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방울의 감사

“어멈아, 갈 때 파 가져가라. 화분에 심어놓고 먹으면 오래간다.” 유난히 추운 올 겨울 아버님은 비닐하우스에서 키운 흙 묻은 파뿌리 한 무더기를 신문에 싸서 손에 들려 주셨습니다. 자식에게 나눠줄 마음에 정성스레 키운 파 무더기를 보니 가슴이 따뜻해집니다. 집에 오자마자 베란다에 있는 검정 플라스틱 화분에 파를 심고 보니 석양에 싱그러운 잎이 녹색으로 반짝반짝 빛납니다. 과천 매봉산 자락 밑에 있는 시댁은 봄이면 아카시아 향기가 쏟아지고, 가을이면 새 소리를 따라 밤꽃 향기가 날립니다. 아버님은 텃밭에서 식구들과 나눠 먹을 요량으로 계절 따라 파, 마늘, 상추, 고추, 오이, 가지, 호박, 감자, 고구마, 배추, 무 등을 골고루 심습니다. 시장에 내다팔기에는 울퉁불퉁하고 못생긴 채소가 참으로 정이 갑니다.

자주 찾아뵙지 못하지만 간혹 갈라치면 으레 밭에서 땀에 흠뻑 젖도록 일하고 계신 아버님을 뵙곤 합니다. 아버님이 밭 맨 것을 돈으로 환산하면 몇 만원어치도 안되겠지만 자식들 먹일 기쁨과 일이 주는 보람은 돈으로 계산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파를 다듬다가 땀 흘리며 밭을 맸을 아버님을 떠올리니 문득 성경에 나오는 포도원 품꾼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아침 일찍 일하러 온 일꾼이나, 낮에 온 일꾼이나, 다 늦은 시간에 일하러 온 일꾼에게 같은 품삯을 셈하여 주는 포도원 주인의 이야기입니다. 노동 시간과 상관없이 똑같이 품삯을 주니, 아침부터 일하러 나온 일꾼은 기분이 좋을 리 없었습니다. 인간의 계산으로 따지면 충분히 항의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일한 양이나 노동 시간만이 아니라, 일자리를 찾아 애를 태워가며 길거리에 서 있었을, 그 사람의 마음까지 헤아려 품삯을 셈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계산법은 우리의 계산법과는 이처럼 다릅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 이 비유를 감사의 눈으로 이해하면 어떨까요? 일이 거의 끝날 즈음에야 일자리를 얻은 일꾼도 같은 품삯을 받았으니 세상이치로는 불합리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런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아침부터 일한 일꾼은 일찍부터 하나님의 밭에서 일하도록 선택받은 사람입니다. 밭에서 일하며 사랑과 관심도 먼저 받았을 것입니다. 일하는 기쁨과 보람도 거저 받았기에 하루 종일 행복했을 것입니다. 불만이 생긴 이유는 늦게 일하러 온 사람과 비교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늦게 온 그 사람은 늦게 온 만큼 사랑도 적게 받았을 것입니다. 단지 품삯만 동일 할뿐 사랑과 관심도 적게 받고 일이 주는 기쁨과 보람도 적게 받았을 테니 억울해 할 일이 아닙니다. 품삯(외적인 환경)을 남보다 많이 받았는가 적게 받았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할 때 비록 내가 가진 것이 별로 없고 남보다 못할지라도, 모든 것에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 출석한지 햇수로 11년이 되가는데, 제가 처음 출석할 당시 저희 교회는 지하성전에서 예배드렸습니다. 그러다 건물 주인의 비워달라는 요청에 목사님과 성도님들은 십시일반으로 성전이전 헌금에 기쁨으로 동참하였고, 약간의 대출금을 포함하여 성전을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게 되었습니다. 대출이자를 월세 대신으로 생각하며 지출하던 중 원금 상환일이 도래하자 재정의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재정부장님의 남모르는 헌신과 애태움을 보시며 목사님께서는 큰 결단을 내리셨습니다. 전세금을 빼서 대출금 일부를 상환하시고 3월경 교회 5층으로 사택을 옮기기로 하신 것입니다.

일련의 과정을 쭉 지켜보면서 오직 하나님의 밭에서 먼저 일하도록 선택받은 것에만 감사하여 드릴 수 있는 마음이 참으로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일찍 일하러 나온 일꾼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그만큼 더욱 많이 받고, 일하는 기쁨과 보람도 거저 받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일찍 나온 일꾼이든 늦게 나온 일꾼이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주시는 만큼 고맙게 받으며 사는 이들은 참으로 행복할 것입니다.

식구들을 위해 파를 다듬으며 수고로이 땀방울을 흘렸을 시아버지와 하나님의 성전을 위해 수고한 목사님과 교회 일꾼들의 사랑이 참 좋아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박미선