 마음을 참 따뜻하게 해 주는 것이었다. 아마 모르긴 해도 마음은 참 불편하실 텐데도 끝까지 기다려 주고, 상대방의 말씀이 다 끝난 후 그제야 몇 마디 자신의 생각을 온유하게 피력하신다. 그마져도 다 표현을 못하실 때도 많다. 남들이 보면 참 답답하게 느껴질지도 모를 정도로 언제나 천천히 말씀하신다. 참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주시는 분이다. 겨울에 따뜻한 군고구마와 같은 분이시다.

영적 스승이신 선생님께서 “덕이 진보하는 것은 조심성이 점점 발달하는 것입니다”라는 말씀을 하신 것처럼, 그 스승에 그 제자이신 것 같다. 언제나 한참 생각하시고 조심스럽게 행동하시고 조심스럽게 한 마디 한 마디 하신다. 쉽게 불쑥불쑥 말씀하시고, 쉽게 불쑥 불쑥 화내시고, 퉁명스럽게 말씀하시는 것을 별로 보지 못했다. 이미 오랜 기간 몸에 밴 좋은 습관들과 조심성과 순간순간 빛의 열매를 맺고자 하시는 노력들이 그렇게 삶속에서 아름다운 향기로 드러나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난 너무 쉽게 속상해 하고, 쉽게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하고, 쉽게 어두워지고, 너무나 쉽게 퉁명해지고, 너무나 쉽게 볼멘소리도 하고, 너무나 쉽게 입을 삐죽거리고 불평불만도 곧잘 한다. 아직도 덕이 부족하고 상대방을 향한 배려도 사랑도 관용도 이해도 부족한 사람이다. 참 좁쌀 같은 마음을 가진 꽁생원이다. “무릇 지킬 만한 것은 마음이라 이에서 생명이 난다”고 하셨는데, 아직 나는 예수님의 생명을 얻기에는 멀고 먼 것 같다. 내 안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활화산과 칼을 품고 있으니 말이다. 그로 인해 이웃을 답답하게 하고, 아프게 하고, 슬프게 하고, 고통을 주면서 시커먼 연기를 계속 뿜어내고 상처를 주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주님은 네 눈 속의 들보를 보라고 하신다. 결국은 상대방이 아니라 나 자신 속에 다른 사람에게 감기를 옮기는 바이러스와 새까만 곰팡이 균이 있었던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옹졸한 가슴에 사랑을 심기에 힘써야 할 것 같다. 곰팡이 균을 다 제거하기 위해 성령의 맑은 물로 닦고 또 닦고, 주님의 거룩한 보혈의 탕에 온 몸을 담겨야겠다. 마음과 행실을 깨끗이 씻고 씻어서 이웃을 따뜻하게 해주는 온풍기가 되고 싶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빌4:5).

이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